국민 인권증진 빠진 요란한 빈수레

구속영장실질심사제도의 실시를 계기로 올해가 ‘인권 원년’이 되길

희 망한 많은 이들의 바램은, 지난 11월 국회에서 형사소송법 개정

안 통 과로 무산되어 버렸다. 영장실질심사제도는 94년 사법제도개혁

의 일환 으로 추진, 국민의 인권보장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95년말

정기국회 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도입된 제도인데, 1년만에 후퇴

함으로써 문 민정부의 사법개혁은 꽃봉우리도 맺기 전에 시들어 버렸

다.

세추위가 벌인 사법개혁

한 나라의 인권보장 수준은 그 나라의 사법관련 기관들이 어떻게 만들

어졌고, 누구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점

에서 93년 문민정부 출범이후 각 영역의 개혁에 발맞추어 국민여론의

요구와 함께 시작된 사법개혁 논의는 문민정부에 대한 장미빛 환상을

갖게 했다.

93년 1월초 대법원의 ‘법관인사제도개선안’ 발표로 시작된 사법부

의 개혁논의는 94년 사법제도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95년에는 ‘세계

화추 진위원회’ 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일년내내 떠들썩했지만 사법

개혁은 현실적으로 별다른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다. 그리고 96년

들어서면서 부터 논의 자체가 눈에 띄게 줄었다. 결국 93년부터 시

작된 사법개혁 을 둘러싼 논의의 가시적 결과라 하면 법조인의 증원을

위해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5백명으로 증원한 것뿐이다(97년 6백명). 아

렇듯 거창한 구 호와 함께 시작한 문민정부의 사법개혁 움직임은 용두

사미로 전락하고 말았다.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여전

시끌벅적한 사법개혁 움직임과는 달리 검찰, 경찰등 수사기관 내부

는 문민정부 들어서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수사기관의 인권침해

사례는 신정부출범 첫해인 93년 정치상황의 변화에 의 절대적 감소에도 불구하고 적법절차의 위배라는 측면에서 감소

되지 않았다.

또 일부 사건들에 있어서 과거의 고문과 가혹행위 등의 불법수사관행

이 여전히 나타났으며, 고소·고발 사태가 지금도 끊이질 않고 있다.

93년 청수장 살인사건으로 1, 2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상고

한 김기웅 순경사건은 경찰의 강압수사의 심각성과 동시에 피고인,

변호 사의 무죄주장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의 자백과 수사기록만 맹신하

고 중 형을 선고한 법원의 문제점도 드러내며 국민의 불신을 깊게

만들었 다.(94년 1월말 김 순경은 대법원 재판진행 중 진범이 붙잡

힘으로써 무죄선고를 받았다). 또한 94년 강주영양 살해사건의 공범

으로 검거된 피고인들이 경찰에서 몽둥이 구타, 계란굽기(기마자세

에서 손을 내밀 어 심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

으며, 96년 과천시 장 수뢰사건 수사과정에서 피의자 및 참고인에 대

한 검찰의 가혹행위 가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여기에 96년 연세대

사태 당시 전경들이 보 여준 성추행·가혹행위등 인권침해 역시 빼놓

을 수 없는 문민경찰의 자화상이다.

사법부, 불법수사관행에 제동걸기

반면 93년 1월26일 서울민사지법 합의18부는 김유선씨(당시 전노협 통

계부장)등이 영장없이 강제연행을 당했다며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

결을 내리는 등 임의동행형식의 강제연행 관행에 제동을 걸었고, 이

후 수사과정의적법절차를 요구하는 판결이 93년 한해 잇따라 내려

졌다.

또한 현행범 체포나 긴급구속시 현장에서 피의자에게 범죄사실의 요

지, 구속사유와 변호인선임권등을 고지하도록한 판결이 내려져, 수사기

관의 불법수사관행에 의해 사문화되어버린 형사소송법 규정을 되살리

는 판결이 내려지기도 했다.

94년초 서울형사지법 항소2부(재판장 최형기 부장판사)는 경찰의 음

주 측정을 거부하고 차를 운행하다가 교통사고를 낸 정모씨의 공무집

행방 해 혐의에 대해 무죄선고했고, 이를 계기로 검찰은 전국 경찰

관에 소 위 미란다를 카드 배포기도 했다.

이러한 인권침해에 대한 소송제기와 법원의 상식적인 판결은 결과적으

로 형사소송법의 개정을 가져오게 된다. 잘아다시피 95년 개정된 형

사 소송법은 구속영장실질심사제, 체포영장제와 체포적부심사제를 도

입하 고 긴급구속제를 폐지하는 대신 긴급체포제도를 신설하는 등 구

속제도 전반을 개선한다.

또한 개별적 사건에 있어 주목할 만한 판결들이 내려졌으며, 특히

국 가보안법과 관련해 하급심에서 그 적용범위를 엄격화하고자 하는

판결 과 위헌제청이 있었다. 95년 1월 부산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박태범 부장판사)의 국보법 7조 1·3·5항 위헌심판 제청, 같은해 4

월 이창복 전국연합 의장관련 국보법 7조 5항 무죄선고, 96년 3월

서울지법 형사 3단독(박시환 판사) 국보법 19조에 대한 위헌제청신청

등 소장판사들을 중심으로 사법부 독립을 향한 움직임은 계속되어 왔

다.

끝으로 93년 5월 1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수사단계에서 변호인의 신속

한 조력을 받음으로써 피의자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한다는 취지로 시

행한 당직변호사제도는 높게 평가되고 있다.

주요판결

◇ 93년

·7월4일 서울고법 민사 제2부 박종철 고문치사관련 신원권 인정 ·9

월6일 서울형사지법 제10단독 재판부 전 감사원 감사관 이문옥 피 고

인에게 무죄선고

◇ 94년

·8월31일 창원지법 최인석 판사, 경상대 교양교재인 『한국사회의

이 해』를 공동집필한 장상환, 정진상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5

월24일 원심의 무죄판결 파기환송

◇ 95년

·1월17일 부산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박태범 부장판사) 국보법 제

7 조 제1항, 3항, 5항 위헌 소지가 있다며 직권으로 헌재에 위헌심판

제 청(=> 96년 10월4일 헌재 5항 합헌 결정)

·대법원, 전북대생 이기언 씨등에 대한 학문연구 목적이라면 이적

표 현물 소지 인정된다며 국가보안법 부분 무죄선고

·2월24일 부산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박태범 부장판사) 부산 만덕

초 등학교생 강주영양을 유괴,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3명 에게 무죄선고(항소심 부산고법 제2형사부 무죄선고) ·4월6일 서

울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이신섭 부장판사) 이창복 전국 연합 의장

에게 국보법 7조5항과 관련해 무죄선고(=> 96년 12월13일 대법원

파기환송)

·7월24일 부산지법 제4형사부(재판장 김태우 부장판사) 80년 당시

조 총련간첩단사건 구속된 신귀영씨의 재심결정(부산고법도 결정,

11월 13일 대법원 제3부 파기환송)

◇ 96년

·2월8일 서울지법 형사9단독(유원석 판사) 국보법상 제10조 불고지

죄 위반혐의로 기소된 허인회 씨에게 무죄선고

·3월6일 서울지법 형사3단독(박시환판사) 국보법 제19조(구속기간

연 장)에 대해 직권으로 헌재에 위헌제청신청

·7월12일 서울지법 형사9단독(유원석 판사) 국보법 제7조 1항, 5항으

로 구속기소된 박충렬씨에게 무죄선고

·10월4일 헌재, 영화법 및 음비법의 사전심의 위헌 결정

1997년 11월 26일 수요일 제10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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