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대 학원민주화투쟁의 정신적 버팀목이던 장현구(경원대생, 분신

사망). 장례가 끝난지도 다섯달이 넘었고, 이제 그 이름 석자를 기억하

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 싶다.

아들의 죽음 앞에 누구보다도 분노했던 아버지 장남수(54) 씨도 어느

덧 생업의 현장으로 되돌아 와 있다. 무려 1백34일, 넉달이 넘도록 아

들의 시신을 땅에 묻지 못하면서 너무나도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냈기

에 아들을 보낸 장 씨의 사무침은 유달리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장

남수 씨는 몇 번이고 되뇌인다. “잊을 건 잊어야 돼”하면서.

“건전한 95% 때문에 우리사회가 유지돼”

장남수 씨는 30년이 넘게 화원을 해 오고 있다. 가락동에서만도 벌써

10년째 예닐곱평 남짓한 자그마한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장 씨에겐 욕

심이 없다. “다 사리사욕만 차린다면 사회가 지탱되기 힘들지. 건전한

95% 때문에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게야” 장남수 씨의 소망은 뒤에서

열심히 성원하는 것이란다. “힘과 길만 있다면 적극적으로 성원하고

싶소” 장 씨는 지난 몇 달 간의 어려움 속에서 힘이 되어 주었던 사람

들을 잊지 않는다. 특히 아들의 죽음 이후 장례가 끝날 때까지 음양

으 로 도왔던 김해성 목사에 대한 감사는 남다르다. 김 목사가 외국

인노 동자 문제로 구속돼 재판을 받을 땐 꼬박꼬박 법정을 찾아다녔

고, 지 금은 한 달에 한 번씩 김 목사의 교회에 나간다. 신자가 아니

라면서도 장 씨는 “김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 예배에도 참석하게

됐다”며 허 허 웃는다.

연세대 사태 때는 학생들 걱정에 신촌 배회

지금도 장 씨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경원대학교의 앞날이다. 아들

의 장례식 이후에도 경원대 문제가 여전히 어둔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 기 때문이다. 1학기 내내 팽팽하게 전개돼 오던 학교측과의 줄

다리기 는 연세대 사태 이후 학생들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바뀌었고,

간간이 제기되던 협상테이블도 치워진지 오래. 오히려 학교측의 재

고발 조치 로 인해 방학중에만 4명이 구속되었고, 10명이 수배생활에

들어갔다.

장 씨는 “비록 타협하는 방법을 모르지만 아직도 학생들의 주장이 옳

다고 믿는다”며 안타까워 한다. 가끔씩 찾아오는 아들의 후배들에게

도 격려와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장 씨는 지난달 연세대 사태 때, 자

식같 은 학생들이 공권력에 당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연세

대 앞 을 배회하고 다녔다고 한다.

“유족단체를 찾아가 보라” 죽기 직전 아들 현구가 남긴 마지막 말이

었 단다. 장 씨는 여건이 되고 옳다는 판단만 선다면 모임에 동참해

“해 야할 일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올해 장남수 씨의 추석은 예년보다 바쁘다. 선산에 모신 조상 묘도

살 펴야 하고, 마석 모란공원에 잠들어 있는 아들 현구의 묘소까지

돌봐 야 하기 때문이다.

96년 9월 24일 (화요일) 인권하루소식 제 7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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