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엑스트라 – 팔레스타인의 이미지를 찾아서>
(Kings & Extras. Digging for a Palestinian Image)
아자 엘-하산 Azza El-Hassan/팔레스타인, 독일/ 2004/Beta/Color/62min
히틀러가 유태인을 상대로 벌인 대학살의 비극은 다른 곳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바꾼 또 하나의 역사적 비극을 만들어냈다. 팔레스타인이 바로 그 곳이다.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던 한 지역의 구성원을 송두리째 들어내어 다른 구성원으로 바꾸는 일은 분명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분노, 피의 대가를 동반한 일이었을 것이다. 1948년 이스라엘의 국가 선포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끊임없는 전쟁과 패배의 과정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깊은 역사적 상실감을 각인했다. 전쟁으로 인해 잃어야했던 수많은 목숨들과 집, 고향, 인권, 사회적 권리, 그리고 끊길 줄 모르는 빈곤의 쳇바퀴에 밀려 잃어버린 지 오래인 문화적 풍요로움과 여유.
그러나 생생한 민족적 비극과 고통도 수십 년간 지속되는 동안 어느새 안고 살아야 할 일상이 되어버렸을 때, 그렇게 힘든 하루하루의 삶에서도 계속 삶을 지탱하게 해줄 따뜻한 사랑과 유머, 삶에 대한 애정과 희망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지는 요구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패배자로서의 상실감이 불러오는 무기력과 열등감을 뛰어넘고 과거의 고통을 교훈삼아 더 밝은 미래를 기획해내는 드높은 긍지가 필요할 것이다. 오히려 가장 고통 받고 억압받았던 자만이 자유와 평화의 진정한 완수자가 될 수 있다는 역설적 희망. 이 영화는 바로 그 상실의 콤플렉스를 따라가며 팔레스타인의 이미지와 역사에 새로운 현재적,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구획해 보려는 시도에 도전하는 듯하다.
엘하산 감독은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면서 통째로 사라진 팔레스타인 아카이브를 찾아 팔레스타인에서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에 이르는 여행을 떠난다. 1967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와 웨스트뱅크 침략 이후 폐허가 된 마을에서 패배와 재건의 요구가 한창일 때 찍었던 팔레스타인인들에 의한 자신들의 역사와 삶의 기록을 담고 있다는 아카이브. 그러나 벌써 20여 년 전에 사라진 이 아카이브를 찾아가는 과정은 결국 미궁에 봉착함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 속에서 오히려 수많은 현재의 팔레스타인의 삶을 드러내준다. 과거의 팔레스타인의 이미지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그 과거를 끌어안는 오늘날의 팔레스타인의 이미지를 찾아나서는 과정이랄까? 이 영화는 잃어버린 것을 찾으러 나선 여행의 성과는 단지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지의 여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상실과 회복의 틀을 뛰어넘는 다른 차원의 개입의 중요성을 말하는 듯 하다. 협의의 정치적 다큐멘터리의 긴박함은 아닐지라도 역사와 삶의 또 다른 중요한 면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김지현 (ACT!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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