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편지글은 어제 교무회의를 마치고 답답한 마음, 착잡한 마음으로 교장 선생님께 쓴 것이다.
교장 선생님,
토요일에는 서울 한양대학교에서 전교조 결성 16주년 분회장 대회라는 것이 있어서 다녔왔습니다. 중간에 돌아가신 윤영규 선생님 추모 영상이 나오더군요. 그 영상중에 연세대학교에서 있었던 전교조 결성식 화면도 나오구요. 갑자기 그 자리에 계셨다는 교장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그해 89년에 ‘미친 몽둥이는 일단 피하고 볼 일’이라며 전교조에서 탈퇴하셨다는 이야기도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미친 몽둥이가 많은 사람의 힘으로 물리쳐진 오늘, 미친 몽둥이를 피하신 교장 선생님은 무얼 하고 계신지 궁금했습니다. 아직도 미친 몽둥이가 몰아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새로운 뭉둥이를 발견하시고 물러서 계신 것인지 무척이나 궁금합니다.
정말 ‘처량한 교사’ 송준섭입니다. 지금 교실에 흐르는 음악이 그러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오늘 또다시 교무회의 시간을 통해 답답한 벽만을 느끼고, 어찌할 수 없는 한계를 느끼니 더욱 그러합니다.
살아온 세월의 무게, 경험의 폭을 비교하면 제가 어떻게 교장 선생님을 앞설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어려운 일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진실’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장 선생님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기쁨으로 알고 해오셨던 ‘들꽃’ 문집 내는 일, 그리고 그 문집 사이사이에서 작지만 힘차게 피어나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올바른 교육에 대한 기다림들이 그것이지요. 여기저기 쓰셨던 짧은 글들이나 편지들, 인터뷰를 통해서 말씀 하셨던 모든 것들이 다 그러한 ‘진실’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교장 선생님을 믿었기에 2002년 이 학교에 오면서 교장 임명과 관련된 내분으로 교사들과의 갈등이 있었던 것을 알고서도 열심히 배우며 아이들과 함께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오늘도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아직은 제가 ‘사기꾼’이라고 했던 말을 거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장 선생님은 한편으로는 학교 경영에는 부적합한 면이 많으시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욕심이 참 많으시기도 합니다. 정말 거창 바닥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처럼 그냥 교사로서 정년까지 하셨다면 존경 속에서 큰 스승이 되실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어렵습니다.
교장 선생님,
그렇게 하셔서 무엇을 얻고자 하십니까? 교장 선생님이 이 학교에, 아니 이 땅에 영원히 계실 분이 아니라면 남아 있을 사람들이 할 일도 있습니다. 성적표를 내고 안내고 문제 이전의 문제입니다. 그건 교장 선생님이 더 잘 아시는 문제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교무회의나 여러 자리를 통해서 ‘이오덕, 이현주, 공병우, 권정생, 스콧니어링’ 같은 이들을 언급하고 또 본 받을 점을 앞서 강조하실 수가 없겠지요. 교장선생님은 대안적인 교육에 관해 자주 언급하는 저에게 ‘그건 아직 우리 학교에서는 때가 아닙니다’라고 이야기 하셨지요? 어찌 이토록 차이가 있단 말입니까? 교장 선생님이 하시면 ‘대안’이 되고 교사들이 하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까?
지금 교무실에서 이야기 하는 저나 다른 선생님들의 이야기의 맥은 지난 번 제가 아림신문에 썼던 글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보고 “글 잘 쓰셨습니다” 하셨지요? 그 말은 그냥 인사치레셨습니까?
교장 선생님,
제가 오던 해에 교장 선생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때 이런 말씀 하셨지요. “교사들이 도무지 뭘 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자리를 깔아준다고 해도 안한다” 저도 그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습니다. 무기력하고 무사안일하고 대충하려는 수많은 교사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교장 선생님,
그런 분들이 있다고 해서, 몇몇이 앞서서 간다며 그런 분들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함께 가야지요. ‘함께’라면 말입니다.
오늘 6학년 학생들은 청소년 상담실에서 해주시는 성격유형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도 받았고요. 모두 16가지의 성격이 나옵니다. 검사를 해놓고 보니 참 신기합니다. 어쩜 그렇게 아이들 성격을 잘 보여주는지요. 황영아 선생님께 제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럼 같은 성격끼리 반을 만들거나, 모둠을 만들어 주면 좋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같은 성격끼리 모여 있으면 일은 원활하겠지만 ‘배움’이 없다고 합니다. 무엇이 부족한지도, 무엇이 잘되고 잘못되는지도 알 길이 없어지는 것이지요. 그렇더군요. 세상에 16가지 성격이 있지만 어느 성격이 좋고, 나쁘고도 없는거지요. ‘함께’ 가야하는 것이지요.
교장 선생님,
거창 양민학살 추모제 자료집에 좋은 시를 한편 쓰셨더군요. 진달래야, 개나리야 경쟁하지 말고 함께 피자고요. 백 번 옳은 생각이십니다. 우리 학교 구성원들도 그렇게 함께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시로 표현하신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겠습니다. ‘진실’은 교장 자리에 있으나 교사 자리에 있으나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실을 현실에 적용하려는 노력’이지요.
고속도로가 만들어진 뒤에 태어 났다고 해서 원래 고속도로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린애 뿐이겠지요. 어른이라면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가 왜 생겼는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오히려 고속도로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세대들은 형식적이나마 ‘민주주의’를 누려보지 못하고 자란 세대여서 나이가 들어서도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서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지 걱정스럽습니다. 국민학교 때부터 민주주의를 배우고 형식적이나마 회의라는 것을 통해서 의사 결정을 해오던 저희 세대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이제 저와 교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이겠습니까? 지금처럼 교무회의를 통해서 서로의 감정까지 상해가면서 목소리를 높여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합리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습니까?
이제는 교장 선생님에게 기대를 하고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할 힘도 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젠 울 일만 남은 것 같습니다. 저는 처량한 교사이니까요.
2005년 5월 30일 저녁 처량한 음악을 들으며 송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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