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 하나 동전 한 닢 뿐?
나는 88올림픽이 열렸던 해에 ‘육선지(아마추어 기타리스트들이 즐겨보는 악보로 여섯줄 기타의 지판을 선으로 그려놓은, 흔히 말하는 탭Tab 악보)’로 산타나의 음악을 처음 만났다. ‘문 플라워’와 ‘유로파’며 ‘쌈바 파아티’며 실로 주옥같다는 말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던 연주곡들을 흉내내기 위해 낑낑대던 시절이었으니 라틴 락을 하는 산타나란 밴드보다는 카를로스 산타나라는 기타리스트를 먼저 알게 된 셈이었다. 어쨌거나 엉성한 기타 키드로서 베스트 곡들을 모아놓은 그의 몇몇 편집음반을 어지간히 들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마흔 넘은 중년들끼리 다니는 어느 스탠드바에서 알바를 하던 나는 거기서 색소폰으로 ‘유로파’를 불어제끼는 악사의 연주를 듣고 그만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육선지에 수놓여 있던 그 황홀한 사운드가 저렇게 나올 수도 있구나, 하는 문화적 충격이었던 것이다.
대외적으로 ‘협연 3부작’으로 알려진 산타나의 이 앨범은 앞 선 두 작품 , 과 마찬가지로 카를로스 산타나의 오랜 팬이라면 실망을 금치 못할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상 최대의 슈퍼스타들이 다시 모였다”는 프로야구장 공갈포같은 홍보문구가 역설적으로 드러내듯 얼마나 내세울 게 없으면 한국에선 별 인기도 없는 몇몇 뮤지션의 이름 몇을 앞세웠겠는가 말이다. 물론 미셀브랜치가 참여한 I’M Feeling You나 스티븐 타일러가 참여한 Just Feel Better처럼 킬링 트랙임을 자부하는 곡 몇 개는 들을 만 하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들이 과연 산타나라는 걸출한 밴드의 손과 입에서 나와야 할 어떤 음악적 필연성이 있는가 하는 면에서는 대단히 미심쩍다. 피로에 찌든 산타나의 기타는 객원 뮤지션들의 활약 앞에서 우물쭈물 대기 일쑤고 모처럼 맛깔스럽게 배치된 하몬드올갠 리프도 피로에 찌든 모습 만을 연출할 뿐이다.
물론 또한번 크게 한 몫 잡아보자,는 비즈니스적 심보가 이 앨범에 진하게 개입된 결과라면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음반 해설지를 통해 “대중적인 기반으로 돌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깨친 산타나가 “아티스트 독자성이라는 록의 강령에 수절할 나이도 아니다”며 맞장구를 쳐주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잠꼬대와도 같은 횡설수설이란 점은 최근 키스의 진 시몬스를 두고 “뮤지션도 아니”라 쏘아붙이며 “존 콜트레인이나 밥 말리 같은 이들이 뮤지션”이란 주장을 한 이가 바로 산타나란 사실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음악 내적 일관성은 무시하고 허깨비같은 대중성을 쫓는 기획력에만 의존한 이 앨범은 밤무대 악사가 테너 섹소폰으로 연주하는 느끼한 ‘유로파’와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장사는 산타나 말 마따나 ‘뮤지션’ 스스로 나서서 하는 게 아니다. 뮤지션이 기타로 장사를 하려 들 때 기다리는 게 무엇이겠는가. 동전 한 닢 뿐이다. 기타 하나 동전 한 닢, 이것이 산타나의 미래는 아닐 것이다.
*산타나의 비난을 들은 진시몬스는 “산타나는 멋진 밴드다. 그의 평가에 불만 없다. 사람들은 맨날 똑같은 음식을 먹으려 들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식당의 메뉴판 짜는 일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카를로스 산타나는 <롤링스톤>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나는 60년 대의 그 산타나가 아니다”라며 “산타나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대형 뷔페와 같으며 나는 홀 지배인일 따름”이라고 설명했다.
<이 글은 음악잡지 ‘프라우드’ 11월호에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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