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쓰는게 재미있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에 맞는 글을 하나 써놓고, 하루에 열댓번은 더 들어와
마치 부끄러운 듯 슬며시 쳐다보고 가곤했다.
그랬던 글들의 냄새가 나는 참 좋았다.
지금은, 한 자 쓰는게 힘겨움이다.
2.
소통은 언어로만 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눈빛, 스킨쉽, 느낌 등 모든 것은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어쩌면 다만 소통이란 것은 ‘통’한다는 느낌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말과 눈빛과 스킨쉽을 모두 들이대어보아도 (정녕 모두 내보였었나..)
가끔씩 발견하여 큰 여운을 남겼던 소통은 지난 이야기일 뿐이다.
3.
사랑하는 그 사람은 변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관계가 변하는 것이다.
비단, 이 사람 뿐만은 아니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변한다.
변한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때로는 아쉬움이나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변함으로 인한 믿음따위에나 사랑따위가 정착되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오래토록 고통이다.
그 믿음, 사랑이라했던 것이 결국 내가 온전히 나를 믿지 못하고
온전한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쉬이 받아들일 수 없을 때,
나는 죽는게 차라리 편할까 한다.
4.
최근 죽는다는 것을 생각했다.
이토록 질기고 쉽게 생각하기는 처음이다.
어떤 이는 ‘무기력증이군’이라 단순한 ‘병명’을 내렸으나
치료약은 알려주지 않았으며 그 병도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어떤 이는 ‘다른 모든 것은 감당할 자신이 없는데, 어째서 죽는것만 감당할 수 있느냐’며
이해되지 않는다는 눈빛을 보내왔다.
5.
나를 잘 알아가기 위해 버려진 시간이다.
2005년은 나를 잘 알기 위한 시간이다. 버려진 시간이다.
왜 나를 잘 아는데, 이토록 고통스러워야 하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내 무엇이 나를 되려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그것은 성격이 아니라 상처일텐데,
그 상처를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는게, 내 마음의 어린아이를 돌보는게 왜 이렇게 되지 않는지
질문이 틀렸다. ‘왜’가 아니라 ‘무엇이’겠지.
무엇이 있나,
6.
종이컵, 휴지, 일회용 생리대 등을 쓰지 않기 위해 발악한 시간이 있었다.
채식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그때는 나름의 ‘일’을 하던 때였고
웃으며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던 시간이었다. 웃지 않아도 좋았다.
그럼 나는 일을 하는 나만 사랑하는건가,
마음에 저것들을 실행하는 나만 사랑하는건가,
7.
이 글은 왜 이렇게 와닿지 않나..
하루하루는 나를 잃어가는 시간들일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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