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관리체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후 선진국 시대의 장밋빛 환상에 빠져있던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한 고통을 안겨주었다.실직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노숙자가 늘어나고,생계형 범죄의 증가로 사회불안마저 가중되고 있다.소득 감소와 자산가치 하락은 중산층의 몰락으로 이어져 사회안정기반을 잠식해가고 있다.

대다수 국민이 6·25 이후 최대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한편에서는 금융자산을 바탕으로 한 일부 부유층의 호화·사치생활은 도를 더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일그러뜨리고 있다.

◇대량실업사태=지방 국립대를 나온 정모씨(37)는 경기도 부천시에서 플라스틱 제품 제조업체를 경영하다 지난해말 부도를 냈다.그는 채권자들의 빚독촉에 시달리다 못해 아내와 어린 자식을 고향으로 내려보낸 뒤 지난 3월부터 서소문공원에서 노숙을 하며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고실업사태는 IMF체제로 인한 모든 고통의 진원지이며 사회병리현상의 출발점이다.완전고용·평생직장의 신화는 교과서에나 보게 됐으며 이로 인해 사회 전반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9월말 현재 실업자수는 1백57만명으로 지난해 11월 이후 실직자가 하루평균 3천7백명씩 생겨나고 있다.노숙자는 가장 극단적인 실업사태의 현주소다.예전부터 떠돌던 부랑자를 제외한 홈리스족이 10월말 현재 서울에만 2천6백여명.여성,가족노숙자 및 여관 등을 전전하는 잠재 노숙자까지 합치면 전국적으로 2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취업난은 대량실업의 또 다른 모습이다.노동부 중앙고용정보관리소가 발표한 `3·4분기 구인·구직 및 취업동향’에 따르면 전체 구인자가 11만8천9백24명인데 비해 구직자는 51만3천3백82명으로 일자리 1개에 4.3명이 경쟁하고 있다.특히 대졸 이상 학력을 원하는 일자리의 경우 구인자는 6천7백85명인 반면 구직자는 9만6천3백96명에 달해 경쟁률이 14.2대1이나 된다.

내년 2월 대학문을 나서는 4년제 대학 졸업자는 19만7천여명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취업할 수 있는 인원은 5만명에 불과할 것으로 교육부는 보고 있다.누적된 대졸 미취업자 26만여명까지 합치면 취업재수생이 40여만명에 이른다.이로인해 장래가 불안한 대학생들의 휴학도 늘어 올 2학기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7만명이 늘어난 45만8천7백82명이 휴학했다.대학생 3명중 1명꼴로 휴학한 셈이다.

◇가족해체=IMF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무엇보다 가정이다.가장의 실직은 가정의 평화를 금가게 했다.개인파산과 가정폭력이 늘어나고 이혼율도 급등했으며 기아(棄兒)나 주부매춘과 같은 범죄행위마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올들어 9월까지 합의이혼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34%가 늘어난 9만4천8백98건에 이른다.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들어온 이혼상담건수도 9월의 경우 지난해 3백47건에 비해 60% 이상 늘어난 5백26건이다.내용면으로 보면 가정폭력으로 인한 상담이 1백90건,빚과 가장의 무능력이 1백44건으로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남성의 전화 이옥 소장(49·여)은 “IMF 관리체제로 인해 가장의 실직이 늘자 아내에 대한 화풀이 폭력이 늘었으며 주부들이 맞벌이 전선에 뛰어들면서 가정불화가 잇따라 이혼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생계비 때문에 버려지는 아이가 늘고 있는 것은 이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다.보건복지부 보육아동과에 따르면 올들어 6월까지 전국의 영·육아시설,일시보호처 2백76개소에 수용된 어린이는 4천8백7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천5백명이 늘었다.법원에 들어온 개인파산 신청건수도 올 1~9월 1백4건으로 지난해 전체의 10건보다 무려 10배 이상 늘어 가정붕괴를 재촉했다.

◇범죄급증=지난 1월 직장을 잃고 생후 6개월된 아들의 분유값을 마련하기 위해 고물상에서 고철을 훔치다 붙잡힌 김모씨(26).지난 9월 막노동 일감이 떨어진 뒤 보상금을 타내기 위해 아들의 손가락을 잘랐던 어느 아버지.

배고픔과 가난은 우리 사회에 수많은 `장발장’을 만들고 있다.생존위기에 내몰린 극빈계층의 생계형 범죄가 늘고 강력범죄도 증가하고있다.대검과 경찰청에 따르면 1·4분기에 구속된 단순 절도범은 4천3백75명으로 작년 동기(2천4백75명)에 비해 76.8%나 증가했다.올들어 9월말까지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등 5대범죄는 총 24만4천5백55건이 발생,작년 같은 기간 21만9천6백98건에 비해 11.3%가 증가했다.

사회의 각박함을 반영하듯 경찰서에 접수되는 고소·고발사건도 폭증하고 있다.심지어 3만원 때문에 고소한 사례도 있다.서초경찰서의 경우 올들어 5월말까지 지난해보다 60% 증가한 1만여건이 접수됐다.최근 서울시내 경찰서 조사계 직원 한명당 한달 평균 1백50건이 넘는 고소장을 접수하고 있다.

◇중산층의 붕괴와 빈익빈 부익부 현상=한국 사회의 든든한 허리가 됐던 중산층이 IMF 체제를 맞아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다.IMF시대의 고실업 사태와 고금리·고물가는 사회 근간을 이룬 중산층을 해체시키고 있으며 소득분배구조가 왜곡돼 빈익빈 부익부라는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올 상반기에 절정을 이뤘던 전세 분쟁은 서민층 고통의 일단을 보여주었다.소득 감소에 따라 더 싼 곳으로 집을 옮기고 싶어도 전세금을 되돌려받지 못해 발을 구르는 세입자들이나,집이 빠지지 않아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집주인이나 딱하기는 마찬가지였다.전세분쟁으로 인해 올 1~3월간 서울지법 본원에 접수된 부동산 가압류 신청건수는 5만6천8백22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8천2백90건의 2배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자식의 분유값을 마련하기 위해 절도행각을 벌이는 일과 화려한 네온사인을 뽐내는 고급 룸살롱이 흥청거리는 딴 세상의 풍경을 동시에 볼 수있는 형편이다.앉아서 떼돈을 번 일부 졸부들은 `이대로’를 외치고 있다.서울강남의 백화점에서는 2백만원짜리 손가방,6백만원짜리 핸드백,50만원짜리 구두 등 고가 수입 외제품이 진열되는 즉시 순식간에 팔려나가 IMF 체제가 된 뒤 오히려 매출액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였다.

통계청이 9월에 발표한 도시근로자 가계소득 조사에 따르면 하위 80%의 소득이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5.5~14.9% 줄어든 반면,상위 20%의 소득은 오히려 2.3% 늘어났다.하층민의 경우 연쇄도산과 대량실업의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는 반면 거액의 금융자산을 가진 상위계층은 금융소득종합과세까지 유보돼 고금리의 과실을 만끽하고 있기 때문이다.(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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