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 춘분 절기다. 농가월령가는 ‘말랐던 풀뿌리는 힘차게 싹이 트고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니 고들빼기 씀바귀 소루쟁이 물쑥 달래김치 냉잇국으로 입맛을 돋구어 봄갈이를 나설 때’로 묘사한다.

그러나 요즈음 ‘배달의 농사 형제’들은 그럴 기분이 아니다. 한미 FTA가 바싹 마른 억하심정에 불을 놓는 까닭이다. 체결되는 순간 대박을 터뜨린다는 강자들은 여론을 오도하고, 처음부터 잃고 들어가는 약자들은 집회시위의 권리도 박탈당한 채 폭력경찰의 방패에 찍힌다. 민감 품목을 막는다고 하지만, 농업이 개방되면 국가가 있어도 농민들은 들을 빼앗긴 거나 다름없다. 그래서 오늘 일제 강점기의 시인 이상화의 절창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읽으며 노래로 듣는다.

‘입술을 다문 하늘과 들’을 대신하여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가르마 같은 논길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 볼까나.

80년대를 대학에서 보낸 사람들이라면 ‘노찾사’의 노래타래에서 이 노래를 들었을 것이다. <아침이슬>의 김민기와 어린이들의 목소리로 녹음하여 전두환 정권의 검열을 통과했던 이 노래는 1975년 11월 9일에 창단한 교사 극단 <상황>이 같은 제목으로 서울시민회관 별관 무대에서 올린 공연에서 주제곡으로 처음 불렀다. 작곡자는 단원이던 변규백 선생(서울 대성고). 1976년 삼일절의 일이다.

그 시절이 어느 때인가. 긴급조치 9호, 고교 학도호국단, 4대 전시 입법, 교수재임용제 등, 박정희 유신독재체제가 맹독을 뿜어대던 시절,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 / 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 / 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 대고 / 밟아 대며 조상들을 비웃어 대”던 <겨울공화국>이었으니 극단을 만든 교사들의 의기가 드높았다고 하겠다.

<상황>의 창단 단원은 대표 고춘, 연출 이재오(대성고, 현 한나라당 최고위원), 기획 임기묵(명성여고, 올해 경복고 퇴임), 이금림(명성여고, TV 드라마 <옛날의 금잔디>, <은실이> 작가) 등 10명으로 출발했다. 새내기 교사 김정자(중화중)는 2회 때부터, 배우 김명곤(배화여고, 현 문화관광부장관)은 4회부터 참여한다.

연극무대와 문화운동을 바탕으로 한 교육운동, 민주화운동이 이들의 목표였다. 따라서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위해 사회성이 짙은 창작극을 주로 올렸다. 76년 3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필두로 76년 8월 당시 사회를 풍자한 노경식 작 <소작의 땅>, 77년 2월 준비했다가 대표가 연행되는 바람에 공연이 무산된 세태 풍자극 <삼중 인격>, 78년 9월 1일~4일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성황리에 올린 이근삼 작 <아벨만 이야기>, 1979년 2월 15일부터 일주일간 쎄실극장에서 상연한 창작극 <뻐꾹 뻐 뻐꾹> 등 매년 한 편 이상의 작품을 상연했다. 작품에 따라서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엄혹한 시대상황에도 불구하고 <상황>의 공연은 중고교 학생, 교사, 일반인들로 항상 만석을 이루었다고 한다. 사복경찰들도 관객으로 한 몫을 했고. 극단은 76년 10월 문공부 등록까지 마쳤으나 핵심 단원들이 남민전 산하 ‘구국교원연맹’에 가입하여 79년 10월 구속됨으로써 해체되고 만다. 그들이 당시 준비했다가 유산된 작품이 역시 이근삼 작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였으니 역설적으로 독재자 박정희의 최후, 10·26 사태를 예견하기라도 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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