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논쟁 속 숨지는 과정 TV공개 비판 목소리 커져 제소된 ‘죽음의 의사’ 케보키언 ‘죽을 권리’ 심판 원해

잭 케보키언(70)은 추수감사절(11월 26일)을 감방에서 단식투쟁을 하며 보내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막상 25일 판사가 보석 결정을 내리자 그는 디트로이트市 교외의 자택에서 친구들과 함께 칠면조 고기와 으깬 감자를 맛있게 먹었다. 저녁식사 후 그와 10여 명의 친구들은 추리게임을 했다. 케보키언이 질문을 던졌다.“오두막에 4구의 시체가 있다. 그들의 사인은?” 친구들은 힌트를 얻기 위해 그에게 단답성 질문을 던졌다. 결국 그 수수께끼는 비행기 추락사고 탓이라는 결론으로 끝났다. 그 뒤 케보키언은 사람의 정신은 머리가 아니라 손에 있다며 친구들을 난해한 논쟁으로 몰아갔다. 케보키언은 적어도 하루는 적들의 공격을 피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공격의 고삐를 죄었다.

지난주 그를 1급살인 혐의로 기소한 검사는 원래 그를 기소하는 데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걸고 그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그것도 케보키언이 루게릭병으로 투병중인 한 남자의 안락사 과정을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CBS TV의‘식스티 미니츠’에 공개하기 전의 이야기다. 이번에 케보키언은 무시무시한 작업을 한 단계 더 새로운 경지로 발전시켰다. 자신이 만든 ‘자살기계’를 이용해 환자의 자살을 도운 것이 아니라 환자에게 직접

독극물을 주사한 것이다. 미시간州 정부가 지난 9월 자살방조를 금지하자 케보키언은 이제 새로운, 어쩌면 최후의 법정대결을 벌일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그의 행위로 인해 인간에게 과연 자신의 죽음을 택할 권리가 있느냐, 의사는 환자의 자살을 도와줘야 하느냐에 관한 해묵은 논쟁이 재연됐다. 30개 이상의 州가 자살방조를 금지하고 있다. 이제 케보키언은 한 술 더 떠 안락사의 집행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법정에서 자기 자신을 직접 변호할 것이며 투옥될 경우 단식으로 죽겠다는 그는 과연 법을 좀더 온정적으로 만들자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순교자가 되려는 것인가.

케보키언은 전부터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같은 양면성을 보였다. 인간의 고통에 대해 달변을 토하는가 하면 소름끼치는 의료실험을 제안했다. 그는 인터뷰를 사양하는 편이지만 무시되는 것도 싫어하는 외톨이다. 케보키언의 오랜 친구로 그의 분신격인 변호사 제프리 피거는 “그는 자신을 파멸시키려 들고 있다”고 말했다. 케보키언은 피거 덕택에 세 차례나 무죄 방면됐고, 오클랜드 카운티의 데이비드 고르시카 검사도 항소를 서두르지 않았다. 고르시카는 ‘식스티 미니츠’를 보면서 살인사건이라고 판단, 그의 자수를 촉구했고 그는 기꺼이 응했다. 케보키언은 친한 친구들을 대동하고 미소를 띠며 법정에 들어섰다. 검찰은 케보키언이 사회에 대한 위협이므로 재판 전에 투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케보키언은 모두 1백30차례나 자살을 도왔다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한 사건의 재판이 종결되지 않은 와중에서도 자살을 도운 적이 있다. 판사는 케보키언이 “어떤 살인행위에도 개입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석방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케보키언은 즐거운 표정으로 “주차위반 딱지도 떼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케보키언은 체포된 상태에서도 영락없이 마음씨 좋은 의사였다. 사실 그는 대다수 환자가족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다. 그는 자살 의뢰 환자의 정신상태를 조심스레 검토할 뿐 아니라 자살기계의 이용보다 불허하는 때가 더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환자 중에는 불치병이 아닌 만성질환자가 많았다. 일부는 죽을 때 우울증세를 보여 과연 자살 결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케보키언은 환자가 죽기 전에 의료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뜻도 내비쳐 일부 지지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마치 나치의 생체실험을 연상시킨다. 친구들은 케보키언에게는 자기 파괴적 성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고전음악狂인 그는 평생 모은 돈을 헨델의 ‘메시아’ 영화화에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그의 약점이 위협적 성격을 띠게 된 것 같다. 지난 5월 그는 한 환자의 자살을 도운 뒤 시신을 영안실로 넘기는 과정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그는 체포거부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현재 집행유예중이다.

이미 州정부에 의해 의사 면허가 취소된 그는 지난 6월 45세의 환자가 숨이 채 끊기기도 전에 콩팥을 떼어내 이식수술용으로 제공함으로써 지지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런 행각은 결국 안락사의 TV 보도라는 최근 기행으로 이어졌다. 검찰은 케보키언의 진짜 동기는 TV 출연이라고 말했다. 존 스크르진스키 검사는 “그는 홍보효과를 노리는 게 틀림없다. 그는 깊은 정서적 박탈감을 안고 있다. 부인이나 가족도 없고, 의사 면허도 취소돼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케보키언이 그저 외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결혼한 적이 없었지만 40대 후반에 한 번 할 뻔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속마음을 털어놓을 가까운 친구들도 있다. 의료용품 공급상 닐 니콜(58)은 케보키언이 사용한 약물 일부를 조달하고 몇 차례 자기 집을 자살방조 시행장소로 내줬다고 한다. 과거 재판 때 케보키언의 배심원 선정을 도운 필적감정사 루스 홈스도 친한 친구다. “케보키언은 박학다식하다. 머리 속에 인공위성이 들어앉은 듯하다. 세계사·정치·예술 등 모르는 게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홈스의 딸 세라(23)는 케보키언과 플루트 이중주를 연주한다. 세라는 대의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다는 점에서 케보키언을 갈릴레오나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비유하면서 “그 때문에 죽지나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케보키언은 죽음의 길을 택할지도 모른다. 그가 단식투쟁 운운하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 옳은 일을 하고도 징역을 사느니 차라리 굶어 죽겠다는 게 그의 辯이다. 이제 문제는 그가 자신을 변호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미시간州 지사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뒤 권토중래를 노리는 피거에게 사건을 맡기겠느냐는 것이다. 피거는 케보키언이 심장마비로 죽느니 차라리 감옥에서 자기 손으로 생을 마감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집안에 자기만큼 오래 산 사람이 없다면서 곧 죽을 거라고 수없이 말했다. 그게 걱정인 모양”이라고 피거는 말했다.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미시간州 주민 대다수는 케보키언의 최근 행각을 두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한때 그를 숭배했던 일부 자살방조 운동가들조차 그가 능동적 안락사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는 설령 무죄판결을 받더라도 지지기반을 잃을 수 있다. 그에겐 그것이 죽음만도 못한 운명일지도 모른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락사 논쟁의 흐름

케보키언 박사의 안락사 시행은 인간의 죽을 권리에 대한 해묵은 논쟁의 최신판이라 할 수 있다. 말썽 많은 안락사 논쟁의 대표적 사례를 돌이켜보면 다음과 같다.

1973년: 美 의학협회(AMA)는 환자권리장전을 선포했다. 그 획기적 선언은 환자에게 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1976년: 뉴저지州 대법원은 진정제와 알코올 과다복용으로 1년간 식물인간 상태에 있던 케어런 앤 퀸런의 부모가 딸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녀는 9년 뒤 사망했다. 1979년: 암으로 죽어가던 뉴욕의 예술가 조 로먼은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친구와 가족들에게 자신이 자살할 생각임을 밝혔다. 그녀는 나중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했다. 1985년: 베티 롤린은 어머니의 난소암 투병기를 담은 ‘마지막 소망’을 출간했다. 그 책은 그녀의 어머니 아이다 롤린이 진정제 과다 투여로 자살했다고 밝혔다. 1990년: 잭 케보키언 박사가 최초로 자신이 직접 만든 기계를 이용해 노인성 치매 환자 재닛 애드킨스의 자살을 도왔다. 한편 7년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던 낸시 크루전의 부모는 오랜 법정투쟁 끝에 그녀의 급식 튜브를 제거해도 좋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크루전의 친구와 동료 직원들은 법정에서 그녀가 생명 연장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1991년: ‘헴록 사회’의 창설자 데릭 험프리가 최초의 자살 안내서 ‘마지막 출구’를 펴냈다. 말 많은 그 책은 나중에 전국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1994년: 오리건州는 미국 최초로 불치병 환자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약을 의사가 처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의 주민발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논란 끝에 지난해에야 비로소 발효됐다. 1995년: 조지 덜러리는 다발성 경화증을 앓던 부인의 오랜 투병생활을 담은 일기‘그러나 그녀가 죽고 싶어한다면’을 펴냈다. 그 책은 두 부부가 약물과용의 방법으로 그녀의 생명을 끝내기로 고뇌에 찬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남편은 살인 기도혐의로 넉 달간 복역했다. 1997년: 美 대법원은 의사의 도움으로 자살할 권리는 헌법상 보장되지 않는다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그 판결은 죽어 가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독극물 투여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뉴욕과 워싱턴州의 법을 지지한 것이다. 1998년: 11월 미시간州 유권자들은 의사가 돕는 자살방조 행위를 합법화하자는 주민 발의안을 부결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