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집단이기주의의 첨병 ‘국회 법사위’…사시 증원저지에 성공

행정자치부는 12월17일 내년도 사법시험 선발인원을 올해와 같은 수준인 700명선으로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7·9급 등 나머지 공무원 공채는 올해보다 28% 늘려 뽑기로 한 것과 대조를 이루는 결정이었다. 사법시험 정원 문제는 그동안 법조계와 학계·시민단체 사이에 팽팽한 설전이 벌어진 핫이슈였다. 행정자치부의 결정은 500명선으로 줄여야 한다는 법조계의 주장과 예정대로 800명을 뽑아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두루뭉술하게 절충한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500명으로 줄여달라”

사법시험 정원을 늘린다는 방침은 지난 95년 세계화추진위원회와 대법원이 합의한 ‘법률서비스 및 법조인 양성제도 세계화 방안’의 핵심 내용이었다. 당시 전문법과대학원(로스쿨) 설치안 등 대부분의 사법개혁안이 법조계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상황에서 그나마 합의를 통해 채택된 개혁안이었던 것이다. 이에 따라 95년 300명이었던 사법시험 정원은 96년 500명, 97년 600명, 98년 700명으로 점차 확대됐다.

그러나 사법개혁의 ‘고갱이’라고 할 만한 법조인력 증원 방침은 막상 이를 대선 공약으로 재확인했던 김대중 정부 아래서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 99년 800명, 2000년 이후 1천∼2천명이라는 사법시험 정원확대 계획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이끌어낸 것은 바로 똘똘 뭉친 법조계의 힘이었다.

지난 9월 가재환 사법연수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올해 초 300명이 졸업한 27기 사법연수원생 중에도 미취업자가 있으며 500명이 졸업할 내년에는 취업난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사법시험 정원 축소를 건의했다. 이어 10월 말 대법원·법무부·대한변협 등 이른바 ‘법조3륜’을 대표하는 기관이 일제히 “경제상황이 악화된 가운데 법조인을 늘릴 경우 법조 부조리를 심화시킬 것”이라며 사법시험 정원을 500명으로 줄여달라고 행정자치부에 의견서를 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 대한 논리적인 공박(표 참조)은 별개로 치더라도 법률 서비스의 실수요자인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법조인 증원의 필요성이 피부로 느껴진다. 90∼96년 소송에서 변호사를 선임한 비율은 형사사건 36.2%, 행정사건 33.8%, 민사사건 26.9%에 그친다. 변호사 비용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최근 2년 동안 변호사에게 민·형사사건을 위임한 경험이 있는 5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2.5%가 변호사 보수수준이 낮아져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변호사 보수기준에 관한 규칙’을 어긴 변호사도 38.1%에 이르렀다. 또 응답자의 59.6%는 변호사 보수가 소송에 대한 변호사의 노력량에 비해 지나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밖에 소송중 변호사와 면담할 기회가 없다(25.9%), 변호사의 서비스에 불만이 있어도 항의를 포기한다(63.1%), 변호사가 재판에 잘 출석하지 않는다(10.1%)는 지적도 나왔다.

변호사가 법무장관을 견제한다?

이렇게 법률 서비스의 질은 낮고 가격은 높은 현실 속에서 법조인력을 줄이려는 것은 “특권을 소수에 한정하기 위한 담합”(최대권 서울대 법대 교수)이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한인섭 서울대 법대 교수는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네 병원의 의사나 약사처럼 언제나 저렴한 비용으로 변호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며 “이제 변호사는 법정에 나가 ‘선처를 부탁합니다’하는 말 한마디로 고소득을 보장받는 직업이 아니라 발로 뛰며 국민의 생활에 다가가는 직업으로 자리매김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위한 제도개혁은 번번이 법조계의 ‘집단 이기주의’에 가로막히고 있으며, 그 첨병 구실은 국회 법사위가 맡고 있다. 법사위의 법조계 출신 의원들은 11월5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법조인 증원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울고 싶은 놈 뺨 때리는’ 질의로 일관했다. 여기서 한술 더 뜬 것이 지난 정기국회 때의 ‘부가세법 개정안 소동’이다. 변호사 등 전문직에 부가세를 새로 매기는 이 법안이 재경위에서 넘어오자 법사위는 법안 내용을 따지며 처리를 지연시켰다. 법 체계상 문제나 자구 심사만 할 수 있는 법사위의 권한을 뛰어넘은 월권행위였다. 이에 대해 법조출신이 아닌 조순형·조홍규(국민회의)·이규택(한나라당) 의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입법과정을 통한 법조계의 ‘밥그릇 지키기’는 이 밖에도 비일비재하다.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된 변호사법 개정안에는 법조비리 청산의 핵심인 전관예우 금지 조항이 빠져 있다. 지난해 정기국회에서는 법무사들이 ‘사무원을 시켜 등기신청을 할 수 있도록’ 부동산등기법을 개정해달라고 요구하자 대법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조출신 의원들이 의원입법으로 통과시켰다. 체면상 직접 등기신청을 하지 못하던 변호사로서는 손대지 않고 코를 푼 셈이다.

조순형 의원은 “법원과 검찰을 견제할 유일한 기관인 법사위가 대부분 법조계 출신으로 구성되는 것은 문제”라며 “변호사법에 따라 법무장관의 감독을 받는 변호사가 법무장관을 견제한다는 모순이 빚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법사위 위원의 적어도 과반수는 비법조 출신으로 배정해야 하며 국회의원 임기중 변호사 업무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지금 법조계는 입법·사법·행정부에 포진한 세력을 기반으로 개혁에 가장 완강히 저항하는 기득권층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사법개혁에 적극적인 법학자들을 겨냥해 “교수들에게도 변호사 자격증을 주면 조용해질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법조인이 누리는 특권의 달콤함과 그 완강한 유혹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사법개혁이 사회개혁의 바로미터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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