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위기 극복 ‘거품제거’와 ‘시청률 경쟁 자제’ 약속 잊은 방송

1998년은 IMF구제금융 한파와 더불어 50년만의 정권교체라는 사회적 정치적 변화속에 시작되었다. 이같은 사회 변화속에 거대 공룡의 모양새를 하고 있던 방송사들은 구조조정이라는 칼날앞에 맞닥뜨려 조직개편과 축소 및 인원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같은 외형적인 구조조정과 더불어 ‘시청률 경쟁을 지양하기 위해 오락, 쇼 프로그램의 대응편성 자제’, ‘과소비와 호화사치를 조장하는 드라마 지양’, ‘경제 살리기에 역행하는 프로그램 자제’, ‘경제 살리기 캠페인 방송’ 등을 주요 내용으로 방송프로그램의 거품을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 과거 쉽게 접하지 못했던 주제에 도전한 방송사 노력 엿보여

방송사의 변화 노력으로 시청자들은 과거에는 쉽게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프로그램들을 시청할 수 있었다. 방송은 그동안 성역처럼 여겨지던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기득권층의 비리와 공무원의 부정 부패실태, 무소불위의 힘을 남용한 언론의 횡포와 오만함, 대기업의 탈세와 부정에 대한 부분을 자기반성과 함께 적나라하게 파헤치는 모습을 보였다. (MBC PD수첩 ‘새정부 이대로 안된다’시리즈, ‘방송문화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KBS ‘다큐멘터리 대한민국’, ‘개혁리포트’) 그 동안 방송은 사회·국가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문제의 책임과 변화의 주체를 국민에게만 국한시켰던 과거의 안일한 모습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거듭나야할 대상을 제대로 지적해 내 시청자들의 마음을 채웠다.

이밖에 어려운 경제를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경제관련 프로그램들이 등장해 방송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 또한 보였다.

작품성이 떨어지는 가운데 소비지향적이고, 선정적·폭력적인 드라마가 판치는 과거와는 달리 어려운 현실을 극복해 나가며 열심히 생활하는 서민들의 이야기(‘엄마의 딸’ SBS, ‘육남매’MBC)를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뒤를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연예인들의 말장난으로 일관하던 토크쇼에 정치, 경제, 사회, 문화분야 등 다양한 주제와 인물을 만날 수 있는 ‘정범구의 세상읽기'(KBS2TV)와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하였다.

한 때 시청률이 낮아 폐지 위기에까지 몰렸으나 신선한 주제와 진행자의 매끄러운 진행솜씨에 시청자들의 프로그램 살리기 분위기에 힘입어 지금은 좋은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밖에도 작위적인 웃음 만들기와 국적이 불분명한 프로그램이 판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센 쇼·코미디·오락프로그램에 우리네 어른들의 삶의 모습과 지혜, 웃음과 눈물 등을 잔잔하게 전해주는 프로그램(‘서세원의 좋은세상 만들기’SBS)이 등장해 즐거운 웃음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심야시간대와 새벽시간대를 전전하던 ‘국악 한마당'(KBS)이 일요일 오전에 편성, 좀더 많은 시청자가 우리의 전통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등 긍정적인 모습이 나타났다. 이밖에 사회적으로 터부시하고, 방송에서도 금기시되었던 ‘성(性)'(교육)을 ‘생활속의 ‘성”, ‘일상속의 ‘성”으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구성애의 아우성’MBC)를 만들어 주고, 시청자들의 꾸밈없는 목소리를 직접 전해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시청자칼럼 – 우리사는 세상’KBS2TV)등이 등장하여 시청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같이 좋은 프로그램은 전체 프로그램 편성비율 가운데 극히 적은 비율이라 1998년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 옛 모습만을 지향한 드라마

지난 2월 방송사들은 사회적으로 호화사치를 부추겨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주고, 남녀간의 선정적이며 비정상적인 사랑타령만을 일삼는 드라마의 내용과 편수를 지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한해동안 방송된 드라마를 보면 ‘….지양하겠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비정상적인 사랑과, 선정적이며 폭력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결혼7년 ‘KBS 2TV, ‘포옹’, ‘옛 사랑의 그림자’ SBS, ‘복수혈전’MBC) 줄이겠다던 드라마 편수도 ‘드라마 걸작선’이라는 이름으로 아침과 심야시간대에 재방송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오히려 늘어났다. 10월 이후에는 각 방송사들이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시트콤류 드라마를 여러편 신설(‘사관과 신사’, ‘싱싱 손자병법’ KBS 2TV, ‘아니 벌써’MBC, ‘나 어때’SBS)하여 결과적으로 과거와 비교해 달라진 점을 찾기가 힘들다.

* ‘엿보기 문화’ 확산시킨 쇼·오락프로그램

방송사들이 10대 위주의 쇼프로그램을 줄이겠다는 발표로 청소년들의 반발과 더불어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없어진다는 일부의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각 방송사들의 온가족이 함께 시청할 수 있는 쇼·오락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음악 프로그램의 경우 다시 10대위주의 프로그램이 난무하고 있고 립싱크와 순위를 매기는 내용으로 꾸며지고 있다.(‘뮤직뱅크’KBS 2TV, ‘음악캠프’MBC, ‘SBS인기가요’SBS). 뿐만 아니라 즐거운 웃음을 시청자들에게 전해주기 보다는 짜증스러움과 더불어 불쾌감을 전해주고 심지어 ‘몰래 카메라’ ‘몰래 전화’를 수단으로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오락프로그램을 통해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 객관성과 형평성 삐그덕, 오락성 강화된 뉴스

지난해 말부터 경제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이 TV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좀더 새로운 정보를 얻기 위해 뉴스를 시청하는 비율이 과거에 비해 급상승하였다.

그러나 뉴스는 구제금융시대에 시청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경제, 사회, 문화에 관련된 정보를 전해주기 보다는 불안한 사회현상을 전하는데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이처럼 ‘IMF시대에 다양한 정보를 전하겠다’는 초기의 의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가운데, 기존 코미디, 쇼, 오락프로그램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선정성’ 문제가 뉴스에도 등장하였다. 이는 ‘시청률 경쟁을 자제하겠다던 약속을 뒷전으로 미루고 뉴스마저 시청률 경쟁에 발벗고 나선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 2월 ‘사람 잡은 소방차’, ‘노래방 접대부’, ‘승강기의 비명소리’, ‘단속할테면 해봐라’, ‘낮엔 선수 밤엔 강도'(MBC)등 주간지 광고 문구로 착각할 정도의 선정적인 제목과 충격적인 화면을 사용하는가 하면, 지난 9월에는 선정적인 뉴스의 대표주자라는 평을 받은 SBS가 ‘내가 포르노 스타?’, ‘충격고백 14살 마약 파트너’, ‘화가가 음란 몰카’, ‘인터걸 성업’등 ‘성(性)’을 주제로 한 내용을 야한 화면과 더불어 보도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 가운데 ‘화가가 음란 몰카’의 경우 KBS와 SBS는 화장실에서 여성이 옷을 추스리는 모습과, 여자 탈의실의 모습을 허술한 모자이크로 처리해 TV를 통해 온 국민이 한편의 포르노(?)를 함께 시청하는 진풍경까지 만들었다.

이밖에 마산 ‘어린이 손가락 절단 보도’ ‘땡김뉴스의 부활을 염려케 했던 집권초기 대통령 동정보도’ ‘북한위성 관련 보도’ 등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안일한 보도태도와 냉전논리를 여전히 강조하는 보도, 객관적 시각을 상실한 보도태도 등 과거의 문제점들이 여전히 답습되고 있다.

* ‘호평’과 ‘악평’이 공존한 시사고발프로그램

시사보도프로그램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과거에 쉽게 다루지 못했던 언론, 재벌, 권력의 핵심부, 기득권층에 대한 문제점을 파헤치는 내용을 다루어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초기 시사고발프로그램의 순기능을 제대로 살렸던 모습이 중반에는 선정적이며 자극적인 소재와, 몰래카메라 사용으로 인한 초상권침해 등의 문제로 시청자들의 비판이 거셌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10대 여학생들이 4-50대 남성들과의 성 관계를 전제로 한 만남의 문제점을 다룬 MBC ‘PD 수첩’의 ‘원조교제 – 10대 신종 아르바이트’와 일본만화의 선정성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는 것을 고발하면서 여성의 신체 일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SBS ‘뉴스추적’의 ‘만화침공’, SBS ‘추적 사건과 사람들의’ ‘아동 성학대의 현장’등이 있다.

이밖에 사건재연프로그램인 ‘경찰청 사람들'(MBC), ‘공개수배 사건 25시'(KBS 2TV), ‘다큐 사건파일'(SBS) 같은 경우는 범죄예방이라는 기획의도와는 달리 어린이 시청자들의 호기심과 모방범죄 유발의 원인이 되고 있어 시민단체들로부터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받았다.

* ‘무늬만’ 보호받는 어린이 시청시간대

어린이는 앞으로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갈 새싹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다. 그렇기에 방송에서도 평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를 어린이 시청시간대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편성규칙은 오후 프로그램 시작이후 적어도 2시간동안은 어린이들의 올바른 정서함양과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이 방송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 편성시간대는 무늬만 어린이를 위한 것으로 현재 어린이 시청시간대가 어린이프로그램으로 꾸며지고 있는 곳은 KBS 2TV 뿐이다.

KBS 1TV, MBC, SBS는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볼 수 없는 프로그램들이(‘6시 내고향’, ‘최화정의 맛있는 요리 이야기’, ‘특급 연예통신’) 편성 돼있다. 또한 지난 1월 방송사들의 자정선언으로 어린이 프로그램이 폐지되거나, 시간이 단축되는 시련마저 겪어야 했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성인대상 프로그램의 예고 방송까지 보아야 하는 아픔이 있다.

* ‘시청률 싸움’과 ‘국민과의 약속 망각하기’

국가경제 위기 상황을 맞아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방향으로 ‘시청률에 관계없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던 방송사의 의지표현은 잠시, 방송사간의 치열한 시청률의 싸움 때문에 드라마, 쇼 오락, 뉴스, 시사고발, 어린이 프로그램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패배한 프로그램들은 어떠한 이유를 불문하고 조기 종영되거나 애초의 기획의도가 대폭 수정되는 비극적인 상황까지 맞게 되었다.(‘살다보면’KBS, ‘대왕의 길’MBC, ‘사랑’MBC)

이처럼 방송사들이 시청자와의 약속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태도는 아쉬움을 넘어 배신감마저 느끼게 해 시청자주권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조차 의심스럽다. 앞으로 다가올 1999년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과 더불어 외국 프로그램이 안방에 들어오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속에 방송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비법은 아주 간단하다. 이제까지 밝혔던 방송사의 자정의지를 그대로 실현만 해내면 되는 것이다. 1999년에는 그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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