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재추대 과정서 실천승가회·선우도량 재분열… 방법 차이 극복할 제3세력론 고개

한국불교에 희망은 있는가.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선거를 둘러싸고 유혈과 폭력이 춤춘 조계사 사태를 착잡하게 지켜본 불자들 가슴을 파고드는 화두다.

조계사에 공권력이 투입된 지난 12월23일, 공교롭게도 서울 신라호텔에서는 종교인평화회의와 가톨릭종교문화연구원 관계자들의 송년 간담회가 열렸다. 천주교는 물론 기독교·불교·유교·천도교 성직자들과 종교학 교수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조계종 사태가 화제로 떠올랐다. 한신대 김경재 교수가 “국민들 가슴 한켠에 그래도 청정영역으로 남아 있던 불교가 너무 실망을 줬다”고 발언하자 기다렸다는 듯 비판의 목소리들이 연이었다.

개혁세력의 분열이 폭력 사태의 원인

상황의 반전이 필요해서였을까. 불교사상을 전공한 동국대 정병조 부총장이 웃음반 사과반으로 의미있는 말을 던졌다. “너무 비관할 필요 없어요.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것 아닙니까?”

사실 두차례의 승려대회와 공권력 투입 등 모두 3차례에 걸친 폭력으로 얼룩진 조계종 사태는 오늘 한국불교의 수준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23일 경찰에 연행된 승려들의 전과를 모두 합치면 전과 107범이 된다는 분석은 또다른 충격이다. 108번뇌에 꼭 하나가 비는 셈이다.

결국 스님들 역량의 한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오히려 곪은 것이 터져 다행이라는 분석이 진정한 불교개혁을 모색하는 스님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불교개혁을 철저히 추진해 말 그대로 전화위복을 이루자는 것이다.

불교 내부에서 희망을 찾는다면 무엇보다 먼저 실천불교승가회와 선우도량을 들 수 있다. 두 조직은 지난 94년 종단개혁을 일궈낸 쌍두마차였으나 이번 29대 총무원장선거에서 확연히 갈라졌다. 선우도량 대표를 지낸 혜담 스님 등이 월주 스님쪽을 지지한 반면 실천불교승가회는 지선 스님(백양사 주지)을 지지하고 나섰다. 또 한때 실천불교승가회 활동을 했던 법성 스님은 월주 스님의 핵심참모로 활동했다. 94년 종단개혁을 추진한 개혁세력이 분열된 셈이다.

물론 개혁세력 분열론에 두 진영은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가령 지선 스님쪽은 개혁세력의 분열이 아니라 ‘진정한 개혁세력’과 ‘겉만 개혁적인 세력’들이 분명히 갈라선 것이라고 말한다. 94년 종단개혁의 실질적 주체였던 실천불교승가회를 배제해온 월주 총무원장 체제는 결국 과거 기득권세력들을 전혀 청산하지 못한 채 그들 스스로 기득권세력에 포섭됐다는 것이 지선 스님 진영의 일관된 주장이다.

반면 월주 스님쪽을 도운 법성 스님의 시각은 다르다. 이제 과거와 같은 개혁과 반개혁, 민주와 반민주라는 단순구도 속에서 문제를 파악할 때는 지났다는 것이다. 법성 스님은 특히 불교개혁은 현실적 대안없는 구호나 사회민주화투쟁의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불교적 내용이 담겨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는 선우도량쪽의 일관된 기조이다.

새로운 그룹이 불교의 희망이다

두 진영 사이에 패던 골은 11월11일 월탄 스님 진영이 총무원청사를 폭력으로 점거하고 정화개혁회의를 출범시키면서 메워졌다. 실천불교승가회와 선우도량 등 개혁세력들이 정화개혁회의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 다시 손잡은 것이다. 특히 월주 스님 사퇴 이후 총무원장권한대행을 맡은 도법 스님(실상사 주지)은 월주 스님의 상좌임에도 이번 선거에 월주 스님이 출마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았기에 개혁세력들의 연대는 한결 손쉬웠다.

그러나 정화개혁회의가 지난 23일 총무원청사에서 밀려난 뒤 두 진영은 다시 갈라졌다. 이에 대해 실천불교승가회의 법안 스님은 “정화회의에 맞서 함께 일해놓고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따돌린 채 고산 스님을 총무원장 후보로 옹립했다”며 실천불교승가회쪽을 배제하려는 의도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지선 스님과 고산 스님의 관계도 미묘하다. 지선 스님이 지난 94년 종단개혁 뒤 고산 스님을 총무원장으로 옹립하려 했으나 본인의 고사로 어쩔 수 없이 월주 스님을 밀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선 스님은 이번 29대 선거에 나오기 전에도 고산 스님을 찾아가 “스님이 나오신다면 안 나겠다”는 말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고산 스님을 추대키로 의견이 모아지면서 종단 내 개혁세력인 실천불교승가회와 선우도량쪽은 다시 갈라서는 꼴이 됐다.

불교개혁의 두 견인차가 이처럼 힘을 모아 개혁을 일궈내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앞서 분석했듯 실천불교승가회와 선우도량의 개혁방법론의 차이 때문 아닐까. 동국대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조계종 총무원에서 일하는 황찬익씨는 “두 단체가 모두 94년 종단개혁 이후 영향력을 잃어왔다는 데 문제의 근원이 있다”며 이번 사태로 두 단체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그는 “폭력사태를 빚은 이번 선거에 깊이 개입하지 않고 사회와 종단의 앞날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젊은 스님들이 새로운 그룹을 만들어나가는 것만이 불교의 희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젊은 스님들 사이에 조용한 개혁의 물결이 퍼져가는 모습도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선우도량이나 실천불교승가회 내부에서 3선 시비라는 비불교적 의제로 얼룩지기 시작한 이번 선거에 나서지 않은 채 수행에 정진하는 스님들이 제법 존재하고 있다. 실천불교승가회의 사회개혁 정신과 선우도량의 불교정신을 모두 포용하는 새로운 개혁세력의 결합이 종단 내부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폭력사태 소수 사판승 작품 비관은 일러

비단 두 조직뿐만이 아니다. 산문이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음력 10월 보름(올해는 12월3일)부터 정월 보름까지 열리는 동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은 1500여명이나 된다. 따라서 조계종단에 소속한 1만1천여명의 스님들 가운데 극히 소수의 사판승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폭력사태를 두고 불교 자체에 절망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말은 언제나 새롭다. 절망의 백척간두에서 한걸음 더 나아갈 때 희망이 보이는 법이다. 1998년 겨울 조계사의 절망은 우리 시대에 불교개혁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오히려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손석춘 기자/ 한겨레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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