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약물 한계 뛰어넘는 ‘분자 조작·응용’…“불가능하다” 반론도

인간의 생명현상은 복잡한 분자 구조물에 의해 이루어진다. 신체는 바로 분자들의 작업장, 전쟁터라 할 수 있다. 분자 구조물이 손상되어 작업을 하지 못하면 질병이 발생한다. 생체 분자의 세계를 파악하고 인위적으로 분자 또는 원자 단위의 물체를 만든다면, 손상된 분자를 치유해 난치병과 노화를 예방·치료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나노(1/10억m) 기술은 바로 분자와 원자를 인위적으로 조작·응용하는 첨단기술이다.

21세기에 또하나의 의학혁명으로 기록될 ‘나노 의학’은 지금 이루어지는 의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서 시작된다. 수술과 약물에 의존하는 현재 의학의 한계는 명확하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수술과정에서 나타나는 마비, 감염, 거부반응 등을 비껴가기는 어렵다. 약물도 혈관을 타고 다니면서 정상적인 생체 작용을 방해할 수 있다. 아무리 수술이 정교해지고 약물 효능이 뛰어나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까지 예방하긴 어려운 게 오늘날의 의학이다.

하지만 나노 의학은 전혀 새롭게 질병을 치료한다. 백혈구를 모방한 의학용 나노 기계는 세포 하나하나에 분자 수준의 외과치료를 하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나노 기계는 고도로 집적된 회로로, 생명현상을 속속들이 파악한다. 감지기와 컴퓨터가 내장돼 분자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예를 들면 나노 크기의 완벽한 성능을 가진 ‘잠수함’이 항암제를 싣고 혈관을 통해 특정 암부위에 도착해, 종양에 선택적으로 항암제를 투여하고 완벽하게 암세포를 괴멸시키는 식이다.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이나 바이러스도 간단히 찾아내 힘을 쓰지 못하도록 면역체계 기능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또 나노 기계는 세포 수술로 바이러스를 제거하기도 한다. 요즘 개발되는 ‘DNA 백신’은 세포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커다란 입자이기 때문에 세포에 주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분자 크기의 나노 기계는 세포 속에 쉽게 들어가 구조적 결함을 정확하게 치료한다. 유전자지도에 따라 인체를 수리하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공상과학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가설이지만 이와 비슷한 연구는 벌써 이루어지고 있다. 원자 현미경은 이미 개발되어 생체현상을 파악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이처럼 나노 의학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그냥 가능성에 그칠 수도 있다. 서울대 국양 교수(물리학)는 “이제서야 생물이나 물리학에서 나노를 규명하는 마당인데, 복잡한 생명현상이 이뤄지는 의학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소설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는 “의학에 나노 기술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생물 항체에 대한 연구가 깊숙이 이뤄져야 한다. 게다가 지금 기술로서는 나노 크기의 집적회로를 만드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으로선 나노 의학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비록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 나노 의학에 대한 관심을 접을 수는 없다. 20세기의 과학기술이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듯이, 21세기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과학기술이 등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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