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국가에서 정의의 상징은 곧 ‘법’이고, 그 법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작용을 사법(司法)이라고 한다. 사법적 정의가 올바로 구현될 때 국가와 사회의 정의도 세워질 수 있다. 곧 사법정의가 국가흥망의 관건(關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와 같은 중책을 맡고 있는 곳이 법조계이며, 검찰·경찰 등 법 집행기관이다.

그러므로 법과 정의에 대한 회의를 일으키며 총체적 부정부패를 뒷받침하고 있는 사법비리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올바르게 진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법조인들이나 일부 시민단체들은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특이한 관행에서 찾으려 하며, 전관예우를 없애기 위해서는 판·검사의 한시적인 형사사건 수임제한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판·검사의 ‘형사사건 수임제한(制限)론’은 미봉책(彌縫策)에 불과할 뿐더러 그 접근도 쉽지 않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전관예우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해답도 없다. 즉 검사를 제외한 판사의 경우 작년 한해 만도 약 1백30여명이 변호사로 개업을 하였고 이중 10년이 넘는 부장판사급이 55%를 차지한다는 보도다. 막중한 국가기관으로서의 판·검사직을 사퇴하고 변호사개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변호사 개업 1년만에 10~30억(또는 수백억원)을 벌 수 있는 터무니 없이 비싼 변호사 수임료가 그 원흉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10배가 넘는 검사 1인당 2천 사건, 법관 1인당 6백80건의 사건을 처리하면서도 법조인들은 법조인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터무니 없이 비싼 변호사 수임료는 여러 가지 병폐를 낳았다. 우리나라의 전체 민·형사사건은 1백만여건(98년 사법연감)인데 비해 전국 변호사의 평균 선임건수는 약 70건으로 개업 변호사가 2천5백명(법무법인 제외)이라고 할 때, 총 17만건 정도만을 변호사가 처리했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 약 83만건의 소송당사자들은 비싼 보수때문에 변호사의 얼굴도 보지 못한채 ‘사건퍼내기식’수사와 재판을 받아 왔다.

이는 정부수립이후 계속 법조인수는 소수독과점으로 국가가 통제하면서, 변호사 보수(수임료)는 통제없이 변호사단체의 자율에 맡긴 것에서 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마저도 지난 1월 7일 일명 ‘카르텔 폐지법’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변호사의수임료는 완전히 자율화되었다.

물론 선진 독일에서도 법조인 수에 대해 정부가 관여하면서 변호사 보수도 정부가 법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은 법조인 수를 우리보다 7배이상 많게 하되 변호사보수는 우리보다 1/10만큼 저렴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말하자면 독일의 경우 정부통제는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데서 우리와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수사와 재판과정이 검사나 판사의 자의(自意)대로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수사와 재판의 최종결과보고서인 판결문의 기재사항인 ‘사실과 쟁점’을 5·16이후(1961년) 법관의 업무과다 등을 이유로 삭제해 버린 것이 그간의 법조비리·불공정한 사법이 여간해서 노출되지 아니한 까닭이었다.

모두(冒頭)에서 강조했듯이 모든 국가기관 특히 사법(관련)기관의 공무집행은 윤리나 의식에 기준하지 않고 법과 규정에 의거하는 것이므로 제도개혁 특히 사법개혁이 필수 선결과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법조인의 양식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조인들이 올바르게 수사와 재판을 할 수 있도록 법과 규정을 제대로 만드는 일과 그 법규에 충실한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다.

수사와 재판과정에 주권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배심원제도가 있는 미국에서조차 특별검사제도를 활용하고 있으며 검찰기소의 타당성을 심사하는 검찰심사제를 갖고 있는 일본에서도 배심제도의 도입을 위한 사법개혁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도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변호사개업을 한 판·검사들을 다시 원대 복직시키는 방안(특별법 등)을 만들고, 태부족인 법조인 수를 대폭 확대하며, 변호사 보수를 법정화하면서, 재판과 기소과정의 공정성 담보를 위한 시민참여가 보장된다면 사법비리는 자연히 척결될 것이며 실질적 법치사회가 실현되어 국민은 ‘법’만 믿으면 미래를 예측하면서 안심하고 자율과 창의를 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 비로소 제2의 건국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