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지영(노점단속 피해자)
한사코 주문을 사양하던 차지영(24세) 씨는 마지못해 우유 한잔을 시켜 이
제 15개월된 아들 민기의 우유병에 쏟아부었다. “민기에게 참 오래간만에
우유를 먹이네요. 남편이 실직한 뒤론 우유 대신 밥을 먹였거든요. 6개월된
갓난애한테 밥을 먹이다보니 구강염까지 걸렸어요. 때론 보리차에 설탕을
타서 먹이기도 하고요…” 안양의 한 커피숖에서 만난 그는 계면쩍은 듯 입
을 열었다.
차 씨의 남편 홍현석(28세) 씨는 조그만 피혁회사에 다니다 지난해 6월 일
자리를 잃었다고 한다. 일자리를 찾아 발이 가 없었다. 결국 차 씨 부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노점. 얼마 되지 않
는 퇴직금을 털어 좌판을 장만하고 지난해 12월 말 성남 분당 서현역 앞에
서 닭꼬치 장사를 시작했다. 당시 임신 3개월이던 차 씨도 “밀린 방세에
주인 아줌마 뵙기 민망하다”며 남편을 따라 나섰다. 하루 수입은 평균 3만
원. 재료비를 빼면 남는 돈은 절반뿐이지만 매일 끼니 걱정에 시달렸던 세
식구에게 그 좌판은 밥줄이자 새로운 희망이었다.
단속반에 빼앗긴 ‘희망’
하지만 희망도 잠시. 장사를 시작한지 보름도 되지 않은 1월 6일, 노점 단
속을 나온 구청 직원들은 좌판을 빼앗아갔고 그 과정에서 그는 오른쪽 손
가락 4개의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주위사람들이 임신부라고 소
리쳤지만 구청직원들은 막무가내였다.
“놓으라는 소리도 없이 단속반들이 등을 잡아끌면서 좌판을 빼갔어요. 손
에선 피가 나고 등에 업힌 민기는 자지러져 우는데 아프다는 생각보다는 ‘
이제 우린 다 살았구나’하는 생각만 들더군요.” 하지만 이제 차 씨는 노점
단속반들은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 역시 자신과 다름없이 눈치밥으
로 연명해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친 오른손을 내보이며 “새끼손가락은 영원히 사용할 수 없고 나머지 손
가락도 적어도 1년은 재활치료를 받아야한데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는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당장 내일 먹을 쌀도 없기 때문이다.
민기를 위하여…
요즘 그는 부쩍 고민이 많다. 쌀마저 떨어지자 남편이 다시 노점 얘기를
꺼내기 때문이다. 물론 방세에, 민기 우유값, 7월이면 태어날 아기를 생각
하면 어떻게든 돈이 필요하지만, 단속에 시달릴 남편을 생각하면 숨부터
탁 막혀온단다. 수입이 적더라도 남편이 다른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차 씨
는 말했다. 그리고 손이 빨리 회복돼 조금이라도 생계에 보탬이 되고 싶다
고 했다. 그는 생활보호대상자인 시어머니께 들러야 한다며 민기를 등에
업고 일어섰다. 더 이상 내몰릴 곳도 없는 차지영 씨. 그에게 희망은 언제
쯤 찾아올까.
1999년 3월 6일 토요일 제13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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