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교육은 브로드웨이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그 많은 피부색만큼이나 다양하다. 연방정부, 주정부, 그리고 지역을 거쳐 내려오는 규정은 제약이 거의 없고 학교구(SchoolDistrict)를 단위로 교육의 핵심적인 내용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수많은 학교구(뉴욕주에만 60개가 넘는 카운티가 있고 웨체스터 카운티의 경우 학교구가 700여개이다)는 마치 미세한 세포들처럼 제각기 특성을 가지며 스스로의 역할을 역동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거대한 미국의 교육을 별탈없이 움직이고 있다.
뉴욕시 맨해튼의 스터이비샌트(Stuyvesant) 고등학교는 입학시험을 치러야 하는 수학·과학 영재학교로서 수준높은 교육과정과 우수한 학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리고 백인 학생이 주를 이루고 있는 사립 달튼(Dalton)학교는 적은 학급당 학생수(6~12명)로 교육의 개별화를 강조하며 수준높은 예술교육을 한다. 브라이어클리프(Briarcliff) 고교나 아슬리(Ardsley) 중·고등학교 모두 학생수가 적은 소규모 학교로 높은 교육열과 고학력의 교사진, 훌륭한 시설을 가진 학교들이다.
이들 학교는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먼 나라에서 인터넷으로 자신의 학교를 찾아 방문하겠다고 점찍은 사실을 신기해하며 꽤나 좋아했다. 우리가 가장 감명을 받은 곳은 웨체스터 카운티의 아슬리(Ardsley)학교구였는데, 아슬리의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 교육청은 서로 신뢰하며 학교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학교탐색을 마치면서 우리는 미국의 학생들이 수없이 많은 가능성 속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며 도전하고 있다면, 우리 학생들은 캄캄한 동굴 속에서 무엇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 몰라 더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빈익빈 부익부’의 논리가 적용되고 교사간에도 경쟁의 원리가 도입되어 있는 그들의 교육현장은 우리의 가치관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개성과 능력을 무시하고, 교사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같은 교과서로 같은 수준의 수업을 하며 같은 방법으로 평가를 해 온 우리의 교육현실은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최춘옥(신관중), 한경숙(신림고), 허미숙(미성중), 김민선(강남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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