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수(한국노동정책이론연구소 부소장)

서울 지하철 노동조합과 공공연맹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정치적 사회적 긴

장이 고조되는 다른 한편에서 ‘대도'(大盜) 파문으로 또한 호떡집에 불이

났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정말 재미있는 난장판 세상이다.

‘대도’가 주장하는 대로 유종근 전북도지사 ‘서울관사’에 12만 딸라가 있

었는지 없었는지, 모 장관 집에서 수억 짜리 동양화를 훔쳤는지 어땠는지,

또 모 장관 집의 변기는 뒷구멍에서 나오는 뭣과 색깔 맞춰 황금으로 만든

거였는지 어땠는지, 우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리고 또 확인해 본들

무얼 어찌 해보랴?)

하지만 최소한 다음과 같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게 구체적으로 누구의

집였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대도’는 이 시대에 잘 나가는 높은 사람들의

집을 털어서 딸라고 엔화고 원화고 간에 “원없이 흥청망청” 썼다고 하는

사실.

경찰서장이 됐건, 도지사가 됐건, 장관이 됐던, 아무튼 잘 나가는 사람들에

게는 주체 못하게 돈이 따라붙어서, 은행이 아니라 냉장고며, 김치독이며,

텅빈 ‘관사’며, … 우리가 돈을 집어넣는 데라고는 상상도 못하는 곳에 뭉

텅이 돈을 보관하고 계시다는 사실.

그렇게 돈을 키우다가 ‘대도’한테 당한 사람 가운데는 현 권력의 핵심인사

들도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경찰과 검찰은 감히 면허도 없이 남의 영역을

침해한 무면허 도둑을 응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

하고 줄이고 엄폐하고 감추고 숨기고 했다는 사실 등등. 또 그리하여 문제

는 결국 특허 받은 큰 도둑들의 얘기로 된다는 것 등등.

물론, 크고 작은 그런 도둑질은 전혀 새삼스럽지도 어제오늘의 얘기도 아

니다. 새삼스러운 건 단지 어찌어찌 하다 보니까 그것이 재수없게 불거졌

다는 것뿐이다.

특히 특허 받은 큰 도둑들의 일을 내가 얼마나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가는, 아니 우리가 얼마나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지는, 정권이 바

뀔 때마다 벌어지는 ‘개혁’이니, ‘사정’이니, 개가죽이니 오르가즘이니 하

는 것에 대한 나의 판단을 수년 전에 “김영삼 정권의 개혁의 성격” 운운하

는 잡문으로 밝힌 바 있다. (김영삼으로부터 김대중으로만이 아니라 예컨

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혹은 노태우에서 김영삼

으로의 교체도, 각 정권 주체의 사적이익이 ‘서로 다른 만큼’ 그 만큼 정권

교체이고, ‘개혁’이니 ‘사정’이니 하는 것도 대개는 그 만큼 강도와 폭을

갖는다.)

여기서 그것을 새삼 되풀이할 필요는 없고, 수주일 전 한 정치학 강의실에

서 있었던 어떤 실없는 문답을 소개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사실 무척 진보적인 인사인데도 전제해서는 안되

는 것을 전제하면서 강의를 진행시켰다. — “김영삼 정권의 ‘개혁’이 왜

실패했는지 아십니까?” 하고 말이다.

이는 당연히 정치하시는 분들이, 그리고 크게 보아 그들과 한패인 신문 방

송쟁이들이 온갖 훌륭하고 근사한 말로 포장한 ‘개혁’을 ‘개혁’이라고 전

제하고, 그것이 ‘왜 실패했는가?’를 묻는 부당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있었다. — “교수님은 김영삼 정권의 ‘개혁’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훌륭히 성공했지요.”

강의실이 잠시 조용해지더니 조그만 술렁임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

런, 어이없다는 듯한 질문도 나왔다. — “정말 김영삼 정권의 ‘개혁’이 성

공했다고 생각하나요?”

사람 왈. — “성공하고 말고요. 아주 훌륭히 성공했지요. 성공하지 못했다

면 어떻게, 예를 들어, 김현철 등이 수십억, 수백억 (아니, 사람이 간이 작

았나? 큰돈은 상상도 못하나? 적어도 수천억일 텐데!) 이권에 관계됐겠습

니까?

‘개혁’이니 뭐니 하는 것은 이전 권력으로 향하던 이권의 파이프를 새 권

력으로 돌리는 그런 작업, 말하자면 ‘나와바리 싸움’ 아닌가요?”

너무 냉소적이라고요? — 그러니까 당신들은 맨날 현실은 못 보고 “개혁

하라! 개혁하라!” 자기 발등을 찍지요. 아니, 큰 도둑님들도 사람을 향해 “

냉소적”이라고 나무란다고요? — 당연하지요. 자기들 이해가 걸린 문제니

까 말입니다.

운동권도 많은 이가 목이 터져라 “개혁하라!”고 외친다고요? — 거기에는

두 부류가 있지요. 뭐가 뭔지 모르고 자기 발등을 열심히 찍는 그런 부류

와, 언젠가 ‘수혈’되어 ‘개혁’에 참가할 그렇고 그런 부류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열 받는 얘기겠지만, 이 큰 도적님들이 도적질 하는 거,

그거 별거 아니예요. — “무노동, 무임금!”, 그러니까 “노동하면 노동한

만큼 준다”고 경제학 박사, 경제학 교수 등 온갖 나팔수 앞세워 조직적으

로 사기치면서 수백조 수천조 등쳐먹는 거에 비하면 그거 조족지혈이거든

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은 그거 조족지혈이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거 아니예요. 금액의 크기로 봐서 그렇다는 거뿐이에요. 사실은 그거, 그

조족지혈의 돈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 핵심적으로 중요해요.

왜냐구요? — 그들이야말로 그 수백조 수천조 등쳐먹는 거 유지하는 첨

병 전위거든요. 독점자본의 정치적 전위부대라던가 뭐래던가? 아무튼 뭐,

그런 거 비슷한 거예요.

아참, ‘인권 칼럼’ 써 달라고 했나? — 내가 미쳤지. 사실은 거의 이틀 밤

이나 못 잤거든요. 그런데 말입니다. ‘인권’ 문제가 그냥 생겼나? 크게, 조

직적으로, ‘평화롭고, 질서 있게,’ 그리고 가능하면 영속적으로 등쳐먹으려

는데, 껄끄럽게 시비거는 사람들이 나타나니까 그거 짓뭉게 버리고, 그러니

까 인권 문제 생기는 거지. — 이제 ‘인권 칼럼’ 됐나?

1999년 4월 21일 수요일 제13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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