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어버이날, 아버지는 미리 찾아뵈었고 당일에는 아버님(장인)을 찾아뵙고 다음날 어머님(장모)과 어머니 산소를 차례로 다녀올까 했는데 이런저런 행사가 겹치는 바람에, 내려갈 짬이 없어서 식구들만 내려보내고 저는그냥 서울에 남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미리 예매해 두었던 기차표를 반환하기 위해 서울역에 가게 되었는데, 서울역 광장에 도착해보니 십 여명의 경찰들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서 지나가던 행인들을 아무나 붙
잡고 불심검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전투경찰 한명이 저에게로 다가와 경례를 붙이며 말을 건네 왔습니다.
“신분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왜요?”
“네, 기중자(기소중지자) 일제 검거기간입니다.”
젊은 전경에게 이것 저것 이치를 따지기기에는 너무 미안하다 싶었습니다.
권력가들의 아들들이 돈으로 빽으로 군복무를 피하고 있는 사이, 그래도 그들은 국방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우리의 아들, 우리의 젊은이였습니다. 그들에게 잘못이 있더라
도 그것은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이지 그 전경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순순히 신분증을 보여주었고 신분에 이상없음을 확인받고는 서울역에 들어가 기차표를 반납하고, 조금은 심란한 심정으로 다시 서울역 광장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웬 일입니까! 이번에는 순경이 다가와서 또제 신분증을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당신 신분증을 먼저 봅시다”
그 경찰은 순순히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정중히 협조를 바란다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며 가며 같은 장소에서 두번씩이나 검문을 받은 것에 대해
서는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왜 저를 검문하는 거지요? 제게 무슨 용의점이 보이나요?”
결국 그 경찰관은 저를 그냥 보내주었습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저로서는 당연한 권리주장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경찰공무원에게 미안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도 잘못된 법률체계의 피해자인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격무에 시달리고있는, 우리와 같은 처지의 봉급생활자일 것입니다.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다른 역에 도착했는데, 세상에! 또 불심검문을 하는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습니다. 저를 검문하려던 전경에게 따졌습니다.
“불심검문을 하려면 저에게 어떤 용의점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시겠지요? 제게 무슨 용의점이 있나요?”
“선생님께 특별한 용의점이 있어서 이런 것이 아닙니다. 무작위로 하는 것 이니 협조 바랍니다.”
‘무작위’로 불심검문을 한다는 발언이 본인에게 얼마나 불리한 진술인지를모르는 ‘순진한 전투경찰’의 답변이었습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알게되면 관대해져버리는 저의 오래된 습성
으로 인해 그 전경에게도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저 만치 떨어져 있던 경찰관을 불렀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짐작했음인지 그 순경이 뛰어 달려 왔습니다. 그
리고는 자신의 신분을 먼저 밝혔고 자초지종을 듣더니 저의 이해를 구했습니다.
“이렇게 불심검문을 해서 얻은 실적은 있었나요?”
“네! 3시 30분 경에 기소중지자 한 명을 검거했습니다.”
제 입속에서는 ‘그렇게 검거를 해 보았자 과연 몇 사람이나 제대로 교화될까요?’라는 말이 맴돌았지만, 그저 검거만 열심히 해도 할 일을 다 한 그들을 붙잡고 더 이상 따질 수는 없
었습니다. 간단한 격려 말씀을 드리고 다시는 저를 불심검문하지 말라는 다짐도 주면서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거의 동시에 3번씩이나 불심검문을 받은 소감! 제가 생각없이 사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당장 내일 총선이 열린다면 ‘여당표’는 결코 찍지 않을 것 같은 감정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시민들을 불편하게 하고, 불쾌하게 하면서까지 불심검문을 해대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더우기 우리나라 역사를 뒤흔든 진짜 범죄자, 큰 도둑은 제대로 잡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이번의 일제 검거기간이 끝나면 발표되는 그 검거실적이 적지는 않겠지만 과연 그 검거실적과 교화실적이 제대로 일치하고 있는지, 작은 고기만 잡고 큰 고기는보아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법무부 관계자 및 검·경관계자들은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보기에, 공정하지 못하고 정치권 눈치나 살피며 때로는 어설프기까지 한 그들이, 이제는 ‘수사권’을 가지고 아웅다웅 하는 것을 보니, 마치일감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욕심 부리는 머슴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국민들은 친절하면서도 엄정한 경찰과 검찰의 모습을 보고 싶어합니다. 제가 알기에도 그 내부에는 양심있는 검찰 및 경찰공무원이 적지 않은 것으로알고 있습니다. 그 내부의 양심
을 모아서 ‘큰도둑’이 모여있는 정치권과 재벌들 부터 과감히 개혁하고, 제대로 된 교정복지도 갖춘 후에, 수사권 운운하시길 감히 충고 드립니다.
* 참고
– 다음은 불심검문에 대한 몇가지 원칙과 요건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불심검문 대상은 수상한 거동을 보이거나 범행 경력 및 가능성이 있어야 함
2. 경찰관이 검문대상자를 정지시켜 질문할 경우 자신의 신분과 질문 목적, 이유를 밝혀야 함
3. 소지품 내용을 물어볼 수 있지만 답변을 강요할 수는 없음.
4. 수갑을 채우거나 다른 방법으로 검문 장소를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답변강요에 준하는 행위로 허용될 수 없음
5. 검문대상자가 흉기를 소지했다는 높은 개연성이 있을 때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소지품의 개봉을 요구할 수 있지만 대상자의 의사에 따르지 않고 일반 소지품을 조사하는 것은 불심검문의 한계를 넘는 것이므로 사전 또는 사후에 압수수색영장을 받아야 함
6. 흉기소지 여부의 조사는 의복 또는 휴대품의 외부를 손으로 만져서 확인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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