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글을 못 올리는 사이에 어버이날, 스승의날, 현충일이 지났다. 그 날들에 대해서도 뭐라고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지하철노조의 파업에 대해서 먼저 몇자라도 적지 않고는 다른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밀린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입 속에서 맴돌던 말들을 이제야 정리한다.

KBS노동조합 위원장을 처음 만나던 날 물어보았다.

“현업에서 뭐 하셨습니까?”

그이는 ‘별걸 다 묻는다’는 듯이 생뚱맞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답했다.

“나요? ‘도전지구탐험대’ 만들다가 올라왔어요.”

그 프로그램을 만들던 PD 양반이 지금 KBS노조의 위원장이다.

KBS노조에 단체교섭 교육을 하러 갔는데 만나기로 한 노조

위원장이 농성에 참여하느라고 본관에 올라갔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웬 농성…? KBS노조는 지난 서울지하철노조의 파업에 관한 해설위원들의 편파적 해설을 문제 삼아 간부들이 사장실 앞에서 며칠째 철야농성 중이었던 것이다.

‘지하철노조의 간부들이 항의하러 온 것이 아니라 KBS노조의 간부들이 항의 농성을 하고 있단 말이지. 내부에서 이렇게 공정보도를 위해서 애 쓰고 있었단 말이지. 자신들의 실추된 명예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단 말이지…’

나는 흔한 말로 ‘감동 먹었다.’

지하철의 파업에 대해 언론은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하는 불법 파업은 안된다.”는 일방적 비난으로 융단폭격을 했고 제도 언론 외에는 별다른 정보의 통로가 없는 많은 시민들은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진실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있는 사람들은 컴퓨터통신 등의 매체를 통해서 시민들의 여론을 환기시키고자 노력했고 그러자 어떤 시민은 이렇게 항의했다.

“우리를 왜 언론에 의해 놀아나는 바보로 취급하느냐? 우리도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서 어느것이 거짓이고 어느것이 진실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아니다.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이 그를 더욱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나 역시 방송의 ‘해설’이라는 것을 꾸준히 듣고 보았지만 ‘의례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지켜보았기 때문인지 그 해설이 방송사 내부에서까지 문제를 삼을 정도로 그렇게 형편없이 한 쪽을 매도한 것이라고 분개하지는 못했다. 평소 노동자들의 실상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내가 그 정도였으니 일반 시민들은 오죽했으랴.

KBS의 노사는 장시간 격론 끝에 문제가 된 해설위원들에게 그 편파성의 정도에 따라 ‘3개월 방송출연금지’ 또는 ‘서면경고’의 징계를 한다는 선까지 잠정 합의했으나 방송사 측에서 그러한 결정을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요구해 결국 결렬되고 말았다. 얼마나 편파적이었으면 노사가 그러한 징계에까지 합의했으랴.

노동조합의 입장으로는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사실들이 알려져야만 10년 넘는 세월 동안 자신들이 힘겹게 쌓아올린 언론민주화의 성과를 지키지 위한 노력이 내부에서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그래야만 자신들의 훼손된 명예가 회복될 수 있는 것이기에…

현장을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취재해 온 기자들이 다음에 다시 찾아갔을 때 노동자들에게 돌멩이를 맞지 않으려면 그들의 노력은 알려져야만 했다.

며칠 전, 명동 마루턱에 있는 은행연합회관에서 서울은행노동조합 교육을 하면서 나는 “KBS의 노동자들이 내부에서 그렇게 노력하고 있더라”는 말을 전했는데 오전 교육을 마치고 점심을 먹을 때 노동조합 교육부장이 말했다.

“오후에 강의하실 때는요. 그렇게 막연하게 말씀하시지 말고요. 구체적으로 무엇이 편파 왜곡 보도였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는 게 좋겠어요.”

점심식사를 마치고 노조간부들이 차를 한 잔 같이 하자고 했지만 나는 “차 마실 약속을 따로 있다”고 빠져나와 길 건너편의 명동성당으로 갔다. 텐트를 치고 농성 중이던 서울지하철노조의 간부들과 석치순 위원장을 만났다. 석 위원장에게 서울은행노동조합 교육부장의 말을 전하니 사람 좋은 석 위원장이 웃으면서 농담을 다 한다.

“직접 와서 물어 보라고 하세요. 바로 길 건너편에 있다면서… 별로 멀지도 않구만.”

사람들에게 수십번도 더 한 얘기겠지만 석 위원장은 친절하게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파업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언론이 사실대로 보도할 거라고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하는 불법 파업이다’ 이것도 충분히 예상했던 거구요. 그렇지만, 분명히 여기 천이백명이 모여 앉아있는데 왜 삼백명밖에 없다고 뉴스에 나오냐구요. 파업 복귀율이 5% 미만인데도 왜 20%라고 하냐구요.

우리 파업은 사실, 복귀율 싸움이잖아요. 복귀하려는 조합원들을 명동성당에서 노동조합이 감금하고 있다? 감금한다고 당하고 있을 지하철 조합원이 누가 있겠어요. 우리 노동자를 너무 우습게 보는 거지요. 4월 26일에는 파업을 풀 명분이 없으니까 위원장이 오히려 공권력 투입을 요청했다? 이건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인지 나도 모르겠어요.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 곧 우리의 힘이잖아요.

우리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그런 말들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인지… “

마침 그날 경찰서에 자진 출두하기 위해 명동성당을 빠져나가는 노조 간부들을 배웅하고 나는 다시 서울은행 노동조합으로 갔다. 간부들은 그날 저녁 대부분 구속되었다.

사상 유례없이 백명 가까운 조합원들이 대량 해고된 파업 이후까지 지하철노조에 대한 언론의 편파적 ‘오보’는 계속되었다. 파업에 불참하거나 조기 복귀한 조합원들에게 파업 참여 조합원들이 ‘왕따’ 행위를 했다는 것도 대표적 ‘오보’ 중의 하나였다.

파업 이후 한 동안 서울지하철 현장에는 경찰과 군인 수십명이 상주해 있었고 비조합원과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던 직원들이 오히려 경찰과 특전사 요원들을 경호원처럼 거느리고 다니면서 조합원들과 현장 간부들에게 폭언을 하거나 시비를 걸고 있는 형국이었다. ‘눈을 부라리는’ 쪽은 그들이지 파업 참여 조합원들이 아니었다.

고소·고발당한 노조간부가 경찰서에 자진 출두하여 조사를 받고 불구속기소로 풀려나오자 5시간만에 또 다른 사건으로 경찰서에 잡아 가두고, 조사 결과 그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자 비조합원과 군인들이 여러명 경찰서에 몰려와서 다시 그 노조간부를 고소한 일도 있었다.

TV 방송의 뉴스 시간에는 “파업 불참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 측 조합원들이 눈을 부라린다는가 하는 행위는 모두 명백한 업무방해에 해당되는 것이니 엄중 조치하라”고 경찰서장이 지시할 때 입에서 튀는 침방울까지 보일 정도로 세세히 보도했을지언정, 위와 같은 엄연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파업이 끝났는데도 군인들은 떠나지 않았고 비조합원과 시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남아서 지하철을 계속 운전했다. 승무소와 차량기지에 있는 경찰과 군인들은 출근하는 조합원들을 일일이 검문하면서 직원들이 사용하던 휴게 공간과 침실을 점령하다시피 당당하게 사용했지만 정작 조합원들은 한 귀퉁이에 모여 불안에 떨며 담배만 피워야했던 나날이 계속되었다.

1차, 2차, 3차 거듭되는 직권면직과 직위해제로 해고되는

조합원들이 넘쳐났다. 지회마다 대략 20여명의 현장 간부가 있는데 어느 지회는 해고된 간부가 13명이나 되었다. ‘쑥대밭’이라는 표현은 바로 그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이다.

명동성당에서 파업을 철회하는 순간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어느 조합원은 업무에 복귀한 다음날 지회 동료들과 모여 소주를 마시다가 자신들의 대선배가 눈물을 훔치는 것을 보고 엉엉 울고 말았다.

그래서 모두들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피멍든 가슴을 안고 지하철의 노동자들은 역사상 가장 잘 조직되었던 파업이 이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해 고민하고 이 정권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의 언론이 언제, 필수공익사업인 지하철 노동자들의 합법적 파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규정한 우리나라 노동법의 불합리함에 대해 보도한 적이 있었던가…

‘파업’은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는 불순한 행동이 아니라 헌법에 의해 보장된 어찌 보면 가장 온건한 투쟁 수단임을 설명한 적이 있었던가…

이번 서울지하철의 파업은 공사 측의 일방적 단체협약 위반 행위가 그 시발점이었음을 보도한 적이 있었던가…

최소한 우리의 언론은 과거의 행태와 조금도 다름없이 노동자들의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자. 세상은 조금 달라졌을지 모르나 언론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두자.

최소한 지금 ‘국민의 정부’는 과거 어느 정권보다도 더욱 가혹하고 세련된 방법으로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자. 구속된 양심수의 숫자가 과거 어느 정권보다 많다는 것을 알아두자. 그러한 결과들은 정권 담당자의 역사의식과 가치철학에서 비롯된 일관성 있는 정책 때문에 빚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 선거에서 우리를 지지하지 않은 놈들”이라는 민주노총에 대한 원시적이고도 단편적인 시각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자.

그런 유치한 생각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권력과 자본이 조장하는 ‘거짓의 가면’을 뚫고 우리 시민들도 어서 빨리 “지금 불편하다고 이 파업을 비난하면 나중에는 그 칼날이 우리의 목을 노릴 것이다.”라고 말할 줄 아는 ‘관용’을 지하철 노동자들에게 ‘희망의 약속’으로 주자.

(최근에 나는 서울지하철노조의 명동성당 농성 당시 노조규찰대의 활동에 대해 명동성당의 어느 신부님이 견해를 밝힌 자료를 얻었다.

그 자료에는 천여명의 노동자가 단 한 개의 옥외 화장실을

사용하면서도 질서를 지킬 수 있었던 일, 주변의 초등학교·

여중고교·수녀원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출입을 통제할 수 있었던 일, 성모 마리아 상 앞 기도처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일, 주류의 반입과 고성 등을 통제할 수 있었던 일, 결혼식 하객들의 차량을 안내하고 혼주들에게 사과의 뜻으로 축의금을 전달했던 일들이 모두 노조규찰대의 역할로 가능했다고 감명 깊게 밝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수천명의 조합원을 명동성당에 감금했다고 언론이 비난한 서울지하철 노조규찰대 사건의 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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