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인 ‘이상’이 일제시대에 한국을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한 비밀작업에 참여했고 그 내용은 지금까지 비밀에 싸여있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캐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싸움의 한가운데에는 박정희도 관련돼 있다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실제로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국가정보기관의 정보원들과 무장간첩들이 서울 시내 한 복판을 뛰어다니면서 냉전시대에나 어울릴 만한 대사들을 주고받는 <쉬리>,
인간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세계는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현실에 불과하고 실제로 이 세상은 인공지능컴퓨터로 무장한 기계들이 지배하고 있다는 <메트릭스>,
미국 정부가 암암리에 인간의 목숨을 가축 다루듯 한다는
,
국가의 정보기관이 마음만 먹으면 국민의 생활을 완벽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다는 <에너미 오브 더 스테이트>
어찌 보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내용의 이 영화들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전문가들이야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영화들은 모두 ‘우리 사회를 실제로 지배하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음모의 세력’이라는 공감대에 터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영화들이 수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국민들이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음모의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대검 공안부장이 한 낮에 폭탄주 세 잔을 마신 후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환담을 나누다가 “조폐공사 파업은 우리가 일부러 만든 것”이라고 자랑했다는 사실은 바로 이 영화들이 터잡고 있는 국민들의 막연한 공감대가 엄연한 사실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지난 해 8월쯤부터 시작된 한국조폐공사의 노사 갈등은 사실 그 진행 과정이 의문 투성이였다. 변호사들을 포함한 시민사회단체 대표자들로 구성된 ‘한국조폐공사구조조정진상조사단’은 지난 해 조폐공사의 구조조정에 대해 조사하면 할수록 ‘너무나 이상한 구조조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동량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재 조달이 더욱 불리한 먼 곳으로 공장을 옮기지 않나… 11년밖에 되지 않는 멀쩡한 옥천 조폐창을 버려두고 25년이나 된 낡은 시설로 가지 않나… 도무지 상식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일들이 버젓이 정부투자기관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안검찰이 공작적 차원에서 조폐공사노조의 파업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공공기업 구조조정의 시범케이스로 삼으려 했다는 사실이 검사장의 입을 통해 드러남으로써 그동안 의문에 휩싸였던 ‘너무나 이상한 구조조정’의 경과가 비로소 해석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보여줄 수도 있었는데 노조가 너무 일찍 손을 들어
싱거웠다.”는 대목에 이르면 혹시, 아래와 같은 영화의 한 장면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서울지하철>
“눈엣가시 같은 지하철 노조를 이번 기회에 길들입시다. 공사가 정부의 지침을 핑계삼아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어기고 절대로 협상에 임하지 않도록 하면 노동조합은 파업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을 거 아니겠소? 그때에는 ‘시민의 발을 볼모로 하는 불법 파업은 안된다’는 여론을 조성해서 국민들의 입과 귀를 막아버리고, 조합원들의 복귀율을 조작하고, 전동차를 고의로 고장냈다는 소문과 노동조합 집행부가 업무에 복귀하려는 조합원들을 감금하고 있다는 말을 은근히 퍼뜨려 도덕성에 치명적 훼손을 입히는 거요. 그러면 노동조합인들 별 수 있겠소?.”
<만도기계>
“노사간에 일찍이 ‘인위적인 감원을 하지 않는다’느니 ‘고용을 승계하는 제 3자에게만 양도한다’느니 하는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고, 그 협약이 ‘모범적’이라면서 다른 노동조합들도 그걸 참고 삼아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요구하면서 속을 썩히고 있는데, 만도기계 회사로 하여금 그 고용안정협약을 파기하고 일방적으로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하게 하면 노동조합은 당연히 파업에 들어갈 거 아니겠소? 그때에는 ‘정리해고의 철회를 요구하는 파업은 기업의 고유한 인사권·경영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불법파업이다. 절대로 용납되어서는 안된다.’는 여론을 조성하면서 공권력을 투입하는 거요. 일시에 노조 간부들을 40명 정도만 구속해 버리면 향후 몇 년은 잠잠하겠지.”
<한국중공업>
“회사에서는 ‘노조 위원장을 구속하면 조업에 차질을 빚기 때문에 구속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여러차례 표명했고, 영장실질심사에도 회사측 간부를 보내 위원장의 석방을 거듭 요청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해결이 안되지. 우리가 그런 의견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노조 위원장과 간부들을 구속하지 않았다면 4천7백명의 조합원들이 전면파업에 들어갈 리가 없지 않았겠소? 노조가 극한 투쟁에 돌입해야만 우리 검찰이 나설 명분이 생기는 거고 그래야만 건방진 노동자들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거라니까.”
우리 사무실은 대검찰청 바로 건너편에 있다. 요즘에는 매일 사무실 앞 도로에서 집회가 열리곤 한다. 한낮이면 어김없이 울려퍼지기 시작하는 노래 소리에 묻혀, 창 너머 대한민국 검찰을 바라보며 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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