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여년에 걸친 노동자·민중의 지난한 투쟁으로 쟁취한 의료보험 통합이 뒤집어지고 있다.
1면 머리기사에서 보듯이 통합 의료보험 제도는 노동자·민중의 의료비 부담을 덜고, 필요한 보건의료 서비스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길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법에 분명히 명시된 것까지 거꾸로 되돌리려는 정권과 한국노총 등은 이 땅의 노동자·민중에게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마저 없애려 한다. 이제 저들과 맞서 싸우지 않으면 또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의보 완전통합’ 형평성 논란… 없던 일로>
정부 여당이 의료보험 완전통합을 6개월 앞두고 형평성 논란을 빚자 시행을 2년간 유보키로 결정함으로써 사회보험 개혁이 전반적으로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보건복지부는 13일 의료보험 통합을 전제로 한 국민건강보험법이 시행도 해보기 전에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된 것과 관련, 사회보험 개혁의 한 축이 무너졌으며 의보에 이어 국민연금도 수술대에 오를 확률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지난해 의보통합 실무작업을 맡았던 엄영진 공보관은 ‘의보와 국민연금이 보장성과 저축성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기본 개념은 같아 국민연금 통합 재고 요구가 등장할 경우 대항 논리가 사실상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노총, 시민사회단체, 직장협의회로 구성된 ‘봉급자 보험료 과잉부담 저지 및 사회보험개혁 범국민대책회의’는 이날부터 국민연금 보험료납부거부 1000만명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박인상 한국노총 위원장은 ‘국민연금제도의 직장 및 지역가입자 재정을 분리하고 소득에 관계없이 동일 보험료를 납부하는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하는 등 국민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면서 ‘이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10월 11일부터 보험료 납부거부 투쟁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 여당이 의보 통합을 사실상 철회하고 한국노총 등 시민단체가 국민연금 개혁까지 외친 것은 양대 사회보험 통합의 3대 전제조건 가운데 관리통합을 제외한 소득파악, 재정통합이 각각 자영업자의 불성실 신고와 계층간 형평성 논란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범국민대책위 이남순 위원장은 ‘의료보험은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이 23%에 불과해, 최근 직장가입자 501만명을 대상으로 한 의보통합 모의 테스트 결과 자영업자의 몫을 메우기 위해 조흥은행 131%, 한빛은행 106%, 대우자동차 68% 등 대부분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며 ‘직장 근로자보다 보수가 높은 공무원들은 오히려 보험료가 27%나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또 국민연금도 지역가입자의 자신신고율이 시행 두달째를 맞아서도 60% 선에 머무는가 하면, 납부예외자가 무려 481만명에 달해 이미 ‘반쪽 연금’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국민연금의 경우 자영업자가 소득을 낮춰 신고하면, 모든 가입자의 연금액이 줄어들게 되며 방만한 운영으로 임금 99만원인 근로자의 보험료가 내년 6월까지는 매월 29,700원을 내지만 불과 5년후인 2005년부터는 3배 이상 상승한 매월 89,100원을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던 의보 및 국민연금 통합이 지난해 11월 사회보험통합추진기획단 출범 이후 8개월만에 삐걱거리면서 정부 각 부처간에는 졸속 추진을 둘러싼 책임 공방도 불거질 전망이다.
이는 최근 시민단체뿐 아니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부 용역을 받아 제출한 보고서에서도 ‘소득파악 인프라가 구축되기까지 당분간 통합이 어렵다’고 밝혔지만 정부가 고집을 부린 배경이 아리송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졸속이란 비판에 할 말이 없다’면서도 ‘다가온 총선을 의식, 정치논리에 따라 일순간에 정책을 뒤집어놓아 정부의 권위가 실추됐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99년 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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