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규모가 큰 봉제회사에 어렵사리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노조 집행부가 첫 번째 사업으로 선택한 것은 ‘생리휴가 쟁취’였다. 일찍이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여성 노동자의 생리휴가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여성 조합원들이 회사 설립이래 처음으로 생리휴가를 신청하기 시작했지만 회사는 막무가내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리휴가를 신청하고 회사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다음날 모두 결근 처리해버렸다.

나중에는 노조 위원장이 ‘생리휴가신청서’를 서면으로 작성해 직접 인사과에 제출했다. 그랬더니 인사과에서 연락이 오기를 “산부인과 의사의 진단서를 첨부하라”는 것이다. “정말로 생리 중인지 아닌지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노조 위원장은 그 말을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솟았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하얗게 되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노조 위원장은 인사과로 달려가 사무실 문을 벌컥 밀치고 들어서자마자 소리쳤다.

“야, 이 무식한 새끼들아! 진단서가 뭐가 필요해! 내가 지금 여기서 벗으면 될 거 아냐.”

노조 위원장이 정말로 옷을 반쯤 벗었을 때, 남자 직원 몇 명이 급히 달려와 옷을 추스려주었다.

그날부터 생리휴가 제도가 실시되었다. 차마 용기가 없거나 개인적 사정이 있어 생리휴가로 쉬지 못한 노동자들에게는 최소한 생리휴가수당이라도 지급되었다.

몇 년 후, 그 노동조합의 나이 어린 여성 동지들이 ‘구로연대투쟁’에 참여하여 가장 격렬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런 뼈 아픈 경험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권력과 자본은 짬만 나면 이 눈물겨운 ‘생리휴가’를 없애려고 한다. “우리의 노동법이 지나치게 선진적이어서 경제에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임신한 여성은 그 모성이 더욱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거늘 우리나라의 훌륭한 판사님들은 “임신한 여성은 실제적으로 생리를 하지 않으므로 생리휴가를 받을 수 없다.”고 해석한다.

아무리 작은 권리라도 외치지 않으면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옛날 어느 희극 배우의 노래처럼, 인천 앞바다가 온통 ‘사이다’라고 해도 ‘곱부(컵)’로 떠 올리는 사람만이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뒷얘기: 그 회사에서 처음으로 생리휴가가 실시된 후, 월급날 급여봉투를 받아보니 남자 노동자들에게도 모두 생리휴가수당이 지급된 것이었다. 소모임에서 만난 여성 노동자들이 남자들을 놀렸다.

“요즘은 남자도 생리를 하냐?”

회사는 아무것도 모른 채 두 달 동안이나 남자들에게까지 생리휴가수당을 지급했다.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었다.

뒤늦게 눈치 챈 회사가 이를 철회하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이 법을 지키는 것을 이유로 기존의 근로조건을 저하시킬 수 없다’고 나와있다.”면서 잠시 박박

우겨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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