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가까운 송도에서 사상 초유의 rock festival이 열린다고 했다. 아들녀석 지운이가 그래도 명색이 중학생으로 구성된 rock band의 기타리스트인데,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이니 ‘과부 딸라빚’을 내서라도 봐야한다고 지운이와 나는 의기투합했다.
그러나 우리 둘을 합친 것보다 몇 배나 더 현명한 안해의 결재를 받지 못했다. 집안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남정네들이라는 핀잔만 실컷 들었다.
출근길에 FM을 듣고 있노라니 이숙영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팩시로 사연을 보내면 그 락 페스티발의 이틀 공연을 모두 볼 수 있는 티켓을 준다고 했다. 옳거니…
나는 사연을 정성스레 적어서 보냈다. 아들 녀석이 중학생 락 밴드의 기타리스트인데 그 공연을 못 봐서야 되겠느냐. 장차 고등학생이 되어 더 열심히 활동할 것이고 그 밴드의 이름은 벌써 정해 놓았으니 ‘원효대사해골물’이 바로 그 이름이요. 앞으로 전 우주적인 락 밴드가 될 것이 분명한 ‘원효대사해골물’의 영원한 명예회원이 되고 싶거든 부디 그 티켓을 보내주시라…
다행히 나는 그 티켓을 두 장 받았고 아들 앞에서 간신히 면목을 세운 아빠가 되었다.
하네 마네 말도 많았던 공연 당일, 우리는 진흙탕에 발목까지 빠지는 늪지대를 건너 공연장에 갔다. 공연은 예정시간보다 세 시간이나 늦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느즈막히 갔으나 열성적인 젊은이들은 공연 예정 한 시간 전부터 입장을 했다 했으니 무려 네 시간이나 폭우 속에 선 채 공연을 기다렸던 것이다.
공연이 곧 시작된다고 안내가 나오자 사람들의 무리가 앞자리 바리케이트 가까이 움직였고 그때까지 계속 마이크를 잡고 각종 지시 사항을 외쳐대고 있던 행사 진행자는 엉겁결에 사람들에게 반말을 했다.
“그 쪽으로 가지 마! 더 이상 가지 말란 말이야!”
그런 (싸)’가지 없음’을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그냥 둘 리가 없다.
삽시에 생수병 수십개가 그 진행자를 향해서 날아갔고, 화들짝 놀란 진행자는 그 순간부터 말씨가 고분고분해졌다.
“그 쪽으로 가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제발 가지 마세요. 우리 정말 이 공연 위해서 지금까지 고생 많이 했어요. 사고라도 나면 국민들이 우리 락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겠습니까? 부탁합니다. 제발 질서를 지켜주세요.”
사뭇 애원조가 되었고 그 톤은 공연 끝날 때까지 목이 쉰 채 계속되었다.
브릿팝 밴드 ‘애시’가 첫문을 열었고 사람들은 빗속에서도 열광하기 시작했다. 빨강, 노랑, 파랑 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젊은이들이 우리 옆에서 겅중겅중 뛰기 시작했다. 귀걸이, 코걸이뿐만 아니라 입술걸이, 눈썹걸이를 몇 개씩이나 한 청년들이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우리 앞에 있는 어떤 이의 ‘헤드 뱅잉’을 보고 지운이가 말했다.
“저 사람은 거의 상모 돌리기 수준이네요.”
유일하게 출연한 우리나라 밴드 ‘크래쉬’가 노래를 몇 곡 불렀을 때 사람들은 ‘Smoke On The Water’를 부르라고 연호했다. ‘크래쉬’의 보컬리스트가 말했다.
“이 노래 부를러면 오늘은 Deep Purple 형님들한테 허락 받고 불러야 된단 말이에요. 우씨…”
결국 그들은 그 노래를 불렀다.
재미교포 ‘존 명’이 베이스 기타를 치는 ‘드림시어터’의 순서가 끝나고 다음 출연자들을 위해 무대 정리가 시작되자 지운이가 말했다.
“아빠, 우리 한번 최대한 갈 수 있는 데까지 앞으로 가 보지요.”
우리는 쏟아지는 폭우와 사람들의 장벽을 뚫고 마침내 바리케이트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아, ‘Deep Purple’… 비록 예전의 그 멤버들과 똑같지는 않다지만 ‘Smoke On The Water’와 ‘Highway Star’를 직접 들을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쏟아지는 비 때문에 기타의 플랫을 계속 타월로 닦아가며 연주했고, 드러머가 심벌을 때릴 때마다 화려한 조명을 받은 물방울이 마치 폭발하듯 휘날렸다. 그 장관이 펼쳐질 때마다
관객들은 하늘이 떠나갈 듯 환호성을 질렀다.
한 손으로 바리케이트를 잡고 몸을 솟구치니 정말 깜짝 놀랄 만큼 높이 뛰어 오를 수 있었다. 내 몸 어느 구석에 이런 에너지가 있었나… 지운이와 나는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겅중겅중 뛰며 그 분위기를 만끽했다.
끝나고 나오는 길은 들어갈 때보다 더 참혹했다. 진흙탕은 이제 무릎까지 빠졌다. 그 새 내린 빗물로 공연장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바이칼 호수’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도 불평하는 사람 하나 없었다.
70만원씩이나 내고 편안한 앞자리에 앉아서 ‘마이클 잭슨’의 공연을 보는 사람들과 이 젊은이들은 얼마나 다른가… 빗속에서 4시간이나 서서 기다리기도 하다가… 잠깐 짬이 나면 바리케이트에 얼굴을 묻은 채 선잠을 자기도 하다가… 폭우에 흠뻑 젖기도 하다가…
진흙탕에 빠져서 저절로 벗겨진 신발을 끄집어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의 이처럼 순수한 열정을 볼모로 돈벌이를 하려고 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 인간들에게 화 있을진저…’
주차장에서 빠져나오는 데만도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집에 돌아와 낡아빠진 LP 디스크의 먼지를 몇 년만에 떨어내고, 한 동안 쓸모 없어 진열장 구실이나 하고 있던 턴테이블 위의 인형들을 치웠다. 지운이가 그런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물었다.
“아빠, 그거 작동되는 거였어요?”
“나도 잘 모르겠다. 제대로 돌아갈지…”
턴테이블 위에 20년도 더 전에 구입한 ‘백판'(이게 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을 얹고 암(arm)을 들어올리니 테이블이 돌기 시작했다.
새벽 두 시가 가까운 시간에 아파트 단지에 울려퍼지는 Deep Purple의 ‘Stomrbringer’을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지운이가 말했다.
“이거 완전히 노이즈 절반, 사운드 절반이네요. 도대체 이걸 어떻게 들었어요?”
잡음 하나 없는 매끈한 CD 음질에 길들여진 귀에는 그렇게 들릴 수밖에 없었을 거다. 청계천 세운상가 앞 길가에 쌓여진 ‘백판’들을 뒤져서 마음에 드는 음반을 찾았을 때, 주머니 돈을 톡톡 털어 그 음반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 가슴 뿌듯함을 요즘 아이들이 어떻게 이해하랴…
나는 지운이에게 점잖게 말했다.
“CD는 인간의 가청 주파수 범위 내에서만 소리를 재생하지. 그러나 LP는 가청 주파수 범위를 벗어나 그보다 훨씬 더 높고 더 낮은 소리를 내는 거야. 인간이 귀로 들을 수는 없지만 가슴으로는 그 소리를 느끼거든. CD하고는 feel이 다르지. 에헴.”
40대들이여, 우리 언제 한 번, 그 옛날의 LP ‘백판’들을 모아 노이즈 절반, 사운드 절반의 음악 감상회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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