謹弔 공공연맹 교육국장 故 김종배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15년간 노동운동에 온 몸 바쳐 헌신해 온 공공연맹의 교육국장 김종배
동지가 지난 8월 27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노동해방의 못다 이룬 염원을 안은채
동지들 곁을 떠나갔습니다. 김종배 동지는 서울중앙병원에 안치되었다가 29일
공공연맹장으로 모란공원에 묻히셨습니다. 그가 비록 동지들과 맞잡은 손은 놓
았지만 마음만은 영원히 동지들과 함께 할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가 염원하던 세상, 아니 우리 모두가 바라는 세상을 향해 그의 몫까지 열심
히 투쟁해야겠습니다.
<추모사>
동지를 가슴에 묻으며
지구를 거꾸로 돌려 단 몇 시간만이라도 되돌릴 수 있다면, 동지의 넉넉한
그 웃음, 차분한 그 목소리 다시 들을 수 있다면… 김종배 동지여, 당신은
민주노조 그 험난한 역사에 청춘을 바쳐 치열하게 살아오더니 37세 꽃 같은 젋
음으로 어딜 갔습니까. 편찮으신 부모님 걱정에 쓰린 소주 가슴에 부으며 침묵
하던 당신. 15년 세월을 노동운동에 몸바쳐 잠 한 번 길게 자지 못해 피곤이
온 몸을 덮쳐 와도, 한 번의 큰 숨으로 훌훌 털어 버렸던 당신. 빛나지 않아도
가난하고 힘든 자의 편에 영원히 남겠다던 당신, 김종배 동지여. 왜 이렇듯 당
신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게 하십니까.
노조를 만들고 그로 인해 해고되었을 때도 당신은 흔들림 없는 거목이었는
데, 적들이 당신의 활동에 겁먹어 당신의 육신을 차가운 쇠창살로 묶어 두었을
때도 당신의 마음은 자유인이었는데, 전노협을 사랑하며 민주노조를 뜨겁게 외
치던 당신이었는데, 몰아치는 삶의 고비, 죽음과 맞붙어 싸워 죽음까지 살던
당신이 이렇듯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셨단 말입니까.
몸을 불사르며 항거하는 동지에게 살아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며 쓴 눈물을
삼켰던 당신, 떨리는 입술을 힘주어 깨물며 더러운 세상 싹 갈아엎어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고 두 손 뜨겁게 맞잡아 주던 동지여. 우리 이제
당신을 가슴에 묻습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 없겠지만, 이제 아름다운 영혼, 순결한 당
신의 뜻을 가슴 깊이 되새기겠습니다. 지금 우리 만신창이가 되버린 당신의 육
신을 쓸쓸히 땅에 묻지만, 동지여 당신이 동경하던 이름 모를 풀꽃으로 되살아
나소서. 투쟁하는 노동자의 가슴에서 살아 숨쉬소서. 그리하여 영원히 가난하
고 힘없는 자의 편으로 남으소서. 우리 당신을 그리워하지만 그것에 머물지 않
겠습니다. 당신이 원했던 세상, 당신이 그렇듯 갈망했던 세상을 위해 투쟁하겠
습니다. 당신이 남긴 마지막 발걸음을 이어 가겠습니다. 동지여 이제 넋이 되
어 버린 김종배 동지여, 고이, 부디 고이 가소서.
□ 故 김종배 동지의 약력 □
·63년 3월 김준기씨 4남2녀 중 사남으로 강원도 진부에서 태어남 ·82년 3
월 성균관대학교 역사교육학과 입학 ·83년 11월 한주기업 입사 ·84년 9월 노
동조합 유예 ·85년 11월 집시법 위반으로 수배 ·86년 7월 집시법 등 위반으로 구속
·87년 7월 형집행정지로 출소(잔형 3개월) ·87년 9월 농심 입사(87년 11월
해고, 위장취업) ·87년 12월 뉴텍 입사(88년 7월 해고, 위장취업) ·88년 9월
지평기획 기획전선 등 사업체 설립해 대표 역임(89년 2월) ·89년 3월 YMCA노
동교육실 교육담당자로 90년 7월까지 활동(네덜란드 노총 국제지원 프로젝트에
노동조합 간부 양성 프로그램) ·90년 8월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조직국 활동 ·
91년 2월 성균관대 역사교육학과 졸업 ·91년 5월 박창수열사 옥중살해 진상규
명 투쟁중 구속 ·92년 3월 출소 ·92년 3월 전노협 복귀 후 조직,쟁의,총무,
조사통계,정책국장 등 활동 ·95년 12월 전노협 해산 관련 ‘전노협 백서발간위
원회’ 팀장 ·97년 5월 공공부문노조대표자회의 기획국장으로 활동 ·97년 12
월 공공연맹 준비위, 공공연맹에서 정책국장 대외협력국장으로 활동 ·99년 3
월 통합 공공연맹 교육국장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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