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은 철폐되어야 한다.
지난 12일 밤 TV에서는 지난 반세기동안 숨죽여 지내오던 기막힌 일들이 조
용하지만 힘있게 전국으로 퍼져갔다. MBC의 특별기획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첫 회 ‘제주 4·3’ 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밝혀진 진상은 “권력의 대량학살. 권
력욕에 눈먼 이승만 정권과 미국의 협잡이 낳은 결과라는 게 미국 비밀문서와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사태해결을 위해 원만한 협상을 이끌어 낸 제주도
주둔군 책임자는 조병옥 경무부장과 미군에 의해 `빨갱이’로 지목됐고, 군경은
3만명에 가까운 제주도민을 무참히 학살하는 초토화 작전에 들어갔다.”는 내용
이었다. 사실 이런 결론은 새로운 게 아니다. 2년 전, 83분짜리 다큐멘터리 <
레드 헌트>(감독 조성봉)는 인권영화제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일반에 알렸고,
검찰은 관련자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지난 9월 7일 법원
은 무죄판결을 내렸다.
다시금 국가보안법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이
적용상의 문제점 등이 있으므로 개정논의를 하겠다는 뜻을 비췄으며 이는 15대
마지막 정기국회의 안건으로도 상정되게 되었다. 그러나 롯해서 자민련,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국가보안법은 일반 시민들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으며 불편도 없다. 오
직 국가변란을 도모하는 세력들에게만 국보법은 눈엣가시였을 것”이라는 것이
다. 또한 최근에 국정원에 의해 발표된 ‘민족민주혁명당’ 사건을 들먹인다.
“이들을 보라.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이렇게 많은 불순세력이 지하에서 암약하
고 있는데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드높인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노동운동, 민중운동, 학생운동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
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것을 보아왔다. 그리고 이들 구속자 등 중
재판에서 실형을 받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는 것도 통계로 나와있다. 아비드
후세인 유엔 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은 95년 보고서에서 “국제 인권단체나 유엔
의 (한국에 있어서의) 국가보안법에 대한 비판은 의사표현·사상·결사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점에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고, 유엔 인권이사회는 98년 말
한국 정부에 국보법 7조의 폐지를 권고했다. 국제사회가 한국에서의 국가보안
법의 인권침해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분단과 함께 우리 역사에 있어서 끊임없는 눈물과 한숨의 악법
으로 지금까지 여러 이름으로 변형되어 유지되어 왔다. 해방이후 남로당 색출
을 명목으로 해서부터 박정희 18년 집권의 원동력으로,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
권 때의 체제유지의 기반으로, 그리고 소위 문민정부라 떠들던 김영삼정권 때
조차 국가보안법은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 자신이 80년대 초 국
가보안법의 희생자로 ‘사형’을 언도받았던 ‘인권대통령(?)’ 김대중정권에서도
이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삼아온 공안당국은 급기야 진형구 전 대검 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파
문으로 자신의 존립기반마저 의심받고 있는 지금, 또다시 국가보안법의 유지,
강화를 주장한다면 현 정부또한 과거의 어떠한 정권과도 다를 바 없는 반인권
적 정권으로 낙인찍혀야 할 것이다.
이미 국민은 분노하고 있다. 각계에서 국가보안법 반대투쟁이 시작되고 있
다. 지난 7월 12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천주교 연대’를 결성한 천주교계
는 그동안 10만명 서명운동, 천주교 2000인 선언 발표, 전국 순회기도회 등을
추진해왔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문규현)의 사제 20명도 국가보안
법 폐지를 내걸고 7일 삭발식과 함께 현재까지 가톨릭회관에서 무기한 단식기
도중이며, 실천불교전국승가회(회장 청화) 등 9개 불교단체는 7일 전국불교운
동연합 회의실에서 모임을 갖고 국가보안법 반대를 위한 불교 연대를 구성하여
불교사상에도 어긋나며, 400일 넘게 조계사에서 농성하는 수배학생들, 국보법
으로 진관스님이 구속된 것 등을 감안하여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을 전체 불교계
로 확산시킨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한편 국가보안법 완전철폐, 공안탄압 분쇄를 위한 범국민투쟁본부는 9일 오
전 명동성당에서 범민련, 전국연합 등 19개 사회단체 공동명의의 ‘국가보안법
전면철폐를 위한 시국선언’을 발표하면서 “국가보안법은 지난 72년 남북공동성
명과 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합의서 발효 등으로 존재 이유를 잃은지
오래됐다”며 “10일 개원 예정인 정기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이 전면 폐지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국가보안법 반대 국민연대(국보연대)는 국보법 제7조
(고무·찬양 등) 삭제를 최소 목표로 국보법 폐지론자와 개정론자가 연대하여
투쟁하고 있다. 그리고 민중생존권 쟁취·사회개혁·IMF반대 범국민운동본부
(국본)에서는 지난 9월 11일 대표자회의를 통해 ‘국가보안법철폐 공동투쟁위원
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공동위원장으로 김진균 교수와 민주노총 위원장, 전국
연합 의장 등을 선출하였고 민주노총을 집행책임자로, 민주노총, 전국연합, 노
동자의 힘, 민주노동당 등을 중심으로 집행위원을 내기로 했다.
이제 ‘공공의 안녕과 민주국가 질서 수호’를 빌미로 하여 국민을 상대로 수
많은 아픔과 눈물을 짓게 했던 국가보안법의 치욕의 50년사를 마감할 때이다.
노동자 민중진영의 단결투쟁으로 올해안에 국가보안법을 철폐시켜야 한다. 정
치·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반민중적, 반인권적 탄압을 자행하는 국가보안법
의 굴레를 힘찬 투쟁으로 벗어제껴야 한다. 이제 투쟁은 시작이다. 11월 노동
자대회(민중대회)를 기점으로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새로운 천년이 오기전에
국가보안법이라는 구시대적 냉전유물을 우리의 손으로 끝장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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