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자력 사상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고로 기록되는 30일의 도카이무라 핵연료공장 사고는 고농축 우라늄이 핵분열을 일으키는 임계상태에 이르면서 한때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악몽을 일깨우기도 했다. 사건발생 이후 임계상태가 중지된 1일 오전까지 20시간 동안의 긴박한 상황을 재구성했다.

◇사고발생=제이시오(JCO) 도카이사업소는 이날 시험동내에서 원료인 산화우라늄 분말을 순도가 높은 초산우라늄 수용액으로 전환하는 가공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산화우라늄에 초산을 넣어 초산우라늄 화합물 용액으로 만든 다음 불순물을 조금씩 제거하면서 순도를 높여가는 작업이다.

사고의 정확한 경위는 아직 공식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고순도의 초산우라늄 화합물에 암모니아를 첨가해 침전시키는 과정에서 침전용기에 규정 이상의 우라늄이 들어가면서 핵분열 연쇄반응이 일어나 폭발하는 임계상태가 조성됐다. 이때가 오전 10시35분께로, 작업중이던 이 회사 직원 3명은 “파란 불꽃이 이는 것을 보았고, 그 순간부터 기분이 나빠졌다”고 나중에 밝혔다.

제이시오는 1회 작업시 투입 우라늄량을 2.4㎏으로 제한하고 있으나 이날 투입된 양은 이보다 7배나 많은 16㎏이었다고 발표했다.

◇ 사고확대와 주민동요

사고 직후 공장 주변에 있던 21개 방사선감시장치 중 적어도 두 곳에서 통상 측정치의 4000배가 넘는 0.84밀리시베르트의 방사능이 검출됐다. 회사는 이바라키현 등과 맺은 원자력안전협정에 따라 이들에 연락을 취했으나 이때는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이 지난 오전 11시33~34분이었다.

뒤늦게 통보를 받은 현 당국은 사고현장 반경 200m이내의 출입을 금지시켰고 도카이무라는 낮 12시15분에야 재해대책본부를 설치했다. 현장에서 반경 350m내의 주민들 120여명의 공공시설 대피가 시작된 것은 오후 3시30분부터였다.

주민들은 이때부터 현저히 동요의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오후 5시 현장 주변 방사선 측정치가 3.5~4밀리시베르트로 나오면서 임계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대피범위가 반경 500m로 확대됐다. 그뒤 반경 10㎞로 확대돼 내각교체 결정의 연기조처까지 취해진 것은 밤 10시가 지나서였다.

◇ 정부대응 첫 보고가 오부치 게이조 총리에게 전달된 것은 사고발생 2시간 뒤였다. 과학기술청이 총리 지시로 대책본부를 설치해 관계부처회의가 소집된 것은 3시반께였다. 이와는 별도로 내각 안전보장위기관리실은 같은 시간에 위기관리를 위한 총리관저 연락실을 설치했다. 오후 4시가 지나 기자회견장에 나온 노나카 히로무 관방장관은 정부의 대처가 뒤늦었음을 자인했다. 총리관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은 오후 5시께 임계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문부상과 과기청장관의 보고를 받은 뒤였고 그 직후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정부대책본부가 설치됐다. 결국 정부대책본부 1차회의는 밤 9시에야 열렸다.

◇ 임계상태 해소 1일 새벽까지 임계상태의 위험이 지속되던 사고현장은 새벽 3시반께부터 사고용기에 든 냉각수를 뽑아내기 위해 밸브를 열고 배관을 부수는 등의 조처가 시작되면서 진정되기 시작했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약 3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6시20분께 핵분열 반응을 촉발하는 중성자가 측정에서 거의 사라졌다고 발표했다. 도쿄/한승동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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