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 또 하나의 언론 금기가 해제된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주도 4·3 항쟁과 여수·순천 사건 때 정부 진압군의 무차별한 양민 학살이나 한국전쟁 때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언급한다는 것은 거의 ‘사상적 불순’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높은 나라’에서 이 얘기가 일단 활자화하니 한국 정부와 언론도 드디어 미군 만행의 피해자를 피해자로 정식 인정해 주는 용기와 자비를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통신사들과 주요 언론이 6·25 때 미군의 학살을 앞장서 보도하고 국내 언론들이 뒤따르기만 한다는 사실은 역설 중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몸에 밴 사대주의나 그동안 외세의 대변지인지 모호한 태도를 보여온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보다 더 웃지못할 일이 있다. 45년 미국과 함께 일본군을 몰아내고 한국을 점령한 소련의 스탈린은 37년 연해주의 고려인들에게 말도 안 되는 ‘친일 간첩 혐의’를 씌워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약 20만명의 교포중 2~3만명이 아사·동사·총살로 사망했다. 고국을 떠나 머나먼 사막에서 처참하게 얼어죽고 굶어죽어간 그들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역대 러시아 정권들은 지금까지 이에 대한 후회도 관심도 별로 표현한 바가 없다.

문제는 북한 봉쇄를 위해 러시아 달래기에만 급급해온 남한 정권들도 러시아의 그 반인륜적 범죄를 추궁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추궁은 못했더라도 독일이나 이스라엘처럼 재소 교포의 남한 송환을 추진이라도 해봤을까. 아니, 그것도 부담이 됐다면 고려인 피난민들을 정부 명의로 공식 지원이라도 한번 해보았을까. 슬픈 일이지만, 한국 정부가 고려인에게 취한 유일한 조처는 그들을 재외교포법에 의거한 한국 국적 취득 대상자에서 뺀 것이었다. 노근리 피해자들이나 고려족들 모두 동포보다는 외세를 더 살피는 한국 언론과 정권에 의해 무시당해 왔다.

동족을 대량 말살하고도 아무런 후회도 표하지 않은 러시아 정권에 대해 친구 삼자며 미소짓는 한국에 대해 러시아인으로서도 웃어야 할 일인지 울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미·소의 강요에 의해 생긴 분단으로 남·북은 사실상 주변 강국과의 평등한 관계는 거의 불가능하다. 남북 대결에서 생존을 위해 남한은 미·일, 북한은 중·러의 지원을 각각 얻어야 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경쟁자를 소외시키기 위해 서로 러시아에 손을 내밀고 있다.

실제로 소련이 고려인들에게 가한 피해나 미군이 한반도 양민들에게 가한 피해는 국제적으로 대량 학살죄에 해당되는 중범죄다. 그러나 분단체제 아래서 이스라엘이 독일에게 한 것처럼 한국 정권이 적극적으로 미·소의 죄상을 실상대로 고발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외교상의 불이익도 문제지만, 반세기간의 불평등 외교가 지배층의 집단의식을 완전히 오염·굴절시켜 “어떻게 큰 형님에게 대드냐?”거나 “거지 동포(고려인)들을 위해서 왜 쓸데없는 일을 벌이느냐”는 식의 패배주의 사고에 젖게 된 때문이다.

힘센 나라가 도덕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군대와 국력이 크고 힘이 셀수록 국제사회에서 오만함과 횡포가 배가되곤 한다. 따라서 한반도 4강에 대한 인식이 확고해야 한다. 통일과 같은 민족의 핵심적인 문제들이 또 다시 외세에 의해 간섭돼 왜곡되는 것보다 큰 재앙이 없을 것이다.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불가피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는 것을 포기해선 안 될 것이다. 국제 무기시장을 독점하려는 미국과 러시아,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자치구를 군사기지와 무기시험장으로 만들어 생태계를 치명적으로 파괴시키는 중국, 재무장을 꾸준히 노리는 일본…. 현실적으로 강도에게 “넌 강도”라고 나서서 말할 여건이 못 된다 해도, 강도를 친구나 스승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노근리와 같은 수많은 학살, 고려족 말살 등의 대규모의 강도짓에서 그 소박한 진리라도 배운다면, 억울하게 죽고도 한마디 위안조차 받지 못한 수많은 영혼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박노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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