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비데 / 유럽연합 파견연구원

얼마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자유기업센터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보았다. 한국의 일부 정부관료와 저명한 경제인들이 어떤 때는 시장경제의 신봉자인 것처럼 행동하다가 또 어떤 때는 정부의 경제규제를 지지하는 이중성을 보인다는 비판이 담겨 있었다.

나의 한국어 지식으로 한입으로 두말하는 경우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의 한국경제에 대한 지식으로 자유기업센터에서 이런 종류의 발언을 할 자격이 있는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다. 자유기업센터는 전경련을 지배해 온 재벌들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해 재벌들이 한입으로 두말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를 지적하지 않고 오직 정부의 일부 관료와 일부 경제인들에게만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자기 그룹의 주식을 5% 정도밖에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서 그룹 전체를 주무르고자 하는데도, 이를 시장의 이치로 보아야 옳은가? 삼성그룹처럼 자동차 부문에 무분별하게 투자해 발생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구조조정의 대가로 빚의 일부를 탕감해 주도록 정부에 요구하면서 당국의 개입에 대해선 반대하는 재벌까지 볼 수 있다. 재벌은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고 특권을 보호해주는 범위 안에서만 정부 개입을 문제 삼지 않는다.

한국 재벌은 한국 경제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이지 않은 부분을 이루고 있다. 60년대 이후 경제는 정부가 금융시스템을 국가적으로 관리하고 경제에 대한 통제를 확고하게 한 뒤, 동조적인 몇몇 기업들만 금융혜택을 받을 수 있게 보증해 주고 산업의 전략적 부문을 넘겨주는 기반 위에서 건설됐다. 프랑스에서 비등한 예를 찾는다면 다소나 비벤디를 들 수 있는데, 그들도 본질적으로는 보호시장 기반 위에서 발전한 기업들이다.

한국에서 이런 경제모델은 과점과 독점, 은밀한 합의, 특히 재벌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와 진입장벽 형성 등을 통해 지나치게 집중되고 경쟁이 제한적으로만 이뤄지는 경제를 탄생시켰다. 은행대출이 재벌과 중소기업 간에 극도로 불평등했던 것도 이런 모델 때문이다. 금융부문 투명성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정부의 이런 방조가 없었더라면 재벌은 97년 금융위기 이전에 이미 어려움에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97년 금융위기로 최소한의 충격만 받거나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재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자유기업센터 역시 한입으로 두말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유기업센터는 자신들이 발간한 소책자에서 “자유로운 기업 운영과 개인의 자유와 책임, 법적 구속력 등 경영지도 원리를 발전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이라며 자신들의 목적은 “번영을 가져오고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자유주의의 실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연구소는 몇달 전 재벌기업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이 대표권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에 반대했다. 설립 목적과 상반되는 이들의 이런 행위에서 시장과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규제하려는 재벌의 또다른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이뤄진 많은 경제학적 연구들에서, 자동 제어기능을 갖춘 시장이란 없으며 규제를 받을 때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이 밝혀져 왔다.

97년 이후 한국이 겪고 있는 최대의 경제위기가 재벌을 직접적으로 규제하지 못했던 한국 정부에 재벌규제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아직 정부에서 그 정당성을 제대로 실천에 옮기지 않고 있으며, 구체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은 채 비판적 의견만을 밝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된다.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규제장치와 경영인들이 저지른 위반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본보기식 처벌, 그리고 고용보호에 대한 실질적인 체계를 갖추지 않은 채 한국 정부가 시장개입을 축소한다면 사회적 결과는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필자 약력 △66년 남 △파리 소르본대학 사회경제학 전공 △90∼91년 주한 프랑스 대사관 근무 △92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비영리섹터 비교연구 △98년∼ 한국에서 제3섹터 연구중 △<사회경제학>(97년),<한국>(98년)등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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