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이영미(문화평론가)
‘에쵸티 세대’와 잘 지내려면
한동안 ‘서태지 세대’란 말이 있을 정도로 서태지는 90년대 신세대
의 상징이었다. 90년대가 다 꺼져가는 지금의 신세대는 서태지 세대
가 아니다. 서태지 세대는 벌써 서른 전후의 장년이다(정말 세월 빠
르다. 이런 말을 자꾸 하게 되니 나도 확실히 늙었다). 뉴키즈온더블
록 앞에서 꺅꺅거리다가 압사사고를 당한 열다섯살 아이가 벌써 대학
교 3, 4학년이 되었을 것이다.
이번 가을에는 에쵸티(H.O.T) 사건을 치렀다. 2백여명의 관객이 실
신해서 실려나가고 한 아이가 자살했다. 모르긴 몰라도 자살의 원인
이 에쵸티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평소에 얼마나 의사소통이 안되
는 상태였으면 그런 한 번의 언쟁이 자살로 이어졌으랴. 하지만 어른
들은 그런 모든 것을 에쵸티 때문이라고 몰아부치기를 좋아한다. 그
래서 청소년 타락의 주범은 늘 대중문화로 꼽힌다. 하지만 대개 청소
년 문제의 원인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어른들은 뭔가 명확한
원인을 설정하고 그것을 지탄함으로써 그 문제 미해결의 답답함을 해
소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해결로 가는 길은 아니다.
이와 관련한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시민들에게 리포터를 파견해
서 의견을 들을 바, 흥미로운 결과를 보고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연
예인을 추종하는 청소년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우려하는 세대는, 나
이 든 50대가 아니라 오히려 젊은 30대와 40대 초반의 세대라는 것이
다. 50대 이상들은 오히려 여유로웠다. ‘옛날에 우리 애들도 어릴 적
에 그 난리를 쳐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좀 크고 나니 괜찮더라’는 게
그네들의 이야기였다. 서태지 세대, 혹은 변진섭 세대의 부모들은 이
제야 깨달은 것이다. 애들은 자랄 때 다 그러는 거라고. 그에 비해 30
대와 40대 초반들은 이제 막 자신의 아이들이 사춘기에 도달한 세대
이며, 그래서 사소한 일에 짜증을 부리고 문을 닫아걸면서 연예인 앞
에서는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이 걱정되기 시작한 세대이다. 이들도
10년쯤 지나면 이렇게 여유로운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대중예술 평론을 하고는 있지만 ‘송창식 양희은 세대’라서(요
즘 애들 말로 ‘구린’ 세대인 것이다) 사실 요즘 애들을 어떻게 다루어
야 하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그래도 문화를 분석하는 사람으로
서 한 마디 교과서적 충고를 한다면 이렇다.
첫째,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문화(그것이 옷이건 대중음악이건 말
버릇이건 사고방식이건 간에)는 그것이 옳아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
라, 거꾸로 나에게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좋아하고 옳다고 생각함을
명심하자. 대개 어른들은 자신에게 익숙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아이들도 그럴 것이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에 합리
적인 이유를 붙여 설득하려 한다. 그러나 문화는 상당히 많은 부분
단지 취향이거나 관습이다. 에쵸티 취향보다 어니언스 취향이 더 옳
은 것은 아닌 것처럼, 연예인에게 몰두하는 정도 역시 그 세대의 문
화일 뿐이다.
둘째, 아이들의 문화도, 그것을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게 되는 것에
는 상당히 그럴 듯한 이유가 있음을 ‘마음 속 깊이’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에 한 번이라도 동참하려고 노력하자. 문화가 다른 사람들은 서
로를 야만적이라고 여긴다. 아이들이 자기네들끼리 알아들을 수 없는
은어를 쓴다고 욕하지 말자. 그 아이들이 십수 년 동안 어른들이 가
르쳐준 대로 배워왔다. 그걸 생각하면 아이들이야말로 어른들을 정말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해오지 않았는가.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더
이상 그 노력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건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그걸 이해하는 것은 그네들의 몫이 아니라, 우
리 어른들의 몫이다. 그래서 어른답게 그네들의 문화 속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이해하려 노력하자.
셋째, 섣불리 그네들 앞에서 ‘난 너희들을 이해한다’고 말로 티를
내지 말자.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을 가장 재수 없어 한다. 그건 마치
어른들이 ‘나도 이제 어른이야, 어른들을 다 이해할 수 있어’하고 잘
난 척하는 아이들이 꼴같잖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아
무리 노력해도 그네들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 점에서 겸손해
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자
만심은 금물이다.
이 세 가지만 지켜도 아이들이 최소한 자살은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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