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이영미(문화평론가)
고층아파트를 좋아하세요?
2백년쯤 뒤 사람들이(그때까지 인류가 존재한다면) 지금 20세기 말 한국의 건축문화 가운데 가장 희한하고 멋대가리 없는 것을 꼽으라면 무얼 꼽을까.
나는 건축에는 완전히 문외한이지만, 아마 고층아파트를 꼽게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의 고층아파트 붐은 거의 광적으로 보인다. 별별 곳에 다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서 있으며, 십년이 넘은 나지막한 아파트들이 헐리고 난 자리에는 영락없이 고층아파트들이 들어선다. 서울같DL 좁은 땅덩어리에서 많은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고층아파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꼭 여기에 저층아파트가 아닌 고층아파트가 들어서야 할까 싶은 곳에도, 예컨대 땅이 넉넉한 서울 바깥 지역에도 고층아파트가 있고, 심지어 논밭 한가운데에 떡 하니 고층아파트 몇 동이 버티고 서 있다. 저런 넓은 곳에다가 왜 꼭 하늘로 치솟는 사각형 시멘트 건물을 지어야 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서울 삼선교 산비탈에 지어놓은 고층아파트는 아름다운 북한산의 하늘선을 모조리 가려버렸다. 논밭과 아름다운 산세를 가로막고 덩그마니 서 있는 시골의 고층아파트는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90년대 들어서서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가 된 수많은 답사기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은 대개 옛 건축들이다. 그런 책들을 보면 건축 속에서 그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철학, 미의식 등을 분석해낸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토록 고층아파트를 지어대는 것도 무언가 우리의 사고방식에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 그냥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적어 본다.
우선 실용성·효용성에 대한 맹신이 엿보인다. 사각형의 똑같은 높이로 쌓은 멋없는 시멘트벽들은 네모칸의 실용성 말고는 어떤 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으며, 그 안에 들어가면 별로 움직일 일 없이 편안하다는 것에 대하여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움직일 기회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불편하고 불건강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만 움직여도 일이 빨리 처리되는 효용성을 맹신한다.
획일적 사고방식과 미의식도 드러난다. 뭔가 변화를 주면 불편해하고 다 똑같아야만 안심을 한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입으로는 개성을 부르짖는다. 그래서 좀더 개성적으로 살기 위해, 아파트 구조 변경을 하고, 벽지와 타일을 바꾸고, 거실에 작은 화단이나 연못을 꾸민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것조차 철저히 유행을 따르고 있어서, 다 개성적이고 싶어 뜯어고친 아파트의 내부는 다 획일적이다. 그들은 입으로는 개성적이고 싶어하지만 그 개성의 방향이 지나치게 획일적이어서, 남과 다르면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이들은 개성적으로 뒤쳐지는 것보다는 획일화되는 편을 선택한다. 땅이 넓어 고층아파트가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 시골 마을에서도 사람들은 서울사람들처럼 고층아파트에서 살고 싶어하고, 그래서 논밭 한가운데에 고층아파트가 지어진다.
또 서양식의 근대적 기술에 대한 집착도 만만치 않다. 저층으로 집을 짓는 것보다 고층으로 집을 짓는 것이 뭔가 더 높고 발전된 선진적 기술이란 생각에 암암리에 젖어있기 때문에 고층아파트를 선호하는 측면도 크다. 70년대 30층이 넘는 삼일빌딩이나 80년대 여의도 63빌딩을 짓고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는가를 생각해 보자. 한옥집은 단층집이며, 일본식이나 서양식 집은 2층 이상의 집이 많다. 계단이 있는 2층, 3층집에 대한 동경, 단층집은 후진적이라는 생각은 오랫동안 우리들을 지배했다. 아니, 우리 나라 사람들은 비단 높은 것뿐 아니라, 큰 것을 무조건 좋아한다. 양에 대한 집착. 작은 것보다는 큰 게 좋다고 생각한다. 작은 집보다는 큰 집이, 소규모 단지보다는 대단지를 좋아한다. 큰 것에서 힘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작은 나라로서의 열등감을 이런 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일까. 어쨌든 한 학교에 수십 학급이 있는 초대형 학교를 오랫동안 자랑스러워 할 정도로 우리는 큰 것에 집착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고층아파트에서 억척스러운 소유욕을 감지한다. 문을 꽉 닫아걸면서도 세상 모든 것을 완결적으로 갖고 싶어하는 욕심 말이다. 북한산 비탈이나 풍경 좋은 곳에 고층아파트를 짓는 것은, 그 풍경을 그 아파트에 사는 사람만이 독점하겠다는 마음의 발로이다. 넓은 창문을 통해 그 사람들은 좋은 풍경을 만끽할지 몰라도, 그 아파트 때문에 풍경이 완전히 망쳐버린다는 사실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언젠가 거대한 시멘트 쓰레기가 되고 말 고층아파트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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