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근리·고엽제…미국을 다시 본다
홍근수/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상임의장·향린교회 담임목사
최근 관심을 끄는 사건들이 ‘노다지’로 쏟아져 나오고 있어 우리 국민들은 오직 어리둥절할 뿐이다. 여권의 언론대책문건 파동, 옷로비 사건, 사직동팀보고서 유출사건,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정형근 문제, 국가보안법 문제, 공안검찰에 의한 파업유도 사건, 호프집 화재로 인한 학생들의 떼죽음과 뇌물수수, 불평등한 미군주둔군 지위협정 개정문제, 비무장지대에 고엽제 살포사건, 미군에 의한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등등 다 나열하기조차 어렵다. 한결같이 우리 국민에게 중차대하고 충격적인 문제들이다.
그런데 이 수 많은 사건들 중에서도 미군의 양민학살사건, 소위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은 참으로 충격적인 사건으로서 한국인의 미국관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는 의식의 대전환을 의미함)을 가져오게 할 사건들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은 1950년에 한반도에서 발생하여 3년간 지속된 6.25 전쟁과 휴전의 주체다. 그래서 6.25전쟁 또는 한국전쟁으로 불리는 이 전쟁이 한국인에게는 대리전쟁이었을 뿐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주권국가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의 군대에 대한 전시 작전지휘권을 장악하고 있다. 여기서 전시 아닌 군대지휘권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아가 이 지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의 본보기인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주둔군지위협정을 가지고 지금까지 반세기 이상 남한 땅에서 어느 외교특권보다 더 우대하는 온갖 특권을 누려왔다. 실상 그 특권은 한반도가 미군에게는 범죄천국이고 지상낙원 같이 여겨질 정도였다. 이것은 이 지구상 그 어느 다른 곳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임은 물론이고, 미군은 이러한 초법적 지위에서 그 어떤 도전이나 저항도 없이 우리 국민 위에 군림해 오고 있다.
인혁당 사건으로 강제추방되었던 시노트 신부에 따르면, 이 지상에 미군이 발을 들여놓은 곳은 어디서나 그 다음날 ‘양키 고 홈!’ 소리가 들리지만 한국만은 예외로서 아직도 그 구호가 들리지 않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참으로 미스테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다른 나라에 발을 디딘 미군은 그곳 문화와 시민을 존중하여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지만,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대하여는 멸시, 천대하고 한국인을 마구 짓밟고 온갖 인권 유린 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현실이다. 실로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특권을 향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미군이 우리 국토의 수천만평을 아무런 임대료도 지불하지 않고 점령하여 사용하고 있음은 물론 전기료, 수도료 등 소위 간접지원비를 제외하고도 우리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비조로 매년 약30억불을 지불하고 있고 그것도 해마다 인상을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천하에 이런 곳이 어디있는가?
북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전쟁중 미군에 의한 북한 양민학살을 주장해 왔으나 반공적이고 반북한적인 우리 남한에서는 이를 믿지 않고 일소에 부쳐왔다. 그런데 이번에 막상 처참한 양민학살이 충북 영동지역에서 저질러진 사실이 폭로되어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게 됐다. 미국 정부당국과 군당국에서도 부인할 도리가 없어 이를 인정하였다.
이 사건은 우선 한국인들의 미국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자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사건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가지고 있는 미군의 방조 내지 묵인 아래 이루어졌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그때 민주와 자유, 평화와 자주를 외치는 광주의 양민들의 구원 요청을 외면하고 오히려 그들을 학살하기 위해 ‘진압작전’에 군을 투입하려는 군부의 요청을 승인한 사건에서 비로소 미군이 우리 한국인에게 누구인가 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잊어버리기를 잘 하는 우리 국민들과 친미사대주의적인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 그 정도의 미군의 잘못에 대하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관용’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충북 노근리에서 있었던 양민 학살사건을 대하고서 우리는 미국과 이 땅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새롭게 보고 있다. 그 동안 미국은 주한미군을 공산주의 세력의 남하를 막고 자유를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대한민국의 주권을 지키고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군대로 선전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부터 사실이 아니고 처음부터 정치선전이고 거짓이었을 뿐이다. 이번에 백일하에 명명백백하게 들어난 노근리 학살 사건을 통해서 미군은 우리의 해방자도 ‘구세주’도 아니고 형님도 친구도 아니며 우리의 ‘우방’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를 철저히 자신들의 나라에 예속된 식민지(요즘은 신식민지라고 하는 모양이지만)로 대해 왔을 뿐이고 기껏해야 미국의 상품시장이며, 미국의 국가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매우 편리하고 유리한 군사기지였을 뿐이다. 이번 사건으로 더욱 명백히 된 것은 이 땅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우리 민족의 생존과 인권을 짓밟는 악한 지배자이고 외세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어도 새 세기부터는 더 이상 미국과 미군에 대한 ‘짝사랑’과 환상을 내던지고 정신을 차려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아 민족자주의 길로 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할 통일의 길이고 민족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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