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짤막통신 ]
컵에 담긴 강요된 여성성의 세계를 깨는 한판 행사
11월 전국 민중대회, 매우 이색적인 컵깨기 행사가 열렸다. 컵에 담긴 순응과
강요된 여성성의 세계를 이제 참을 수 없다고, 박살내겠다고, 그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남성들이 그 노동의 주체가 되게 하겠노라고 여성활동가들이 한 판을 벌
였다. ‘운동사회내 가부장성과 권위주의 철폐를 위한 여성활동가모임’이 그 주
역이다. 그날 좌중의 심금을 울리며 낭독되었던 발족선언문의 일부를 소개한다.
『아무도 이 일은 안해 개수대가 가득 차 있는데, 만일 커피나 차를 마시고
싶다면…. 여성들은 아예 차나 커피를 안 마시거나 마시려면 자기 것만 씻어
마시거나 이왕 씻을 거 물 묻힌 김에 하자는 심정으로 설거지를 한다(왜 유명하
지 않은가? 물 묻힌 김에 내가 할께.) 그러나 남성은? 밥그릇이나 국그릇에 타
서 마신다.(중략)
회의실 탁자 위에는 수북한 담배꽁초가 담긴 재떨이와 함께 줄줄이 소풍가는
머그컵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박수를 끝으로 회의가 끝난다. 몇몇은 모여
회의 때 얘기되었던 쟁점을 끼리끼리 다시 논의하고, 몇몇은 슬며시 회의장을
빠져나간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컵이 장난 아니게 줄지어 있다. 이때 컵을 들
고 나오는 이들이 누구인가. 바로 여성활동가들이다. 뒷풀이 가자고 남성들이
외치는 가운데에서도 여성들은 자기 컵과 함께 남이 먹은 컵을 가지고 간다.
왜? 다음날 상쾌한 아침을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까.』
컵은 여성활동가들의 손에 박살이 났다. 하지만 우리사회 가부장성은 아직 견
고하다. 아마 내년에도 컵을 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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