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뉴라운드 저지투쟁 현지르뽀

잠못이룬 WTO-꿈틀대는 세계 민중연대

5만여 성난 물결 ‘자유화·개방화’ 제동…이제 시작일 뿐

원영수/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국제기획실장

지난 11월30일 각국에서 달려온 전세계 노동자-민중운동 활동가들이 시애틀 중심가를 점거한 채 WTO각료회담장을 완전 포위하면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는 초국적자본의 지배를 강요하는 WTO체제에 대한 강력한 경고임과 동시에 ‘세기의 투쟁’이었다. 그러나 시애틀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이날 일찍 WTO 회담장 주변의 경찰저지선을 중심으로 시위대가 집결하는 가운데, 오전10시 시내 북쪽의 메모리얼 스타디움에서는 AFL-CIO(미국노총)가 주최하는 노동자집회에 2만여명의 노조원들이 참가했다. 세계 1백44개국 노조와 50여 미국 노조를 대표하는 노동자들은 두 시간의 집회를 마친 뒤, 중심가를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이 노동자 대열에 각국의 환경, 운동,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가세해 시내에 이르렀을 즈음 대열은 5만명으로 불어 시애틀 중심가 전역이 시위대로 뒤덮였다. 전투적이기로 유명한 국제항만노조(ILWU)는 조합원 모두가 이 날 시위에 참여함으로써, 시애틀항과 인근 타코마항, 더 나아가 멕시코, 미국과 캐나다를 연결하는 태평양 해안을 완전 마비시켰다.

그러나 WTO에 대한 AFL-CIO의 어정쩡한 입장, 즉 ‘WTO체제의 개혁’과 ‘노동계의 참여보장’에 그친 지도부의 요구는 WTO체제의 직접적 피해자로서 더욱 강력한 행동을 요구하는 일반 조합원들의 야유를 받았다. 일반 노동자들과 투쟁적인 노조들은 지도부의 일방적인 ‘회군’ 지시를 거부하고, 다른 시위대와 합류해 경찰저지선에 온몸으로 부딪히기도 했다.

‘투자협정과 WTO 뉴라운드 반대 민중행동’의 대표단도 한국 노동자-민중운동을 대표하여 이번 투쟁에 참여했다. 대표단은 WTO체제에 반대하는 한국 노동자-민중의 의지를 세계 각국의 민중들에게 확실히 알렸다. 뿐만아니라 11월30일 투쟁을 전후로 열린 행사에도 폭넓게 참가했다. 이를 통해 한국민중의 입장을 명확히 천명하였고, 다양한 인터뷰와 토론을 통해 각국 활동가들과 국제연대의 장을 더욱 확장시켰다.

한편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11월30일 투쟁은 WTO개막식을 무산시켰다. 나아가 폐막식까지 취소하면서 합의 도출을 꾀한 미국이 무색하리 만치 최종합의를 무산시키는 강력한 압박요인으로 작용했다. 투쟁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여러 가지 의문과 회의가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60년대 이래 최대의 동원으로 기록되는 이번 투쟁은 작년 MAI(다자간 투자협정) 반대투쟁의 승리에 이어 또 하나의 중요한 승리로 기록될 것 같다. 나아가 그 동안 전지구적인 신자유주의 공세에 제대로 반격하지 못한 상태에서 좌절감을 크게 느꼈던 전세계 민중운동에 새로운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어 줄 전망이다.

그러나 앞에 얘기했듯 이번 시애틀투쟁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초국적자본과 그들의 앞잡이인 국제금융기관들은 ‘자유화·개방화’를 내건 시장경제체제를 수정할 의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전세계 민중운동의 강력한 저항과 내부이견 속에서도 6주 이내에 제네바에서 다시 WTO 뉴라운드 출범을 강행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결국 초국적자본과 WTO의 공세는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이른바 ‘시애틀 라운드’는 아무튼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 투쟁이 전세계 노동자-민중투쟁의 역사적 승리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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