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공화국은 옛 소련에 속했다가 소련이 해체한 1991년에 독립한 나라다. 지난 5월 15일에 조지아 의회가 일명 ‘외국 대리인법’을 찬성 84표, 반대 30표로 통과시켰다. 외국 대리인법의 정식 명칭은 ‘외국 영향력의 투명성에 관한 법’이다. 이 법은 정부 여당인 ‘조지아의 꿈’이 지난해 3월에 발의했다가 시민단체 등의 강력한 반발을 받아 통과가 유예되었는데, 올해 다시 발의되어 4월 17일, 5월 1일에 제1, 2차 심의를 거친 뒤 5월 15일에는 제3차 심의를 드디어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법안에 반대하는 세력의 반정부 시위와 집회, 의회 건물 진입 기도가 일어나고 의회에서는 여야 의원들 간의 난투극이 벌어지는 등 조지아는 지난 몇 달간 심각한 정국 불안을 보여왔다. 법안의 최종 통과가 이루어진 지금도 수도 트빌리시 거리에서 격렬한 시위가 진행되고 있어, 조지아에서 새로운 ‘색깔 혁명’이 일어난 양상이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휘날리는 조지아 국기. 출처: pexels
소련에서 독립한 뒤 지금까지 조지아는 정상적인 국가로 작동해 왔다고 보기 어렵다. 소련의 외무장관이었던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의 대통령 재임 기간인 1995-2003년에는 부정부패로 많은 문제가 빚어졌고, 2003년에는 ‘장미 혁명’이 일어나 셰바르드나제가 물러났다. 미헤일 사카슈빌리가 2004-2013년 집권했으나 재임 마지막 해에 권력 남용과 사기 혐의로 기소된 뒤 우크라이나로 망명한다. 독립 이후 러시아와 거리를 두고 친서방 노선을 걷는 동안, 조지아는 EU와 미국의 영향력에 깊이 빠져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쳐왔다. 하지만 그 결과 사회 전반이 위기에 빠지게 된 것은 러시아가 소련 해체 뒤 신자유주의적 ‘충격 요법’을 받은 뒤 심각한 위기를 겪은 것과 닮은꼴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는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가 일으킨 문제의 심각성을 지켜본 뒤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을 수정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조지아도 마찬가지였다.
조지아에서 신자유주의적 친서방 정책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12년에 조지아의 꿈이 선거에 승리한 이후다. 조지아의 꿈이 집권했다고 친서방 세력의 목소리가 잠잠해졌다고 할 수는 없다. 프랑스에서 조지아 출신 부모에게 태어나 장미 혁명 시기 조지아 주재 프랑스 대사를 역임한 적도 있는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그런 점이 잘 보인다. 조지아 시민권을 획득한 주라비슈빌리는 2018년 대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조지아의 꿈의 지원을 받아 당선되었는데, 문제의 법안에 대해 이미 거부권을 행사했다. 그런 대통령 이외에도 조지아에는 야당과 반정부 시민단체에 소속하며 외국 대리인법을 반대하는 세력이 적지 않다. 물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도 여당이 그것을 뒤집을 것이라 이번 법안이 발효될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당과 야당, 친정부 세력과 반정부 세력 간의 갈등이 조만간에 잦아들 것 같지는 않다.
조지아의 ‘외국 대리인법’을 놓고 서방에서는 ‘러시아식 악법’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에서는 법안의 철회를 촉구하고 있기도 하다. EU 집행위는 이미 작년에 문제의 법안을 통과시키면 조지아의 EU 가입이 위태로워질 것이라 경고한 바 있고, 미국은 국무부 부차관보 짐 오브라이언의 입을 빌려 외국 대리인법으로 인해 미국과 조지아의 전략적 관계가 위기에 빠졌다며 금융과 여행 관련 제재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법 통과를 통해 조지아가 일부 전제국가와 같은 행보를 취한다는 비난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논조가 나오고 있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이 한겨레신문의 보도다. 한겨레는 국내 다른 어떤 매체들보다 열심히 문제의 법의 통과 과정을 추적해서 보도하며, 그것을 ‘언론·시민단체 통제법’, ‘언론 입틀막 법안’으로 규정하고 있다. 한겨레가 보도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옛 소련 국가인 조지아 의회가 한 달 넘게 이뤄진 시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식 언론·시민단체 통제법을 통과시켰다. 반발한 시민들은 대규모 시위를 이어갔고, 미국은 조지아와의 관계를 재평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렇게 보면 ‘러시아식’인 것은 문제이고, 조지아 시민 전체가 법안 통과에 저항했고, 미국이 조지아와의 관계를 재평가하는 것은 정상적인 것으로 들린다. 과연 그렇게만 볼 일인가?
외국 대리인 법안은 조지아에서만 채택한 것이 아니다. 서방의 언론이 지적하는 대로 러시아에 그런 법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러시아의 법은 2012년에 발효된 것으로, 처음에는 해외에서 기금이나 보조금을 받는 비정부 조직에 적용되었다가 2019년에는 외국의 정부나 조직 또는 시민들로부터 조금이라도 재원을 받는 모든 개인과 조직을 포함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점만 놓고 보면 조지아가 외국 대리인법을 통과시킨 것은 러시아의 선례를 따른 것처럼 보이고, 또 러시아를 언론을 억압하는 비민주적 국가로 보는 관점에서는 조지아가 전제국가의 길을 가는 것 아니냐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조지아와 러시아에 외국 대리인 법안이 있는 점을 들어 언론과 시민단체를 통제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처사로 비판하는 측은 그런 법안을 처음 만든 것이 미국이라는 점은 전혀 말하지 않는다. 미국에는 ‘외국 대리인 등록법(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 FARA)’이 있는데, 미국 안에서 외국 정부나 정당, 회사, 개인 등의 이익을 대변하며 활동하는 개인이나 단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법은 1938년에 처음 제정되어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쳤고, ‘외국인 당사자’를 위해 미국의 정책이나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는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미국 이외에 오스트레일리아도 2018년에 외국인 영향 투명성 제도(Foreign Influence Transparency Scheme)를 통과시켰고, 영국은 외국 영향등록법(Foreign Influence Registration Scheme), 캐나다는 외국대리인등록법(Registry of Foreign Agents)을 도입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외국의 영향이 여과 없이 자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는 것은 조지아와 러시아만이 아니라는 말이다. 조지아의 법이 ‘입틀막 법’이라면 똑같은 말을 미국, 호주, 영국, 캐나다의 법안에 대해서도 해야 한다. 그러나 서방의 언론이나 정부들은 조지아 여당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통과시킨 법안만 비판할 뿐 자기들의 비슷한 법안에 대해서는 입을 싹 닫고 있다. 국내의 보도 태도도 다르지 않다는 것은 조지아와 러시아의 법안은 비판하며 미국과 여타 서방 국가에도 비슷한 법안이 존재한다는 점에 대해 침묵하는 한겨레가 여실히 보여준다.
조지아 의회가 통과시킨 ‘외국 대리인법’은 외국으로부터 예산 또는 수입의 20% 이상을 지원받는 단체는 외국 대리인으로 등록하라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조지아의 여당이 야당과 반정부 시민단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런 내용을 법제화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조지아는 2003년에 ‘장미 혁명’이라는 이름의 색깔 혁명을 겪은 나라다. 당시 셰바르드나제 정권이 부정부패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장미 혁명으로 집권한 사카슈빌리 정권이 조지아 사회를 안정시키고 발전시켰다고 볼 수는 없다. 2000년 유고슬라비아의 ‘불도저 혁명’,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 등 구사회주의권에서 일어난 색깔 혁명은 부패한 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시민 혁명으로 치부되나, 혁명 이후 들어선 정권은 거의 예외 없이 미국과 서방의 영향권에 편입되는 경향을 드러냈다. 그런 까닭에 색깔 혁명은 대부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작품이라는 말이 나온다.
“정치와 제국 관련 독자적 탐사 기사를 생산하는 독립 뉴스 웹사이트” 그레이존의 키트 클라렌버그 기자가 작년에 쓴 한 보도에 따르면, 조지아에 체류하고 있던 ‘비폭력 행동 및 전략 응용 센터(Center for Applied Nonviolent Actions and Strategies, CANVAS)’ 요원 3명이 조지아의 보안당국에 소환된 적이 있다. “CANVAS는 동유럽에서 베네수엘라에 이르는 지역의 정권 교체 활동가를 훈련해 왔으며 CIA와 긴밀한 연계를 지니고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조직이다.”(Kit Klarenburg, “A Maidan 2.0 color revolution looms in Georgia,” The Grayzone, 2023.10.6.). 이번에 조지아에서 외국 대리인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시민단체가 격렬한 항의 시위에 나선 것을 보면 CANVAS와 같은 조직들이 결합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서방에서는 조지아의 여당을 친-크렘린 정부로 그려낸다. 하지만 조지아의 꿈이 지금 하려는 것은 셰바르드나제, 특히 사카슈빌리 이후 조지아가 취해온 지나친 친서방 노선을 정정하고 동서 간의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라는 평가도 있다. 클라렌버그 기자에 따르면, 조지아의 꿈이 저지른 ‘진짜 죄’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서방, 특히 미국의 대리전을 충분히 지원하지 않은 것일 공산이 크다. 2022년 12월 당시 총리 이라클리 가리바슈빌리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에 맞선 대리전의 ‘제2전선’을 조지아가 펼쳐달라고 거듭 촉구했음을 밝힌 바 있다. 물론 조지아는 그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보안당국이 소환한 CANVAS 요원들은 조지아 계열이기는 하나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활동하는 인물들로 알려졌다. 조지아 측은 그들이 2014년에 미국의 지원을 받아 우크라이나의 합법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부를 전복한 유로마이단 식 쿠데타를 조지아에서 시도하려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 클라렌버그의 보도 내용이다.
조지아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는 서방의 언론이나 정치계급, 그리고 국내의 일부 언론이 주장하고 보도하는 것과는 다른 이면을 지니고 있다. 조지아 여당이 ‘외국 대리인법’을 통과시킨 것을 놓고 언론과 시민단체에 대한 러시아식 탄압으로 몰고 가는 것은 미국이나 EU 등의 제국주의 세력이나 내놓을 주장이다. 한국에서 만약 어떤 시민단체나 언론사가 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국내 정치, 사회 사안에 개입하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일본 정부의 돈이나 중국 정부의 돈을 받은 단체가 한국 정치에 개입한다면? 조지아의 여당이 통과시킨 법안을 놓고 무조건 친-러시아적이라든가 전제주의적이라고 보는 것은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면 무조건 사회주의, 독재, 전제주의로 매도하는 미국과 서방의 말만 옳은 것으로 보는 태도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제국주의가 원하는 대로 세계 정세를 파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왜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되어야 하는가?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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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는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중앙대학교 교수, '문화/과학' 발행인, '문화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참세상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서울의 생김새』, 『길의 역사』,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