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그러나 진행형인 구사대 폭력, 현대차 구사대와 경찰의 오래된 유착

비정규직의 삶은 계엄 이전에도 이후에도 계엄 상태였다. 이 말은 그저 상징적 말이 아니었다. 불법적이고 반인권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했던 윤석열 씨가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에서 탄핵된 지 2주만에 현대 재벌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4월 18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구사대들(노동운동을 방해하거나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하여 회사 측에서 동원한 조직이나 집단)에게 속절없이 맞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들은 현대차 보안운영팀 직원이다. 그들이 대낮에 과감하게 폭력을 휘두른 대상은 현대차 하청업체인 이수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2024년 10월 1일 자로 해고당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요구는  2003년 이후 현대차와 정규직노조와 맺은 ‘협약서’에 따라 고용승계하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협력업체가 폐업하더라도 소속 노동자의 근속을 인정하고 고용을 승계해왔다.

구사대 폭력의 불법성

그날 폭력을 당한 사람들은 이수기업 해고자들만이 아니었다. 연대 온 시민들도 머리가 잡히고 바닥에 깔렸다. 응급차에 실려간 중부상자가 20명이나 됐다. 울산 현대공화국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천막설치 중 구사대가 난입해 폭력을 휘두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3월 14일에도 현대차 울산공장 옆 인도에 천막을 설치하려 하자 구사대들이 폭력을 휘둘렀다. 집회신고한 자리에, 집회 중에 구사대가 난입해 천막을 부수고 빼앗아 달아나는 것은 명백한 폭력이며, 불법행위다. 설사 천막 설치가 집회신고된 물품이 아닐지라도 민간인이 집회 참가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는 없다. 천막 철거도 경찰의 권한이 아니라, 경찰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을 민간인인 구사대가 행한 것은 사적 폭력이다.

그 범죄행위의 현장에는 경찰이 있었으나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3월에 이미 한번의 구사대 폭력이 있었고, 4월에는 500여 명의 구사대가 사전 준비를 하는 것을 목격하고도 경찰은 어떤 예방조치도 하지 않았다. 

민간인인 구사대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3조의 집회방해 행위이며, 폭력행위에 관한 처벌법에 따른 범죄다. 눈앞에 폭력이 행사되고 있었으므로 현행범 체포 요건에 해당되었으나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오히려 수백 명의 구사대들이 집회에 난입하는 현장에서도 경찰의 채증카메라는 구사대가 아니라 집회 참가자들을 향했다. 경찰의 방조로 구사대 폭력은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구사대는 앰프 방향을 바꾸라며 시비를 걸고, 퇴근 선전전을 하는 현수막을 빼앗으려 하는 등 노골적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외려 경찰은 현수막을 들고 선 위치가 집회신고 범위를 조금 넘어섰다며 구사대 편을 들고, 구사대 폭력에 항의하는 집회 참여자를 연행했다.

구사대들이 천막 위로 돌진하며 천막을 붙잡고 있던 집회참가자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상황을 경찰은 멀찍이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다. 빨간색 원 안이 경찰이 있는 위치다. (영상 캡처, 출처: 이수기업 해고노동자 안미숙)

경찰의 폭력 방조의 의미, 연대를 차단하라

구사대는 3월과 달리 연대자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3월에는 노조 조끼를 입은 사람들에게만 폭력을 한정했다면 4월에는 그렇지 않았다. 노조 조끼도 입지 않고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여성/퀴어들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내던지기까지 했다. 윤석열 퇴진 광장 이후, 시민들이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노동현장에도 연대를 이어가는 현실에서 연대의 확산을 막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찰은 오히려 선전전을 방해한 구사대가 아니라 집회 참가자들을 연행하려 했다. 부당한 공무집행을 막으려 사람들이 연좌하자 경찰이 참가자들에게 물리력을 행사했다. 경찰 기동대는 경찰차와 집회 참가자들 사이의 비좁은 틈을 막무가내로 파고들었다. 연좌한 사람들을 밟을 수 있는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결국 경찰은 공무집행 방해라며 연대자의 몸을 누르고 수갑까지 채웠다. 과잉 진압으로 해당 참가자는 왼쪽 손목 찰과상과 등, 옆구리 등 신체 곳곳에 멍이 들었다. 

또한 집시법 3조에는 집회방해 행위에 대해 경찰에게 협조요청을 하면 응해야 한다고 되어 있으나 경찰은 이를 거부했다.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가 방해받을 염려가 있다고 인정되면 관할 경찰관서에 그 사실을 알려 보호를 요청할 수 있고, 이 경우 관할 경찰관서의 장은 정당한 사유 없이 보호 요청을 거절하여서는 아니 된다’(3조 제3항)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특히 ‘군인·검사 또는 경찰관이 제3조 제1항 또는 제2항을 위반한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제22조)고 규정되어 있다. 경찰과 같은 법 집행 공무원의 집회방해 행위를 더 엄중하게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울산 현대차 앞에서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4월 폭력을 행사한 구사대나 경찰의 행동의 의미는 분명하다. 연대를 차단하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집회의 권리나 저항권은 바탕은 연대를 상정하고 있다. 인권을 침해하는 권력에 맞서 모이고 행동할 권리는 연대할 권리를 상정한 것이다. 부당한 재벌 권력과 공권력에 맞서는 힘은 민중들이, 사회적 소수자들이 엮이고 모일 때 강해지므로 이를 차단하려 한 것이다. 

경찰의 이러한 행태는 부상자에 대한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구사대에게 내던저져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에 간 시민에게 경찰은 “‘넌 누구냐? 넌 어느 소속이냐?”만을 물었다. 왜 다쳤는지, 어떻게 다쳤는지 사건의 경위는 전혀 묻지 않았다. 구사대 폭력을 조사, 수사할 의지는 없고, 소속을 파악해 연대를 차단하는데 사용하고자 한 것이다.

나중에 온 경찰들이 사진채증을 하고 있는 모습. 방향이 구사대가 아니라 집회대오를 향하고 있음. 사진: 변주현

오래된 유착, 구사대와 경찰

현대차의 비정규직에 대한 폭력은 20년이 넘는 역사가 있다. 정규직이 공장 내에서 집회를 할 때는 가만히 있지만, 비정규직에게는 폭력을 행사한다. 심지어 구사대가 납치하듯 차에 실어 공장 밖 먼 곳에 내버리기도 했다. 구사대 폭력이 이렇게 오래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공권력의 묵인과 공조라는 유착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2004년 발간된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내 사내하청노동조합에 대한 사찰 조사보고서에서도 나타난다. 사내하청지회의 사무국장과 회계감사가 구사대에게  구타당한 후 정문에서 대기 중인 경찰에 넘겨진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오래된 폭력과 유착은 피해자들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구사대 폭력에 대해 무뎌지게 했다. 구사대에게 맞고 사찰당해도 이를 신고할 생각조차 못하게 만들었다. 경찰이 신고해도 회사 편이라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악순환되어 구사대의 사적 폭력을 강화하고, 일선 경찰들의 최소한의 법적 판단이나 윤리적 감각조차 사라지게 했다. 이제 울산의 경찰은 노동자 집회는 무조건 범죄로 보고 채증카메라를 들이대고 구사대 폭력은 눈으로 보아도 꿈쩍하지 않게 만들었다. 출구 없는 구사대 폭력의 확대재생산 구조는 방조하는 경찰이 있어 가능했다.  

그러하기에 이번 현대차 울산공장의 구사대 폭력에 대한 진상조사에서 경찰의 방조 행위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며, 처벌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오래된 폭력의 뿌리를 끊어낼 수 있다. 

또한 구사대 폭력을 행사한 현대차에 대한 고용노동청의 특별근로감독이 필요하다. 현대차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진짜 사장이다. 현대차가 구사대를 동원해 합법적인 집회 현장을 폭력으로 얼룩지게 하고, 일상적으로 노조 활동을 감시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파괴하는 명백한 ‘지배·개입’이기 때문이다(노조법 제81조 제4호 위반). 또한 폭력 행사 그 자체가 부당노동행위이다(노조법 제81조 제5호). 

이수기업 노동자에 대한 구사대 폭력 행사를 제대로 조사하고 처벌하는 것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 집회 시위의 권리를 보장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우리가 경찰과 고용노동부의 행보를 지켜봐야 할 이유다. 

덧붙이는 말

명숙은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로, 현대자동차 구사대 이수기업 폭력사건 진상조사단에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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