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어산지는 자유로워졌지만, 정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2024년 6월 24일, 줄리안 어산지(Julian Assange, 위키리스크 설립자)는 런던의 벨마쉬 교도소를 떠나 북마리아나 제도의 사이판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다음 날 미국 영토에 도착한 어산지는 연방 법원으로 이송되었다. 법정에서 어산지는 간첩법 위반 음모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어산지는 자신의 범죄를 설명하라는 판사의 요청에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정보를 공개하기 위해, 취재원에게 기밀 정보 제공을 독려했다. 나는 수정헌법 제1조가 그러한 활동을 보호한다고 믿는다. 수정헌법 제1조와 간첩법이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승소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라고 말했다.

양형 합의의 일환으로 어산지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선고 도중 미국 지방법원 수석 판사 라모나 맹글로나는 "정부는 개인 피해자가 없다고 밝혔다. 이는 이 정보의 유포로 인해 알려진 신체적 상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판사는 어산지를 석방하면서, 다음 주가 그의의 생일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생일 축하를 미리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산지는 세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정치범 중 한 명으로 법원에 들어섰다. 그는 십여년 만에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어산지의 석방이 축하할 일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어산지는 미국의 전쟁 범죄를 폭로한 저널리스트다. 이 일로 인해 그는 미국 정부로부터 악랄하고 끈질긴 박해를 받아왔다. 그러나 어산지가 얻은 자유는 씁쓸한 승리다. 미국 정부는 마지막까지 기본적인 저널리즘이 간첩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형량 협상이 법적 선례가 되지는 못했지만 어산지가 치른 가혹한 대가는 저널리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출처: Unsplash, Markus Spiske

전쟁에 맞선 진실

사이판 법원에서 미국 본토로의 출국을 거부한 어산지의 탄원은 우여곡절로 가득 찬 기나긴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2006년 어산지는 위키리크스(WikiLeaks) 설립을 도왔다. 이 혁신적인 뉴스 매체는 내부 고발자들이 익명으로 1차 자료 문서를 언론에 넘길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했다. 오늘날 위키리크스의 기술은 전 세계 뉴스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당시에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당연히 위키리크스는 기밀이 폭로된 정부 및 기업들과 빠르게 적대 관계가 되었다. 내부 고발자 첼시 매닝이 미국 정부의 기밀 자료를 위키리크스에 넘기면서 사태는 극적으로 확대되었다. 매닝은 미 육군 사병으로, 중동 전쟁에서 자행된 미국의 폭력에 불안감을 느꼈다. 대중은 알 권리가 있고 전쟁에 대한 진실이 의미 있는 공개 토론을 촉발할 수 있다고 믿은 매닝은, 국가의 범죄와 권력 남용을 자세히 설명하는 비밀 파일을 위키리크스에 넘겼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위키리크스는 세계 유수의 주류 언론사를 포함한 전 세계 다양한 언론 파트너와 협력하여 매닝의 폭로에 기반한 획기적인 기사를 게재했다. 어산지의 주류 언론 파트너들은 이러한 기사를 게재하기 위해 위키리크스가 필요했지만, 빠르게 어산지에게 등을 돌렸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열광의 대부분은 이라크 전쟁의 준비 기간 동안 벌어진 기존 언론의 완전한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시 많은 언론인들은, 침략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 정부의 속기사 역할을 의도적으로 수행했다. 

반면 위키리크스는 저널리즘을 확고하게 자리 잡은 권력에 도전하는 도구로 여겼다. 어산지는 반전 운동가들에게 "전쟁이 거짓으로 시작될 수 있다면 평화는 진실로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어산지의 저널리즘에 대한 관점은 I. F. 스톤과 같은 인물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따르면서, 종종 국가 안보 기관에 도전하기보다는 그 기관에 아부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것럼 보였던 기존 미디어 업계와는 날카로운 갈등을 겪었다. 

언론의 뒤통수 치기는 위키리크스가 겪는 문제 중 가장 작은 것이었다. 미국 제국에 맞서 그 비밀을 폭로하기로 한 결정은 미국 정부의 극적인 보복성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매닝은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전례 없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어산지는 자신이 다음 차례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에콰도르에 망명을 신청했다. 어산지는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는 그곳에서 7년간 살았다. 영국 경찰은 성추행에 대한 스웨덴의 수사가 범죄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점, 백악관의 요청에 따른 영국의 보석 기피 혐의 등 여러 법적 구실을 내세워 대사관을 포위하고, 어산지가 밖으로 나오면 체포하겠다고 위협했다.

'유엔 임의 구금 실무그룹'은 이러한 조치가 어산지의 자유를 자의적이고 불법적으로 박탈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고문 및 기타 잔인하고 비인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 또는 처벌에 관한 유엔 특별보고관은 어산지가 심리적 고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후 위키리크스가 CIA의 비밀 해킹 도구를 공개한 후 CIA가 어산지를 납치하고 암살까지 고려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어산지와 그의 변호사, 의사, 그를 면회한 기자들에 대한 CIA의 감시 범위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으며, 이는 미국 소송과 스페인 형사 수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내부 고발자를 무자비하게 기소했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어산지와 같은 발행인들을 기소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일이라고 판단했다. 어산지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 아니라 위키리크스 발행인을 기소하면 뉴욕타임스 같은 주류 언론사를 기소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방침을 바꿔 어산지에 대한 기소를 잇달아 제기했다. 런던 경찰은 에콰도르 대사관에 들어가 어산지를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 후 어산지는 가혹한 최고 보안 교도소인 벨마시 교도소에 5년 넘게 수감되었다.

모든 혐의는 매닝 폭로를 보도한 그의 작업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은 전쟁 범죄를 폭로하고 인권 침해를 조사하는 저널리즘의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는 시민의 자유, 언론의 자유, 인권과 관련된 단체와 위키리크스와 협력한 언론사들이 일제히 비난하는 충격적인 기소였다.

저널리즘에 대한 음모

어산지는 결국 18개 혐의로 기소되어 최대 17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게 된다. 이 중 17개 혐의는 간첩법에 따라 기소되었으며, 나머지 혐의는 컴퓨터 사기 및 남용법 위반 공모 혐의이다.

어산지에 대해 제기된 세 가지 혐의는 전례 없이 순수 출판에 대한 것이었다. 즉, 문제의 범죄는 위키리크스 웹사이트에 정보를 게시한 것에 불과했다. 어산지는 국방 정보를 공개했다는 혐의 외에도, 애초에 정보를 받았다는 이유로 간첩법에 따라 네 가지 혐의를 받았다. 물론 언론인은 취재원으로부터 정보를 받지 않고는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

어산지는 또한 매닝과 공모하여, 군사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두 가지 법률인 간첩법 및 컴퓨터 사기 및 남용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고 있다. 나머지 혐의는 모두 어산지가 매닝을 방조했다고 주장함으로써, 매닝이 어산지에게 문서를 제공함으로써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어산지에게 부과하고자 하는 것이다. 언론에 정보를 제공한 내부 고발자를 기소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며, 내부 고발자가 정보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언론인을 기소하는 것은 카프카적(부조리하고 암울한)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비판자 중 한 명을 투옥하려는 미국 정부의 노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어산지가 매닝을 도왔다는 주장에 집착한다. 그들은 이 기소가 단순한 저널리즘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로 이를 인용한다. 특히 미국 정부는 매닝이 어산지에게 비밀 문서에 접근할 때 자신의 흔적을 감출 수 있도록 '암호 해시'를 해독하는 데 도움을 요청했다는 주장에 주목하고 있다. 이 주장은 아직 입증되지 않았으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2월 범죄인 인도 청문회에서 미국 정부를 대리한 영국 변호사들은 암호 해시에 대해 몇 마디만 늘어놓았다. 대신 어산지가 내부 고발자의 정보를 공개하는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킹을 의뢰하고 국방 정보를 '훔치도록' 권유했다는 것이 미국 측 주장의 요지였다. 어산지에 대한 모든 혐의와 마찬가지로 음모 및 방조 혐의는 저널리즘을 범죄화하려는 미국 정부의 시도였다.

결국 어산지는 간첩법 음모 조항을 위반한 혐의 한 가지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정부가 범죄에 대해 설명하는 '범죄 정보'에는 해킹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대신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 매닝과 어산지가 함께 범죄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했다. 그 음모의 일환으로 그들은 간첩법의 세 가지 조항을 위반했다. 범죄 행위는 다음과 같다: 국방 정보를 합법적으로 소지하고 있던 매닝이 이를 받을 권한이 없는 어산지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 국방 정보를 무단으로 소지하고 있던 매닝이 이를 받을 권한이 없는 어산지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 어산지가 매닝으로부터 국방 정보를 받은 것이다. 요컨대, 내부 고발자가 권력 남용에 관한 정보를 언론인에게 제공했고 언론인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를 '국방 정보 입수 및 공개 음모'라고 부르지만,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장전된 총

어산지는 형량 협상을 하면서 법적 선례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무자비하게 어산지를 파멸시키려 하고 저널리즘이 간첩법에 따른 범죄라고 주장함으로써 냉혹한 정치적 선례를 남겼다.

위키리크스는 매닝의 폭로만 공개한 것이 아니다. 한동안은 기업이든 정부든 대중을 착취하고 비밀 뒤에 숨으려 하면 위키리크스가 폭로해버릴 것만 같았다. 미국 정부가 그토록 악랄하게 막으려 했던 것은 바로 이 급진적인 투명성 실험이었다.

매닝의 내부 고발과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의 저널리즘 덕분에 세상은 더 나은 곳이 되었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관련자들을 파멸시키려는 미국 정부의 결정으로 인해 세상은 더 나쁜 곳이 되었다.

어산지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어산지가 이 시련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는 축하할 만한 놀라운 승리다. 그러나 간첩법은 여전히 언론인, 내부 고발자, 대중의 알 권리를 향해 장전된 총으로 남아 있다. 결국 (어산지를) 놓아 주더라도, 보안 국가는 그 총을 발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제 그들을 완전히 무장 해제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출처] Julian Assange Is Free, but Justice Has Not Been Served

[번역] 참세상 번역팀 

덧붙이는 말

칩 기븐스(Chip Gibbons)는 비영리 변호단체인 Defending Rights & Dissent의 정책 책임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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