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다시 김충현... 왜 노동자의 참담한 죽음은 반복되는가

태안화력 사망사고 대책위 1차 조사 결과 발표

왜 노동자의 참담한 죽음은 반복되는가. 2018년 12월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었던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지난 6월 2일 또 다른 하청 노동자 김충현 씨가 기계에 몸이 빨려 들어가 숨을 거뒀다. 6년 반 만에 거듭된 비극은 우연이 아니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고인의 죽음에 대한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책위 상황실장인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새움터 대표의 발표에 따르면 고인의 죽음은 사고 현장의 직접적·관리적 원인과 함께 발전 산업의 구조적 원인이 중첩된 결과였다. 

대책위 1차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최진일 상황실장. 참세상 

직접적 원인: 부절적한 장비, 안전장치의 부재 

충현 씨는 '선반'이라는 공작기계로 발전소에 필요한 정비 부품 등을 가공해 만들어내는 일을 했다. 선반은 한쪽에는 가공할 공작물을 고정해 장착하는 회전축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공작물을 깎아낼 수 있는 절삭도구가 설치된 기계다. 

사고 당시, 고인은 '범용선반'으로 발전소 터빈 관련 정비용 특수공구인 'CVP 벤트 밸브핸들'을 만들기 위해 타원형 금속 막대를 가공하려 했다. 고인은 선반의 왼쪽 회전축에 막대를 고정하고 기계를 가동한 직후, 왼손부터 순식간에 회전체에 빨려 들어갔다. 

고 김충현 노동자가 작업 중 사고를 당한 범용선반. 대책위 제공

고인이 작업한 것과 같은 불규칙한 형태의 공작물을 작업할 때는, 고정 부위 4개를 공작물에 맞게 각각 조절할 수 있는 '4본 단동척'을 가진 선반 기계가 적합하지만, 충현 씨가 사용했던 선반은 그보다 고정력이 약한 '3본 연동척'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대책위는 이 때문에 공작물이 회전축에 강하게 고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커다란 회전반경을 이루면서, 작업 중인 고인이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인이 사용한 범용선반에는 안전장치도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선반 작업은 안전보건공단이 제조업 사망사고 10대 작업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위험한 작업이다. 이에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87조는 범용선반에 회전축이나 절삭도구 부분을 덮는 방호덮개 혹은 방호울 등을 설치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충현 씨가 사용한 범용선반에는 방진 목적의 덮개 말고는 노동자의 안전을 보호할 실질적인 안전장치가 없었다.

선반의 왼쪽 상단과 중간부에 기계를 멈출 수 있는 비상정지버튼이 설치되어 있고, 오른쪽 하단부에도 풋브레이크가 있었지만, 홀로 일하다 1분에 780번을 돌아가는 회전축에 몸 왼편부터 빨려 들어간 고인이 직접 버튼을 누를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관리적 원인: 절차 무시하고 떠넘겨진 원청 업무, 감독 없이 홀로 

고 김충현 씨는 태안화력 10호기 정비에 필요한 공작물을 가공하다 사고를 당했다. 10호기는 당시 오버홀(전면 정비) 공사 중이었으며 해당 업무는 한전KPS의 책임 영역이었다. 그럼에도 한전KPS는 하도급 업체 소속인 고인에게 해당 작업을 요청했고, 그는 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었다. 계약상 업무 범위 외 작업이 하청 노동자들에게 일상적으로 떠넘겨진 정황은 대책위가 고인의 동료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확인한 다수 문서에서도 확인됐다. 고인은 한전KPS가 한국서부발전으로부터 위탁받은 정비 업무를 재하청받은 소규모 하도급업체 한국파워O&M소속이었다.

작업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다. 원하청의 계약과 발전소 업무 매뉴얼 등과 다르게, 현장에선 작업의뢰서 없이 원청의 구두 통보를 통한 작업 지시가 관행처럼 반복됐다. 관리감독도 이뤄지지 않았다. 김충현 씨는 조직도상 한국파워O&M 1과에 속해 있었지만, 1과장은 공작작업에 대한 이해나 실질적 지휘 권한이 없어, 선반 담당으로 홀로 공작실에 배치된 고인의 업무에 대해 사실상 관여하지 않았다.

관리감독의 역할을 해야 할 현장 소장 역시 선반 기계를 비롯해 관련 작업 전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공작실 운영과 작업 방식은 김 씨가 홀로 판단해 수행해야했고,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할 관리감독자가 없는 구조였다”. 

고인이 작성한 사고 당일(6월 2일, 왼쪽)과 5월 7일(오른쪽) TBM 문서. 대책위 제공

작업 전 동료들과 함께 작업내용과 위험요인을 파악하는 TBM 절차도 형식적이었다. 김 씨는 회의 없이 혼자 TBM 문서를 작성했고, 복사된 유해위험요인 목록에 작업일시와 작업내용만 덧붙여 사용하는 방식이 반복됐다. 서부발전, 한전KPS, 하청 관리자의 서명이 있었지만, 이는 실질적인 위험 논의 없이 이뤄진 형식적 절차였다.

구조적 원인: 아래로, 더 아래로 흐르는 위험의 외주화

대책위는 이번 사고가 단순한 관리 부실이 아니라, 위험은 외주화하고 책임은 분산되는 구조에서 반복된 참사라고 지적했다. 사고 직후 한전KPS는 “작업오더에 포함되지 않은 작업이었다”며 마치 재해자가 임의로 작업을 수행한 것처럼 해명했다.

그러나 대책위는, 선반 가공 작업은 통상적으로 ‘기계가공 작업의뢰서’ 또는 약식으로 ‘작업의뢰서 접수대장’에 기록된 후 수행되어 왔고, 해당 작업 역시 당일자 TBM 문서를 통해 공식 작업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동료들 또한 “작업의뢰서가 없어도 접수대장에는 반드시 기재한 후 작업을 시작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대책위에 따르면 사고 이후 현장에 비치돼 있던 접수대장은 경찰에 의해 수사증거물로 회수되었으며, 그 직후 한전KPS가 ‘작업오더가 없었다’는 입장을 언론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는 “단독작업을 수행하는 재해자가 아무런 작업기록 없이 임의로 작업을 했다는 해명은 현실과 맞지 않으며, 책임 회피성 주장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대응은 고 김용균 노동자 사망 사고 당시 재해자 과실론으로 원청의 책임을 모면하려 했던 한국서부발전의 설명을 연상시킨다.

김용균 사망사고 이후 출범한 김용균 특조위는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1차 하청을 넘어 2차, 3차 하청으로 갈수록 안전시스템의 작동이 약화되는 구조적 한계를 이미 경고한 바 있다. 당시 특조위 간사였던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는 이날 간담회에서 이번 사고에 대해 “경상정비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 안전관리감독 인력 충원 등 특조위의 권고가 이행되었다면, 이와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 짚고는 "중층적 하청 구조 속에서 거듭되는 죽음들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이제라도 특조위의 권고 사항 등을 정부가 이행하고,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서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명시된 원청의 책임을 명확하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명의 "새로운 대한민국", 고인의 죽음에 책임 다할 수 있을까 

이에 대책위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화, 현장 인력 확충 및 안전대책, 발전소 폐쇄 관련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고 김충현 노동자의 유족들도  원·하청 모두가 이번 사고 원인이 고인의 잘못이 아님을 밝히고 진심으로 사과할 것과 함께,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 유족에 대한 정당한 배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대책위는 이러한 요구들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힘을 모아갈 계획이다. 오는 6일에는 오후 3시 서울역 12번 출구에서 추모문화제를 진행하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요구안을 전달하려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행진을 이어간다.

대선 전날 목숨을 잃은 고 김충현 씨의 업무 책상에는 '이재명과 기본소득'이라는 책이 놓여 있었다. 김충현 씨는 지난 12월 윤석열 퇴진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광장 집회에도 함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바라던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이야기해온 "새로운 대한민국"은 충현 씨의 죽음 앞에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 

고인의 업무 책상에 놓인 책 '이재명과 기본소득', 사고 다음날인 6월 3일 촬영. 대책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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