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의료 공공성 강화를 위한 무기한 전면 파업을 이틀째 이어가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본교섭에 참석하기로 한 김영태 서울대병원장은 교섭 1시간 전 노동조합에 일방적으로 교섭 거부를 통보한 후 잠적해 버렸다고 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이하 ‘서울대병원분회’) 소속 노동자들은 지난 24일부터 “의료공공성 강화, 환자 안전 위한 인력 충원 및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서울대병원분회에 따르면 지난 17일 국립대 병원 네 곳이 함께하는 1차 공동 경고 파업과, 24일 무기한 전편파업 돌입에도 불구하고, 병원 측은 교섭에서 현장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에 대해 제대로 된 수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노동조합이 파업 전부터 요구했던 병원장의 교섭 참여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으로, 분회는 병원장과 경영진의 현장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때까지 파업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병원 현장 노동자들의 핵심 요구 사항은 △환자 안전과 직결된 필수 인력 충원 △72단계 호봉제 등 불합리한 임금체계 개편 △공공병원 역할 강화와 새로운 총괄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국립대병원 주무부처의 보건복지부 이관 동참 등이다.
서울대병원분회에는 서울대병원과 서울보라매병원에서 일하는 현장 노동자 3,500여 명이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무기한 전면 파업을 이틀째 이어가고 있는 서울대병원 노동자들, 참세상
25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시계탑 앞에 모인 1천여 명의 노동자들은 2일 차 파업 개회식을 열고, 서울대병원이 현장 노동자들의 절실한 요구들을 수용할 때까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결의를 모았다.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은 오전 서울대병원분회가 주최한 2일 차 파업 개회식을 마치고, 오후 2시에는 의료연대본부가 주최하는 “파업 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이어간다. 이날 오후 3시에는 서울대병원장이 참석을 예고한 본교섭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서울대병원분회에 따르면 김영태 병원장은 교섭 1시간 전 노동조합에 교섭 거부를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잠적했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교섭 현장 주변을 지키면서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서울대병원 측이 25일 오후 3시로 예정된 본교섭을 1시간여 앞두고 보내온 본교섭 거부 통보 공문. 의료연대본부 제공
이날 오전 2일 차 파업 개회식에서, 보라매병원의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에서 일하는 7년 차 간호사 홍소의 씨는 “보호자 없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은, 환자들은 깨끗하게 치료받고 보호자들은 월 300만 원의 간병비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제도”라며 “그러나 그 안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무너져 가고 있다”, “간호사들은 밥도 굶은 채 환자의 식사량을 기록하고, 화장실 한 번 못 가고 환자의 소변량을 확인하며, 조무사님들은 감당할 수 없는 기저귀 환자를 돌보면서도 늘 따뜻하게 환자들의 손을 잡고 있다”, “운영기능직 선생님들은 소화기내과 특성상 수혈과 항암, 잦은 입퇴원 속에서 지쳐가면서도 미소로 버텨내고 있다”고 열악한 노동 현실을 짚었다.
홍소의 간호사는 “병원은 전공의의 수련 환경은 챙기면서 왜 그 곁을 지키는 우리의 손을 놓아버리는가”라고 일갈하고, “삼성도 세브란스도 받지 않는 행려, 알코올 독거 환자들을 우리는 차별 없이 모두 받아왔고, 공공병원, 시립병원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으나 언제까지 이대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파업 전날 퇴사 면담을 한 10개월 차 간호사 동료에게 “붙잡는 것도, 고생했다는 말조차 미안했다”고 이야기했다. 홍 간호사는 “그래서 우리는 이 자리에 나왔다”면서 “지금 환자 곁에만 있으면 공공병원도 환자 안전도 사랑하는 후배들도 지킬 수 없다”, “김영태 병원장은 지금 당장 결단해야 한다”, “인력 충원으로 우리가 환자 곁에 더 머물 수 있도록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 소리 높여 촉구했다.
보라매병원 영상의학과에서 일하는 서울대병원분회 최민호 대의원은 서울대병원이 자랑하는 72단계 임금체계는 “평생을 다 바쳐 일해도 끝까지 오를 수 없고 애초에 오르라고 만든 것이 아닌 희망 없는 임금체계”라면서 “우리의 요구는 단순히 임금을 조금 더 받자는 것이 아니라” 병원 노동자들이 존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해, “환자의 생명과 국민의 안전을 지켜내려는 절박한 외침”이라고 이야기했다.
최민호 대의원은 “응급실, 수술실, 병동에서 환자 안전을 지키려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안전한 근무 환경이 곧 환자 안전”이라며 인력 충원의 필요성도 강조하고, “노동자와 환자, 국민 모두를 위한 정의로운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더 단호하게 싸워갈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 현장 노동자들이 마주한 열악한 현실을 전하고 있는 홍소희 간호사(가운데). 참세상
시민사회도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사회적 파업'을 지지하며 연대에 나섰다.
김진억 ‘너머 서울’ 상임대표이자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은 “서울대병원은 특별법에 의해서 설치·운영되는 국가중앙병원으로, 서울대병원장도 대통령이 임명할 만큼 사회적·공공적 책임과 역할이 크다”고 강조하고, 이번 파업은 서울대병원이 “필수의료·공공의료를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책임있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해 한국사회 의료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이라고 짚었다. “(병원 현장 노동자들이) 행복하고 존중받아야 환자와 시민들의 건강을 지키고 살피고 제대로 그 역할 수 있다”면서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 요구가 시민의 안전과 건강과도 연결된 사회적 과제라는 점도 강조했다.
김진억 본부장은 “우리 노동사회시민단체들은 여러분의 요구를 지지하고, 여러분의 투쟁과 함께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요구로 우리 모두의 투쟁으로 함께하고자 한다”고 다짐을 밝히면서 발언을 마무리했다.
서울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체인 '너머 서울' 등 30여 개 단체들은 파업 첫날인 24일 오전, 서울대병원 파업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 건강권을 수호하고 국가중앙병원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자 전면 파업에 나선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김영태 병원장은 공공병원장의 책임을 망각한 궤변과 아집을 내려놓고, 노동자와 환자들의 정당하고 절실한 요구에 응답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들은 오는 29일에도 파업 지지 기자회견을 계획하고 함께할 수 있는 단체들을 모집 중이다.
연대발언에 나선 이서영 좋은공공병원만들기 운동본부 사무국장. 참세상
이서영 좋은공공병원만들기 운동본부 사무국장은 “한국의 무한 경쟁 시장 의료는 많은 사람들을 탈락시키고,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면 혹은 서비스를 위한 돈을 지불하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하고,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같은 현실에 맞선 사회적 파업이라는 점을 짚었다.
이서영 사무국장은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서울대병원이 복지부로 이관을 수용하고 공공의료 총괄 의료기관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 △지금처럼 서울대병원이 민간 대형병원들처럼 브랜드 경쟁 따위를 할 것이 아니라 공공성을 강화할 것 △어린이들이 돈 걱정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어린이 무상의료를 실현할 것 △이윤을 위해 노동자 임금을 더 이상 쥐어짜지 말고 환자가 최선의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인력을 충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같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와 투쟁의 힘으로,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등 공공의료 인프라를 그나마 지켜올 수 있다고 환기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 경영진은 의사 성과급제와 72단계 임금체계를 유지하고, 인력 충원 요구와 무상의료 요구를 거부”하면서 “돌봄이 아니라 경쟁과 불평등으로 환자, 노동자들을 더욱 소외시키는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병원장이 병원 노동자들의 요구를 받을 때까지 함께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힘 주어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