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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는 뉴델리에서 인도 농민들에게 “수출 지향 작물(export-oriented crops)”을 더 많이 재배하라고 권했다. 이는 곧 인도 농민들이 식량 작물 재배에서 물러서고, 인도가 식량을 수입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는 세계은행(World Bank)과 그 입장을 그대로 반복하는 인도 내 경제학자들, 그리고 오랫동안 이런 방향을 요구해온 제국주의 국가들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조언이다.
미국을 예로 들면, 농민들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해 농업 총생산의 절반에 달할 만큼을 지원하는 해도 있을 정도로 보조금 규모가 크다. 그 결과 미국 농민들은 과잉 식량을 생산하게 되고, 이를 인도와 같은 국가에 떠넘겨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인도 같은 국가들이 식량 작물에서 손을 떼고, 자신들이 필요로 하지만 직접 생산하지 못하는 수출 작물을 대신 재배해 주기를 바란다. 모디 총리의 조언은 이러한 제국주의 요구에 철저히 부합한다.
모디 정부가 도입하려다 농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한 악명 높은 3대 농업법도 바로 이러한 농지 전환을 강요하려던 시도였다. 과거에는 정부가 정한 최소보장가격(MSP) 제도가 식량 작물과 일부 현금 작물에 적용됐지만, 점차 현금 작물에는 폐지되고 식량 작물에만 유지되었다. 정부는 이 MSP 제도를 식량 작물에서도 철폐하려 했고, 이는 식량 작물의 수익성을 낮춰 농민들이 현금 작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은 1년 넘게 장기 투쟁을 벌였고, 결국 정부는 식량 작물에 대한 MSP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는 제국주의 세력과 모디 정부 모두에게는 큰 좌절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의제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모디 총리가 최근 다시 수출 작물 재배를 촉구한 것은 그 지속적인 집착을 보여준다.
농민 투쟁 당시, 정부 관료들과 세계은행 노선을 따르는 경제학자들은 식량 작물에서 현금 작물로의 전환이 오히려 농민에게 이득이며, MSP 제도가 그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현실을 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미 현금 작물에서 MSP가 철폐된 상태에서, 농민들은 세계 시장 가격의 극심한 변동성에 그대로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현금 작물은 가격이 급락하는 일이 빈번하고, 생산에는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격이 폭락한 해에는 대출금을 갚지 못한 농민들이 자살에 내몰렸다. 지난 30년간 40만 명이 넘는 농민들이 자살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현금 작물을 재배하던 농민들이었다.
정부가 식량 작물에서도 MSP를 철폐하려 하자, 농민들은 즉각 반대하고 거리로 나섰다. 그것이 마지막 보호막이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총리나 경제학자들보다 더 뚜렷하게, MSP 제도가 사라질 경우 자신들에게 어떤 미래가 닥칠지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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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농지 전환에는 또 다른 위험이 있다. 가격 폭락으로 인한 채무불이행 외에도, 국가 전체와 농민들의 식량 안보 붕괴라는 더 큰 위험이다. 이는 실제로 기근(famines)이라는 형태로 드러나기도 했다.
특히 세계화 체제 아래에서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은 식량 작물에서 현금 작물로 농지를 전환했고, 그 결과 실제 기근을 겪었다. 경제학자 아미야 쿠마르 바그치(Amiya Kumar Bagchi)는 그의 저서 『위험한 여정(The Perilous Passage)』에서 이러한 현상을 ‘세계화 기근(globalisation famines)’이라 정확히 표현했다.
왜 이런 기근이 발생하는가?
한 국가가 현금 작물을 재배하고 식량은 수입할 경우, 그 나라가 수출하는 작물의 가격이 폭락하는 해에는 외화를 벌지 못하게 된다. 반면 식량 가격은 현금 작물보다 상대적으로 가격 변동이 적다. 그래서 식량 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지만, 수출 작물은 폭락할 수 있다. 결국 수입할 식량을 살 외화를 확보하지 못하고, 국민 1인당 식량 공급량이 줄어들어 기근 조건이 형성된다.
설사 어떤 방식으로든 외국의 ‘식량 원조(food aid)’ 등을 통해 식량을 수입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바로 현금 작물 가격이 폭락한 농민들은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식량이 들어와도, 시장에서 그것을 살 구매력이 없다면 기근은 발생한다. 따라서 단순한 식량 원조만으로는 부족하며, 정부가 식량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무상 배급을 해야 기근을 막을 수 있다.
또 다른 형태의 기근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것은 고용집약도가 낮은 현금 작물로 농지를 전환할 때 생긴다.
예를 들어, 식량 작물에서 과수 재배(예: 바나나, 망고) 같은 고용이 적게 드는 작물로 전환하면, 에이커당 고용 인원이 감소하게 된다. 그러면 실업자가 증가하고, 이들은 시장에서 식량을 살 돈이 없다. 이 경우에도 식량은 존재하지만, 구매력이 없는 기근 상태가 된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의 개념으로 보자면, 앞서 말한 외화 부족으로 인한 식량 부족은 식량 공급 감소(FAD, Food Availability Decline)이고, 지금 말한 고용 상실로 인한 구매력 부족은 교환 자격 실패(FEE, Failure of Exchange Entitlement)이다. 고용집약도가 낮은 작물로의 전환은 FEE를 일으키고, 외화 부족은 FAD를 일으킨다. 그리고 FAD는 거의 확실히 발생하고, FEE도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식량 작물에서 현금 작물로의 농지 전환, 특히 국내 식량 생산을 감소시키는 방향의 전환은,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아프리카 등 글로벌 사우스의 여러 지역에서 실제로 기근을 유발해 왔다.
인도는 지금까지 식량 작물을 고수함으로써 이런 재앙을 피할 수 있었지만, 만약 농민들이 모디 총리의 조언을 따른다면, 인도 역시 세계화 기근의 위험에 스스로 문을 여는 셈이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와는 별도로, 식량 수입 의존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미국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제 제재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쿠바, 이란, 러시아, 북한, 베네수엘라 등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의 일방적인 제재 대상이다.
제재는 단지 미국이 해당 국가와 거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까지도 그 나라와 거래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나라가 식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면, 미국 등의 제재는 즉각적인 인도적 재앙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미국이 해당 국가의 해외 외환 자산까지 동결한다면, 그 나라는 식량을 구입할 수단도 사라지고, 재앙은 더욱 심화된다.
오늘날 제국주의 국가들의 통치 엘리트들이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집단학살에 침묵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제국주의에 반기를 드는 나라에 대한 이 같은 재앙은 결코 이론이 아니다. 매우 현실적인 위험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무역을 노골적인 정치 무기로 사용하겠다고 공언한 이후, 식량 수입 의존은 정책 자율성을 잃는 가장 확실한 경로가 되었다. 오늘날 식량 수입 의존은 제국주의에 종속된 ‘클라이언트 국가’로 전락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따라서 인도의 총리가 농민들에게 식량 작물 대신, 대도시에서 수요가 있는 수출 작물을 재배하라고 조언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심각한 무지와, 제국주의 압력에 대한 취약성을 드러내는 일이며, 그 무책임함은 놀라울 정도이다.
[출처] Globalization Famines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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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