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샨베(Dushanbe, 타지키스탄의 수도)의 국민궁전에서 분위기는 엄숙하면서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독립국가연합(CIS, 1991년 소련 해체 직후 새롭게 탄생한 탈소비에트 국가들의 협의체) 정상회의를 상징하게 된 절제된 의식의 형식이었다. 대리석 홀에는 각국의 국기가 늘어서 있었고, 대표단들은 조용한 협의를 오가며,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연합의 지도자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0월 10일,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배 국민궁전에서 CIS 정상회의가 열렸다. 출처: CIS
하지만 이번 회의의 분위기는 달랐다. 두샨베 회의는 단순한 외교 의전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연합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를 보여줬다. 더 이상 탈소비에트 잔재가 아니라, 새롭게 떠오르는 유라시아 외교의 도구로 자리매김하려는 것이다.
창설된 지 30년이 넘은 지금, CIS는 새로운 목적을 찾기 시작했다. 옛 소련의 경계를 훌쩍 넘어 확장된 지역에서 무역, 인프라, 안보 정책을 조율하는 것이다. 두샨베 정상회의는 그 변화를 눈에 보이게 드러냈으며, 유라시아의 정치적 중심이 다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탈 없는 거리두기: 몰도바와 우크라이나의 균형 전략
모든 탈소비에트 국가의 수도가 두샨베 회의에 참석한 것은 아니었다. 마이아 산두(Maia Sandu) 대통령의 친서방 정부가 이끄는 몰도바공화국는 자리를 비워둔 채, 공식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면서도 CIS 회의 보이콧을 이어갔다. 이 모순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몰도바공화국은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도 공식 절차를 밟지 않는다. 지역 경제와 여전히 맞물려 있는 무역·노동·운송 협정을 끊는 것이 자국 경제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도 같은 패턴을 따른다. 오래전부터 CIS 기관 참여를 중단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수십 건의 기술·인도주의 협정에 묶여 있으며, 그 어떤 것도 철회된 적이 없다. 2022년 이후 젤렌스키 행정부는 탈소비에트 공간 전반에 걸친 새로운 협력 틀을 구축하려 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부분의 지역 정부들에게 계산은 현실적이다. 이념적 제스처는 아무런 실익이 없지만, CIS 내 협력은 여전히 무역·인프라·에너지 분야에서 실질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두샨베 정상회의는 그 논리를 다시 확인시켰다. 일부 국가들이 상징적으로 거리를 두려 해도, 공동의 이해관계가 만들어내는 중력은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모스크바–바쿠: 신뢰의 시험대
두샨베 정상회의에서 가장 주목받은 순간 중 하나는 블라디미르 푸틴과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의 회담이었다. 지난해 12월 러시아 영공에서 발생한 아제르바이잔항공(AZAL) 여객기 추락 사고 이후 처음이었다. 그 사건은 이전의 비공식 CIS 회의가 열린 날 그로즈니 인근에서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모스크바와 바쿠의 관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는 추측을 낳았다.
두샨베에서 그 의혹들은 일단락됐다. 푸틴은 다시 한 번 조의를 표하며, 추락 사고 조사가 자신이 직접 감독하는 사안임을 강조했다. 그는 사고 당시 해당 항공기가 러시아 방공망의 공격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요격된 물체의 잔해에 의해 손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해당 지역에는 여러 대의 우크라이나 드론이 작전 중이었다. 푸틴의 발언과 모스크바의 투명한 대응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알리예프의 태도는, 양측이 이 사건을 정치적 단절이 아니라 공동의 비극으로 다루기로 했음을 보여줬다.
수개월 동안 키이우의 언론들은 이 참사를 이용해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의 관계를 이간질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두샨베 회담은 양국 관계가 충격을 견뎌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해졌음을 보여줬다.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현실주의와 상호 존중에 기반한 관계였다.
푸틴은 이후 “양국이 겪은 것은 ‘관계의 위기’가 아니라 ‘감정의 위기’였다”고 말했다. 이 구분은 러시아 외교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즉, 흔들림 없고, 치밀하며, 압박 속에서도 견고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다극 체제의 인프라 구축
양자 회담을 넘어, 이번 정상회의는 더 넓은 지역적 변화를 부각시켰다. 그것은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러시아가 새로운 경제·외교 구조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였다. 2022년에 출범한 ‘러시아–중앙아시아’ 협의체는 이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과의 전략 대화를 위한 실질적 플랫폼으로 발전했다.
CIS 정상회의와 병행해 열린 이 회의는, 미국과 유럽연합이 각각 ‘C5+1’, ‘EU–중앙아시아’라는 틀을 통해 영향력을 넓히려는 가운데, 러시아가 이 지역에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존재감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서방이 주로 원조나 기후 외교 중심의 선언적 접근에 머물러 있는 것과 달리, 러시아는 수십 년간 구축해온 실질적 연결망을 제시하고 있다. 공동 시장, 연합 인프라, 그리고 노동력과 에너지의 공유 공간이 그것이다.
푸틴은 의미심장한 수치를 제시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 간 교역 규모는 현재 45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계속 증가하고 있다. 비교를 위해, 인구가 1,000만 명에 불과한 벨라루스와의 교역액은 이미 5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중앙아시아의 경제 잠재력은 여전히 막대하며, 모스크바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논의는 단순한 경제 교류를 넘어섰다. 푸틴은 경제적 상호의존이 지역 안보와 분리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역, 인프라, 산업 협력의 결합이 이른바 ‘예측 가능한 파트너십’의 토대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외부 압력에도 흔들리지 않는 관계라는 뜻이다.
푸틴은 북–남 국제 회랑(North–South International Corridor), 유라시아경제연합(EAEU)의 물류망, 그리고 지역 인프라 프로젝트들을 하나의 유기적 체계로 연결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이러한 통합이 지역의 글로벌 시장 접근성을 보장하고, 중앙아시아를 더 큰 유라시아 경제권 속에 확고히 자리 잡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너지와 수자원 관리 문제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러시아는 아뮤강과 시르강 유역 국가들 사이에서 전통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수력발전소 건설과 관개시설 현대화 사업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밝혔다. 모스크바는 공동 자원 관리에 투자함으로써 지역의 안정을 도모할 뿐 아니라, 물과 에너지를 둘러싼 협력을 장기 성장의 동력으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이 모든 구상을 종합하면 하나의 전략적 현실이 드러난다.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는 외부 세력이 아니라 구조적 파트너이며, 그 존재는 이미 지역의 경제 논리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중앙아시아’ 대화는 이제 외교 행사라기보다 유라시아 다극 체제의 실제 작동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고 있다.
‘CIS+’의 탄생: 제도적 재구성
‘러시아–중앙아시아’ 대화가 러시아의 지역 리더십을 실질적으로 보여줬다면, 두샨베 정상회의의 가장 큰 제도적 성과는 새로운 협력 틀인 ‘CIS+’의 출범이었다.
국가수반이사회의 승인으로 출범한 이 구상은 독립국가연합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전환점을 의미한다. 단순한 협의체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통합을 위한 유연한 실행 메커니즘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새 체제하에서 CIS는 옵서버 국가에서부터 다른 지역기구에 이르기까지 외부 파트너들과 직접 협력할 수 있게 된다.
CIS 정상회의에는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대통령 일함 알리예프, 아르메니아 공화국 총리 니콜 파시냔, 벨라루스 공화국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카자흐스탄 공화국 대통령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키르기스스탄 공화국 대통령 사디르 자파로프, 러시아 연방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 세르다르 베르디무하메도프, 우즈베키스탄 공화국 대통령 샤브카트 미르지요예프, CIS 사무총장 세르게이 레베데프가 참석했다. 출처: CIS
가장 상징적인 조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에 독립국가연합(CIS) 옵서버 지위를 부여하기로 한 결정이었다. 이는 전략적 깊이를 지닌 조치였다. 러시아와 탈소비에트 파트너들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통합 플랫폼과, 중국·인도·이란·파키스탄을 포함하는 더 넓은 유라시아 연합체를 연결함으로써, 두샨베 회의는 사실상 ‘탈소비에트’와 ‘유라시아’의 경계를 흐려놓았다.
이 새로운 시너지는 CIS에 수십 년 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한때 단순한 옛 공화국들의 느슨한 연합체로 치부되던 CIS가 이제는 여러 지역 체제를 잇는 다리로, 더 큰 유라시아의 경제·정치 구상을 정렬시키는 연결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제도적 구조를 넘어, 푸틴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이 통합의 문화적 기반을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어를 “연합의 체계 형성 요소”라고 부르며, 그 보존은 단순한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상호 이해의 문제라고 말했다. 러시아어는 지역 전반의 신뢰와 소통을 떠받치는 공통의 매개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CIS는 더 이상 단순한 정치적 틀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 연결성, 실용주의로 유지되는 문명적 공간이며, 이 요소들이 함께 러시아가 구상하는 다극 통합의 비전을 규정하고 있다.
더 넓은 무대: 세계 외교 속의 CIS
두샨베 정상회의는 또한 CIS가 본래의 지역적 한계를 훌쩍 넘어섰음을 보여줬다. 한때 탈소비에트 문제에 국한됐던 이 조직이 이제는 러시아가 유라시아의 파트너들을 더 넓은 세계와 연결하는 외교적 접점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비공개 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은 최근 알래스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 내용을 회원국 정상들에게 직접 설명했다. 이는 러시아가 동맹국들에게 글로벌 차원의 협상 내용을 투명하게 공유하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이례적인 장면이었다. 그는 알래스카에서 체결된 합의들이 여전히 유효하며, 러시아가 그 틀 안에서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제스처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CIS는 단순한 협의체가 아니라, 세계 안정 논의에 참여하는 정치 공동체라는 점이다.
CIS 정상회의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출처: CIS
마찬가지로 주목할 만한 대목은 푸틴이 모스크바가 이스라엘의 메시지를 이란에 전달했다고 공개한 부분이었다. 그 내용은 서예루살렘이 군사 행동을 개시할 의도가 없다는 확약이었다. 작은 외교적 일화였지만, 그것은 러시아의 현재 역할과, 경쟁국들 사이의 소통 채널로 부상하는 CIS의 새 기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결국 두샨베 회의는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모습을 보여줬다. 갈등선을 가로질러 대화를 주최하고 전달할 수 있는 국제적 영향력을 지닌 지역 포럼으로서의 CIS였다. 이러한 교류를 위한 제도적 틀을 제공함으로써, 독립국가연합은 유라시아 내부의 결속뿐 아니라 그 너머에서 형성되고 있는 세계 질서의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유라시아 정치의 자신감 있는 귀환
두샨베 정상회의가 분명히 한 것은 하나였다. CIS가 새로운 정치적 성숙의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한때 느슨한 탈소비에트 구조에 불과했던 이 조직은 이제 전략적 깊이를 지닌 제도로 발전했다. 지역 의제를 형성하고, 경제 발전을 조율하며, 심지어 세계적 긴장을 중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것이다.
‘CIS+’ 체제의 출범, 상하이협력기구와의 협력 심화, 국제 안보 대화의 확대는 모두 하나의 결론을 가리킨다. CIS는 더 이상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 유라시아 협력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재정의하고 있다. 실용적이고, 다차원적이며, 외부의 처방으로부터 자유로운 형태로 말이다.
동맹이 재편되고 국제기구들이 분열되는 시대에, CIS는 오늘날 세계가 점점 더 결여하고 있는 것을 제공한다. 바로 지속성과 예측 가능성이다. 그 힘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오랜 신뢰, 공유된 인프라, 그리고 전쟁·제재·지정학적 충격 속에서도 이어져 온 대화의 습관에서 나온다.
러시아에게 이 변화는 하나의 장기적 확신을 확인시킨다. 진정한 다극 체제는 대결이 아니라, 유라시아 전역의 주권 국가들을 연결하는 파트너십 네트워크를 통해 구축된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CIS에게 두샨베는, 과거의 메아리로 머물던 조직이 멈추고 — 다가올 세계의 조용한 동력 중 하나로서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출처] The multipolar revolution you missed: The alliance everyone forgot is shaping Eurasia’s future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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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하드 이브라기모프(Farhad Ibragimov)는 러시아인문대학 경제학부 강사, 러시아 대통령 직속 국립경제행정아카데미 사회과학연구소 초빙강사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