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서방 제재에 맞서는 ‘그림자 물류’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주 베르스크(Berdsk) 출처: Eugene Uhanov, Unsplash

서방의 제재는 러시아가 우회 경로를 개척하고 회색 시장을 활용하도록 만들고 있다새로운 교역 지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일까그리고 그것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것일까?

2025년 9월 말베냉 국적을 단 유조선 푸슈파(Pushpa)’(또는 보라카이(Boraçay))가 프랑스 군대에 의해 생나제르(Saint-Nazaire, 루아르-아틀랑티크 연안해상에서 나포된 후사법 당국에 의해 억류되었다이 유조선은 9월 20일 러시아 프리모르스크(Primorsk) 항을 출발해 러시아산 원유 75만 배럴을 싣고 인도 바디나르(Vadinar) 항에 3주 후 도착할 예정이었다이 선박은 러시아가 제재를 우회해 여러 국가들과의 교역을 지속하기 위해 운용 중인 유령 선단(ghost fleet)’의 일부로 보인다푸슈파의 나포는 단지 거대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지금 이 순간에도 국제 교역 질서는 전면적인 재편이 진행 중이다.

실제로 2022년 2월 22일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는 전통적인 교역 경로뿐 아니라 물류 수단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블라디미르 푸틴에게는 대체 운송로(transport corridors)와 효율적인 유령 선단 확보가 전략적으로 중대한 과제가 되었다러시아는 수출입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해상 및 육상에서 새로운 경로를 적극적으로 개척하고 있다이러한 물류 재편은 지정학적 위기와 기후변화가 맞물리는 상황 속에서 진행되고 있으며이는 북극 항로나 유라시아 회랑(Eurasian corridors) 같은 기존의 주류가 아니었던’ 경로를 더 접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인프라 이면에서러시아가 보여주는 회복력은 비공식 전략과 병행된 공급망 네트워크특히 에너지와 산업 제품 부문에서 구현되고 있다이러한 그림자 물류(logistique de l’ombre)’는 러시아가 강력한 국제 제약 아래에서 어떻게 자신을 적응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경제와 초국가적 흐름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완전히 측정하기 어렵지만새로운 교역 지형이 등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실제로 푸틴은 물류 우회 전쟁에서 승기를 잡고 있으며그 결과로 나타날 다극적 세계질서는 2010년대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통 경로의 붕괴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서방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연달아 강화해 왔고이는 러시아와 기존 교역 파트너들을 연결하던 물류 인프라에 크고 작은 타격을 주었다. 2025년 7유럽연합은 제18차 제재 패키지를 채택했고이에는 러시아와의 우회 교역을 가능하게 하는 운송 네트워크와 금융기관도 포함되었다.

지난 3년간 이 같은 조치로 인해 세계적 선사인 머스크(Maersk), MSC, CMA CGM 등이 러시아 항구로의 운항을 중단했으며이는 전자 부품 수입업체부터 농산물 수출업체까지 수많은 서방 기업에 큰 불확실성을 초래했다특히 원자재 흐름이 심각하게 왜곡되었다이전에는 송유관이나 발트해 항만을 통해 운송되던 석유가스석탄 등이 더 비싼 우회 경로로 전환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방의 해상 보험사들은 러시아를 경유하는 항로에 대한 보험 제공을 거부하고 있으며비록 American Club, West of England, Gard 등이 참여하는 ‘P&I’(Protection & Indemnity) 보험 클럽이 아직은 석유 운송을 보장하긴 하지만보험 거절은 기업들에 더 큰 지연과 추가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이런 기업들은 제재 위험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러시아와의 교역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 사례에서도 보이듯오늘날의 세계에서 제재는 전략적 무기가 되었고물류 자체가 지정학적 긴장의 축이자 지렛대로 작동하고 있다그 결과 교역 흐름의 지리적 재편이 진행 중이며러시아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부상하고 있다.

교역 흐름의 지리적 재편

서방의 봉쇄에 직면한 러시아는 아시아와 중동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중국에서 출발한 컨테이너들은 카자흐스탄과 카스피해를 경유해 러시아에 도달하고 있으며이 조용한 회랑은 전자 부품 등 핵심 물자 운송에 사용되고 있다.

튀르키예는 중요한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튀르키예의 Enütek Makina 같은 기업들은 물류 중개인으로 활동하며해상(메르신이즈미르 항구)과 육로(조지아 경유)를 통해 러시아로 방위산업 관련 장비를 운송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는 북극항로(Northern Sea Route)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이 항로는 서시베리아 북쪽 카라해(Kara Sea)에서 출발해 베링 해협(알래스카와의 국경)까지 이어진다이를 통해 러시아는 무르만스크아르한겔스크블라디보스토크 등 북극 및 극동 항구들을 내부적으로 연결하면서수에즈 운하 같은 타국 통제 수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을 확보하고 있다이 경로는 기존 항로에 대한 강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2024년에는 노바텍(Novatek)과 소브콤플로트(Sovcomflot)가 이 항로를 통해 동아시아(특히 중국)로 액화천연가스(LNG)와 석유를 수송한 화물량이 약 3,800만 톤에 달했다승인된 운항 횟수도 92회로전년 대비 현저히 증가했다이처럼 러시아는 원자력 쇄빙선 등 북극 인프라를 확충하며북극항로의 이용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경제적 효율을 넘어서러시아의 물류 주권 확보 전략의 핵심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점점 더 적대적인 국제 환경 속에서 러시아는 그림자와 빙판 위의 새로운 무역지도를 개척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전 세계 유조선의 17%가 현재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에 속해 있으며이는 모스크바가 제재를 피하고 원유 수출을 지속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출처UNITED24 Media

그림자 물류

러시아의 저항력은 이른바 회색 시장의 존재로 더욱 강화되고 있다회색 시장이란합법적인 상품이 공인된 유통 채널 밖에서 거래되는 경제 현상으로오래전부터 알려진 개념이다경제 이론에 따르면생산자들이 시장별로 서로 다른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면다른 기업들이 가격이 더 낮은 지역에서 상품을 매입한 뒤수요가 더 높아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시장에서 은밀히 다시 판매하는 경향이 생긴다.

이러한 병행 유통(parallel trade)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존재해왔지만지금은 러시아의 산업 및 군사 체계를 가동 상태로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여기서도 그림자 물류가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며대표적인 사례로는 푸슈파(Pushpa)’와 같은 유조선들이 포함된 유령 선단(ghost fleet)’이 있다이 선박들은 노후하고소유주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푸슈파는 그 가운데 단지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하다.

영국은 2025년 7러시아산 석유의 불법 수송에 관여한 유조선 135척에 대해 제재를 부과했으며유럽연합도 200척에 가까운 선박을 추가로 블랙리스트에 올려총 350여 척이 제재 대상이 되었다그런데도 그림자 물류는 계속 작동 중이며만약 이러한 시스템이 없다면 러시아는 핵심적인 에너지 수입을 유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peace)와 운송환경단체 T&E(Transport & Environment) 등 여러 NGO는 유령 선단의 환경적 영향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선박들은 관리 상태가 매우 열악하며사고 발생률도 높다대표적인 사례가 2024년 12월 케르치 해협(Kertch Strait)에서 발생한 유조선 볼고네프트-212(Volgoneft-212) 사고다이 50년 이상 된 노후 선박은 석유 제품을 운반하던 중폭풍우 속에서 두 동강이 나며 막대한 기름 유출 사고를 일으켰다.

또 다른 환경 피해로는 같은 해 12발트해에서 유령 선박 한 척이 해저 케이블 5개를 절단한 사건이 있다이 사고로 인해 핀란드는 해당 선박의 선장을 중대 기물 파손(vandalisme aggravé)’ 혐의로 고소했다이처럼 좌초 사고나 해양 훼손 등은 단순한 물류 문제가 아니라 광범위한 환경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비용이 큰 자율성

러시아의 회복력 그 자체를 넘어서푸틴은 새로운 물류 주권을 구축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이를 위해 그는 북극 지역 인프라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중앙아시아 및 중동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이런 다각화는 단지 제재에 대한 전술적 대응을 넘어지정학적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다결국 물류는 권력 재편의 보이지 않는 전장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이런 자율성은 매우 높은 비용을 수반하며그마저도 불완전하다우회 경로는 물류비용을 증가시키고운송 시간을 지연시키며공급망의 신뢰성을 약화한다예를 들어미국의 제재로 인해 유조선 수급이 줄어들면서러시아 극동 코즈미노(Kozmino) 항에서 출발하는 원유의 해상 운송 운임은 5배 이상 급등했다.

회색 시장은 상대적으로 더 유연하게 작동할 수 있지만러시아는 이에 따라 기회주의적 중개상에 의존해야 하는 리스크를 감수하게 되며이들은 종종 과도한 이윤 마진을 붙여 거래한다.

새로운 지정학적 긴장

지난 3년간 러시아가 추진한 전략은서방이 통제하는 전통적 무역 경로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이었다대체 운송 회랑을 구축함으로써푸틴은 자국의 공급망을 안전하게 유지하려 하고 있다그러나 그 길에는 외딴 지역의 인프라 유지복잡한 공급망 관리 등 다양한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또한특정 지역 파트너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지정학적 긴장이 지역적으로 분산되며러시아는 새로운 취약성에 노출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기대했듯이또는 믿고 싶어 했듯이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를 경제적·정치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오히려이 전쟁은 러시아의 교역 방식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물류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드러나지 않는 철도 노선부터 새롭게 떠오르는 해상 경로까지합법성과 불투명성제약과 적응 사이에서 새로운 물류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

지금이 순간 전개되고 있는 이야기는우리가 혹시 잊고 있었다면 다시금 일깨운다.

현대의 모든 위기에서물류는 그 자체로 현실을 드러내는 거울이며무기이며생명선이고놀라울 만큼 유연한 존재라는 사실을.

[출처] Russie : la logistique de l’ombre contre les sanctions occidentales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질 파셰(Gilles Paché)는 엑스-마르세유 대학교(Aix-Marseille Université, AMU)의 경영학 교수(Professeur des Universités en Sciences de Gestion)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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