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옥스퍼드 수도사가 빛과 색으로 별과 행성의 성분을 밝힌 방법

출처: Neven Krcmarek, Unsplash

1240년대옥스퍼드대학교 소속 도미니코회 수도사 리처드 피셔커(Richard Fishacre)는 빛과 색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별과 행성이 지구상의 원소와 동일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그는 이로써 당대 과학계의 정설에 도전했고, 21세기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ames Webb Space Telescope)의 관측 방법과 발견을 예견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따랐던 중세 물리학은별과 행성이 지상의 네 가지 원소(공기)와는 다른특별한 천상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이 원소는 유명한 5원소(quinta essentia)’ 또는 퀸테센스(quintessence)’로 불리며완전하고 불변하는 성질을 지닌다고 여겨졌다.

완전히 투명한 이 제5원소는 지구를 둘러싼 아홉 개의 동심 천구를 구성하며별과 행성들도 이 천구에 부착된 형태로 존재한다고 생각되었다이때행성과 별은 제5원소가 응축되어 형성된 존재로 간주했고가장 안쪽의 일곱 천구에는 각각 하나의 행성이여덟 번째와 아홉 번째 천구에는 각각 별들과 천국이 존재한다고 여겨졌다.

지구를 둘러싼 아홉 개의 동심 천구(celestial ‘spheres’)를 나타낸 중세 천문도. 출처: 옥스퍼드대학교(Oxford University) 소장

그리고 별

망원경이나 암석 시료에 접근할 수 없었던 피셔커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친 최초의 도미니코회 수도사였으며별과 행성이 특별한 제5원소로 이루어졌다는 기존 이론을 공개적으로 부정했다그는 이 천체들이 지상에서 발견되는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러한 주장을 펼친 이유는 색과 빛의 성질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되었다.

피셔커는 색이란 일반적으로 불투명한 물체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그런데 불투명한 물체는 항상 둘 이상의 지상 원소로 구성된 혼합체다반면 하늘을 올려다보면별과 행성에서 나오는 빛이 종종 옅은 색조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예를 들어화성은 붉게 보이고금성은 노란빛을 띤다이는 곧 별과 행성이 혼합물즉 "네 가지 원소(ex quattuor elementis)"로 이루어졌음을 암시한다.

피셔커가 별과 행성이 제5원소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로 제시한 것은 달이었다달은 뚜렷한 색을 가지고 있으며결정적으로 주기적으로 태양을 가린다만약 달이 투명한 제5원소설령 그 원소가 극도로 응축된 형태라 하더라도유리창처럼 태양빛을 그대로 통과시켜야 한다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피셔커는 이로부터 달이 지구상의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결론 내렸고달이 천체 중 가장 낮은 위치에 있다면그 밖의 다른 별과 행성들도 마찬가지로 지상의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판단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별과 행성의 구성 성분에 대해 리처드 피셔커(Richard Fishacre)가 800년 전에 주장했던 내용을 입증했다. 출처: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대담한 주장

이러한 주장을 펼치며피셔커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는 "우리가 이런 입장을 내세운다면아리스토텔레스 이론에만 매달리는 자칭 전문가들(scioli aristoteli)이 고함을 지르고 우리에게 돌을 던질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비판받았다. 1250파리대학교에서 바뇨레조(Bagnoregio) 출신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성 보나벤투라(St Bonaventure)가 그의 가르침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그는 강의에서 피셔커처럼 천상의 제5원소’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는 현대인들을 조롱했다.

물론 오늘날의 현대 천체물리학은 피셔커의 입장을 지지한다별과 행성은 특별한 제5원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지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금속과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예를 들어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최근 지구에서 약 244광년 떨어진 해왕성형 외계행성 TOI-421 b의 대기에서 다량의 수증기와 이산화황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제임스 웹 망원경이 이 성분을 밝힌 방법은원리적으로 보면 피셔커가 사용한 방법과 매우 유사하다그것은 전이 분광(transmission spectroscopy)’이라고 불리며, TOI-421 b가 방출하는 빛의 밝기와 색의 미묘한 변화를 분석함으로써 수증기와 이산화황의 존재를 밝혀냈다.

자신의 주장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았던 피셔커는아마도 자신이 세상을 떠난 지 약 800년이 지난 지금현대 천문학이 여전히 빛과 색을 통해 먼 우주의 별과 행성이 지구와 같은 원소로 이루어졌음을 입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기뻐했을 것이다.

[출처] How a medieval Oxford friar used light and colour to find out what stars and planets are made of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윌리엄 크로지어(William Crozier)는 더럼대학교(Durham University) 프란치스코 연구학 던스 스코투스 조교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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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옥스퍼드대학교 tnehtk 수도사 우주관측 제5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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