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NASA, ESA, CSA, STScI, 아담 긴스버그(Adam Ginsburg, 플로리다대학교), 나자르 부다이예프(Nazar Budaiev, 플로리다대학교), 유태화(Taehwa Yoo, 플로리다대학교). 이미지 처리: 알리사 페이건(Alyssa Pagan, STScI)
1980년,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은 케임브리지대학교 루카시안 석좌교수로서의 첫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의 제목은 ‘이론물리학의 끝이 보이는가?’였다.
이후 필자의 박사 지도교수가 된 호킹은, 우주를 대규모로 설명하는 일반상대성이론과 원자 및 입자의 미시세계를 지배하는 양자역학이라는 상충하는 두 이론을 통합하는 ‘만물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 20세기 말까지는 발견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결정적인 만물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가장 유력한 후보는 끈 이론(string theory)이다. 끈 이론은 중력을 포함한 모든 힘과 입자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이다. 이 이론은 자연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쿼크처럼 점 입자가 아니라 진동하는 끈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끈 이론은, 우리가 전자 내부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다면 바이올린 줄처럼 진동하는 고리 형태의 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이 끈의 진동 패턴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자가 나타난다.
끈 이론은 자연의 모든 힘을 통일한다. 중력과 전기력처럼 서로 매우 달라 보이는 힘들조차도 이 이론에서는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 힘들은 ‘이중성(duality)’이라는 개념으로 연결되며, 이는 동일한 물리 현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술할 수 있음을 뜻한다.
중력은 기하학, 모양, 위치와 같은 개념으로 설명되며, 다른 힘들은 대수학과 수와 같은 수학적 개념으로 설명된다. 따라서 힘의 통합은 수학의 여러 분과들 사이에 존재하는 심오한 관계를 암시한다. 이러한 수학적 관계는 과거에도 로버트 랭랜즈(Robert Langlands)와 같은 수학자들이 제안한 바 있으며, 끈 이론은 이러한 관계에 물리적 해석을 부여한다.
끈 이론이 실제로 만물 이론일 가능성은 존재하지만, 실험적으로 검증하기는 매우 어렵다. 끈 이론의 효과는 매우 작은 스케일과 매우 높은 에너지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입자 가속기는 입자를 충돌시켜 그 내부 구조를 탐사하지만, 스위스의 CERN과 같은 세계 최대 가속기조차 입자를 끈의 수준까지 쪼개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제공하지 못한다.
단서는 우주 속에 있다
그렇다면 실험실에서 끈 이론을 검증할 수 없다면, 어떻게 실험적으로 이를 테스트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하늘을 올려다보는 데 있을 수 있다.
초기 우주는 밀도가 높고 매우 뜨거웠으며, 그 원시 상태는 끈으로 구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관측하는 은하들의 분포, 우주 전역을 채우는 우주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radiation) 등에는 초기 우주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20세기 초,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은하들은 서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20세기 말, 더 정밀한 관측은 이 팽창이 가속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현재 은하들은 백만 년 전보다 더 빠르게 멀어지고 있다.
이 가속을 일으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중력은 끌어당기는 힘이므로 우주의 팽창을 늦추는 방향으로 작용해야 한다. 그러나 팽창은 가속하고 있다. 이 현상을 과학자들은 ‘암흑 에너지(dark energy)’라고 부르며, 이는 우주 전체에 걸쳐 존재하는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로 간주한다. 암흑 에너지는 현재 우주 전체 에너지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암흑 에너지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가장 그럴듯한 설명은 이것이 우주에 내재한 양자 에너지라는 것이다. 양자 세계에서는 어떤 입자도 완전히 정지할 수 없으며, 항상 약간의 양자 요동과 그에 따른 에너지가 존재한다.
원자들을 절대영도까지 냉각해도, 양자적 운동으로 인해 에너지가 남아 있다. 암흑 에너지는 중력을 포함한 자연의 모든 힘과 입자에 내재한 양자 에너지로 설명될 수 있다.
관측 결과와 끈 이론의 접점
현재 과학자들은 암흑 에너지의 성질을 규명하기 위해 여러 실험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DESI(Dark Energy Spectroscopic Instrument)는 은하와 퀘이사를 지도화하고 있다. 우주 기반 망원경인 유클리드(Euclid)와 로먼(Roman)은 전례 없는 정밀도로 우주를 측정하며, 수십억 년에 걸친 수십억 개 은하의 진화를 지도화할 예정이다.
최근 DESI의 관측 결과에 따르면 암흑 에너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고 있으며, 이는 일부 끈 이론 모델과 일치하는 양상을 보인다. 물론 이는 아직 추가적인 관측을 통해 완전히 검증되어야 한다.
DESI는 키트 피크 국립천문대(Kitt Peak National Observatory)에 있는 니콜라스 U. 메이올(Nicholas U. Mayall) 4미터 망원경 돔 안에 설치되어 있다. 출처: 위키백과(Wikipedia), CC BY-SA
이 결과가 끈 이론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끈 이론은 암흑 에너지의 분포가 서로 다른 다양한 우주들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DESI의 결과는 암흑 에너지를 끈의 양자 에너지로 해석하는 방향이 유망함을 시사한다. 물론 암흑 에너지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은 끈 이론 외에도 존재한다.
유클리드와 로먼 망원경은 매우 정밀한 측정을 통해, 암흑 에너지에 대한 여러 이론과 일부 끈 이론 버전을 배제할 수 있을 것이며, 이로써 이론가들이 집중해야 할 방향을 좁히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또 다른 실마리: 블랙홀
끈 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은 블랙홀을 통해서다. 어떤 물체가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다. 블랙홀 내부에는 극도로 강한 힘이 존재하며, 입자들은 분해된다. 우리는 여전히 블랙홀 내부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끈 이론은 블랙홀이 내부로 들어온 정보를 어떻게 보존하는지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끈 이론은 블랙홀 내부에 밀도와 중력이 무한한 특이점(singularity)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대신, 블랙홀은 ‘퍼즈볼(fuzzball)’이라 불리는 끈의 공 형태로 퍼져 있다고 본다.
향후 중력파에 대한 정밀한 측정은, 끈 이론이 예측하는 블랙홀 내부의 양자적 행동에서 비롯된 미묘한 신호를 탐지하려 한다. 만약 블랙홀이 퍼즈볼이라면, 두 블랙홀이 합쳐질 때 나오는 중력파 신호가 더 오래 지속되며 메아리(echo)를 포함하는 다른 형태를 나타낼 수 있다. 또한, 끈 이론이 제안하는 추가 차원이 존재한다면, 블랙홀은 또 다른 방식으로 진동하며 그 역시 탐지 가능하다.
사고 실험과 이론적 확장
우주론적 관측 외에도,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전시켰을 때처럼 과학자들은 사고 실험을 통해 끈 이론의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 끈 이론은 수학뿐 아니라 다른 과학 분야에도 새로운 통찰을 제공해왔다. 예를 들어, 끈 이론은 양자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계산 방식(양자 컴퓨팅)을 이해하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
나는 만물 이론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호킹이 루카시안 강연을 했던 그 이후로 지난 45년 동안 우리는 분명히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지금, 끈 이론의 미래는 다시 한번 밝아지고 있다.
[출처] String theory: scientists are trying new ways to verify the idea that could unite all of physics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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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카 테일러(Marika Taylor)는 버밍엄대학교(University of Birmingham) 교수, 공학 및 물리과학 대학의 학장이자 부총장(Pro-vice-chancellor)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