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최근 겉보기에는 중요한 재정 발표가 있었다. 노동당 정부의 재무장관(봉건 시대에서 유래한 국고장관, Chancellor of the Exchequer)인 레이첼 리브스(Rachel Reeves)가 올해와 앞으로의 예산에 대한 정부의 세금·지출 계획을 공개한 것이다.
이번 예산안은 노동당 정부에 ‘성패를 좌우할(make or break)’ 예산이라고 불렸다. 노동당은 여론조사에서 심각하게 고전하고 있으며, 지난 2024년 7월 총선에서 34%라는 낮은 득표율로 의석을 압승했음에도 현재 지지율은 그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반이민·친브렉시트 성향의 개혁당(Reform Party)은 현재 35% 안팎을 기록하고 있고, 보수당은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했다.
노동당 정부가 집권한 지난 18개월은 사실상 재앙이었다. 먼저 정부는 복지 지출을 대폭 삭감하는 조치를 잇달아 발표했다. 에너지 가격이 최고치를 찍던 시기에 연금생활자에게 제공되던 겨울 연료수당을 폐지했고, 이어서 장애인 지원금 삭감 방침을 내놓았다. 여기에 더해 취약 계층을 하나 더 겨냥하듯, 두 자녀 이상 가정에 대한 아동수당 상한(cap)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조치는 자녀가 셋 이상인 가정이 특히 큰 타격을 받는다는 뜻이었다. 이미 영국에는 430만 명의 아동이 공식적으로 빈곤 상태에 있으며, 이 상한제 유지로 그 수는 더 늘어날 상황이었다.
스타머 총리와 리브스는 정부가 이른바 ‘재정 블랙홀’을 반드시 메워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리고 있었다. 즉 정부가 세입보다 많은 지출로 인해 발생하는 연간 재정적자가 공공 부채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릴 것이고, 공공 부채는 이미 GDP의 100% 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인식이었다.
주: 이 장과 이번 EFO(경제·재정전망) 전반에서 별도 언급이 없는 한, 2025년 3월 전망 수치는 2025년 Blue Book 기준 개정의 영향을 제거한 뒤 GDP 대비 비율로 재산정한 값이다. 출처: ONS, OBR
부채 증가를 멈추기 위해서는 결국 세금 인상과 지출 삭감을 통해 ‘블랙홀’을 메워야 한다고 여겨졌다. 그래야만 정부 채권을 보유한 은행·연기금·보험사·해외 투자자 등이 채권을 팔아치우거나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전 정부에서 재정 지출을 늘리고, 이를 영국은행이 돈을 찍어 조달하려 했던 시기는 보수당 리즈 트러스 총리의 짧고 비극적인 집권기였다. 당시 채권시장은 폭락했고 파운드화는 급락했다. 트러스와 그의 재무장관은 며칠 만에 당내에서 축출됐다.
집권 후 리브스와 스타머는 런던 금융가, 이른바 ‘채권 자경단’에게 노동당 정부가 방만하지 않게 지출할 것이며, ‘재정 적자’를 줄이고 공공 부채를 통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자경단이 가장 선호할 선택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긴축을, 부유층에게는 보조금과 규제 완화를 제공한 것이다. 이는 정치적으로 완전한 실패였다. 노동당 의원들의 강한 반발 속에서 지도부는 결국 이런 삭감 조치를 모두 철회했고, 이번 11월 예산안에서 아동수당 상한제 폐지를 발표하며 정책 선회가 완전히 마무리됐다.
그러나 핵심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가 여전히 채권시장의 요구를 충족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재정 블랙홀’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문제는 이 블랙홀이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정부와 금융 부문이 만들어낸 가상의 구멍이며, 그 크기는 영국 경제가 얼마나 빨리 성장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수록 세수는 늘고, 복지·실업급여 지출은 줄어들며, 블랙홀은 작아진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영국 경제는 실질적으로 거의 성장하지 않고 있다. 명목 GDP가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물가 상승 때문일 뿐이다. 영국은 G7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출자들은 실질 이익을 유지하려고 높은 금리를 고수하고, 중소기업과 주택담보대출을 가진 가계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영국의 세금·지출 정책의 신뢰성을 평가하는 예산책임국(OBR)은 결국 영국 경제가 사실상 ‘기어가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과거에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성장률을 예측했지만, 이번에는 향후 몇 년간 실질 GDP 성장률 전망을 연 1.8%에서 1.5%로 하향 조정했다. 이 전망이 맞는다면, 정부는 지출을 감당할 만큼의 세수를 확보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복지 지출이 통제 불능이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복지 지출은 2007년 이후 GDP 대비 비중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2025~26년 영국의 복지 지출은 GDP의 10.8%로 예상된다. 이는 2007~08년보다 GDP 대비 0.8% 늘어난 수준일 뿐이며, 2012~13년 이후로는 오히려 GDP 대비 1.2% 감소했다. 그럼에도 대기업과 금융 부문은 복지 삭감을 요구하고, 부유층에 대한 증세는 반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리브스는 어떻게 했는가? 정부 부채 증가를 막기 위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면서도 부유층에게 과세하지 않았다. 최고 소득자 세율도 올리지 않았고, 초부유층을 위한 부유세도 도입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중산층·평균 소득자에게 ‘스텔스 세금’을 부과했다. 리브스는 이 조치가 “일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며, “그렇지 않은 척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결과 노동당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29년이 되면 세 부담이 GDP 대비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물론 그때까지 정권이 유지될 경우다).
세 부담은 이번 의회 임기 말에 사상 최고치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계정 기준 세금의 GDP 대비 비율(%)
이전 복지 삭감을 되돌리는 데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리브스는 도박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고, 매우 비싼 부동산(즉 200만 파운드 이상)에 대해 ‘맨션세(mansion tax)’를 도입했으며, 배당금과 자본이득에 대한 세금도 올렸다. 그러나 싱크탱크인 레졸루션 파운데이션(Resolution Foundation)은 “맨션세”가 도입되더라도 런던 도심에 500만 파운드짜리 주택을 가진 사람은 선덜랜드 북부의 평균 주택 소유자보다 집값 대비 더 적은 지방세를 내게 될 것이라고 평가한다. 게다가 부유층에게 부과되는 이 대부분의 세금 인상은 이번 의회 임기 말쯤에야 시행되는 반면, 평균 가구가 받는 타격은 내년 4월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정부가 스스로 설정한 재정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은 낮다. OBR(Office for Budget Responsibility, 영국 예산책임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제 전망은 생산성, 비경제활동인구, 순이민의 경로에 대한 불확실한 판단에 달려 있다. 재정 전망 역시 부채 수준을 고려할 때 금리와 인플레이션의 움직임에 매우 민감하다.” OBR은 재정 목표 달성 가능성을 고작 59%로 산정한다.
현재 예산 목표 달성 확률. 2025년 3월 전망: 54%, 최신 전망: 59%
이번 예산은 ‘성패를 가를’ 예산이 아니다. 굳이 그런 표현을 쓴다면, 그것은 런던 금융가의 요구를 충족해야 하는 스타머–리브스 정부에게나 해당할 것이다. 대부분의 영국인들에게 영국 경제는 이미 ‘부서진 상태’다.
다시 상기해보자. 영국은 G7에서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하고 있다. OECD에서 가장 높은 전기요금을 가지고 있다. 실업률은 5%까지 상승하고 있고, 실질 소득은 2019년 이후 정체돼 있다. 불평등과 빈곤은 심화하고 있으며(식료품 은행에 의존하는 사람이 300만 명 이상), 유럽에서 가장 넓은 지역 격차를 보인다. OECD에서 평균 임금 대비 가장 낮은 복지 급여, 파탄난 공공서비스,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NHS(국민보건서비스) 대기자 명단, 파산에 몰린 지방정부들, 민간 기업과 정부에 의해 착취되는 돌봄노동자들, 건설되는 공공주택보다 민간 임대기업에 더 많이 매각되는 ‘사회주택’, 강과 해변에 오염수를 쏟아붓는 동안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수도·에너지 기업들, 그리고 마비된 교도소·사법 체계—이것이 전부다.
이렇게 산산조각 난 험프티 덤프티(이미 산산조각이 나서 간단한 조치로는 다시 복구할 수 없는 상태) 같은 영국 경제는, 존재하지도 않는 ‘재정 블랙홀’을 메우겠다며 몇 가지 세금 조치를 손보는 정도로 다시 조립될 수 없다. 예산 발표 전 리브스는 노동당 의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해야 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전 정부보다 1,200억 파운드를 더 국가 인프라에 투자하고, 기업들을 위한 불필요한 규제와 관료주의를 줄이고, 새 계획법을 도입하고,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무역 협정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 1,200억 파운드는 공공 투자가 아니다. 정부가 실제로 투입하는 공공 재정은 고작 70억 파운드이며, 나머지는 민간 부문이 충당할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병원·학교·기타 공공 프로젝트를 사모펀드에 영구적 부채로 묶어버린, 이미 신뢰를 잃은 공공–민간 파트너십 모델이다. LSE 연구에 따르면 경제와 주민들의 삶을 복구하려면 연간 600억 파운드가 필요하다고 한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실질 재정 지원을 늘리고 있지 않다. NHS, 학교, 대학의 시급한 필요를 충족하지도 못한다. ‘저렴한 주택’을 충분히 건설할 계획도 없다. 공공 건설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민간 개발업자들을 위한 계획 규제 및 환경 규제 완화만 있을 뿐이다. 반면 ‘국방’ 지출은 이번 의회 임기 동안 러시아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대폭 증가할 예정이다.
성패를 가를 예산인가? 지금 이미 부서졌고, 다시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출처] UK: the ‘make or break’ budget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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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