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매쿼리섬—태즈메이니아와 남극 사이 중간쯤에 있는 좁고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능선—에 서 있다고 상상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야생동물이다. 코끼리물범이 어두운 해변에 널브러져 있고, 왕펭귄은 이끼 낀 경사면을 따라 행진하며, 알바트로스는 광활하고 나무 한 그루 없는 고지대를 선회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섬은 변하고 있다. 경사면은 더 질퍽해지고, 플레우로필룸(Pleurophyllum)과 스틸보카르파(Stilbocarpa) 같은 상징적인 초대형 식물은 후퇴하고 있다.
수년 동안 과학자들은 그 원인이 강수량 증가일 것이라고 의심해왔다. <날씨와 기후 역학>(Weather and Climate Dynamics)에 발표한 우리의 새 연구는 이러한 의심이 사실임을 확인하며, 이야기가 이 외딴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역 하나를 훨씬 넘어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요하지만 거의 관측되지 않는 기후 요소
남극해(Southern Ocean)는 전 지구 기후 시스템에서 막대한 역할을 한다.
이곳은 온실가스에 의해 가둬진 초과 열의 상당 부분을 흡수하며, 인간 활동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큰 비중도 흡수한다.
남극해의 폭풍은 호주, 뉴질랜드뿐 아니라 전 세계의 기상 패턴에도 영향을 준다.
그러나 이 지역은 지구에서 가장 관측이 어려운 곳 가운데 하나다.
육지가 거의 없고, 기상 관측소도 손에 꼽을 만큼 적으며, 늘 짙은 구름이 뒤덮여 위성 관측과 시뮬레이션 모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포착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호주 기상청과 오스트레일리아 남극청이 보관해온 매쿼리섬의 기후 기록은 매우 귀중하다. 남극해 전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실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극히 드문 ‘지상 관측’ 자료이기 때문이다.
관측된 일별 강수량과 기상 자료로 구성된 이 고품질 기록은 75년 이상 축적돼 왔으며, 위성 자료와 수치 시뮬레이션을 검증하는 데 널리 사용된다.
매쿼리섬. 출처: Unsplash+ Community
강수량 증가
이전 연구들은 매쿼리섬의 강수량이 지난 몇십 년 동안 급격히 증가했으며, 생태학자들은 토양이 지나치게 축축해져 토착 식생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 섬의 기상 패턴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혹은 현장 관측 자료를 과거 기후 재구성과 직접 비교해 남극해의 기후 추세를 평가한 연구는 없었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45년(1979~2023)의 일별 강수 관측 자료를 분석하고, 널리 사용되는 과거 기상 재구성 자료인 ERA5 재분석(Reanalysis)과 비교했다.
우리가 알고자 한 것은 강수량 증가 뒤에 있는 기상학적 원인이었다. 즉, 폭풍의 수가 늘어난 것인지, 아니면 폭풍이 발생할 때 비의 강도가 더 세진 것인지였다. 이를 위해 우리는 기압, 습도, 바람, 기온에 따라 자료의 각 날짜를 다섯 개의 종관(regime) 중 하나에 분류했다.
이 분류에는 저기압계, 한랭 공기 유입 그리고 온난 공기 이류(warm-air advection, 즉 한랭전선 앞에서 극 쪽으로 이동하는 따뜻한 공기)가 포함되었다.
폭풍이 만들어내는 비가 더 많아지고 있다
우리의 분석 결과, 매쿼리섬의 연간 강수량은 1979년 이후 28% 증가했으며, 이는 연간 약 260밀리미터 증가에 해당한다.
반면 ERA5 재분석 자료는 고작 8% 증가만을 보여 대부분의 변화를 놓치고 있었다.
폭풍대가 서서히 남극 쪽으로 이동해 왔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우리의 결과는 이러한 대규모 변화가 오늘날 매쿼리섬의 날씨를 어떻게 형성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러한 변화가 강수량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가 많은 한 종관(온난 공기 이류)이 다른 종관(저기압계)을 대체했을 뿐이었다.
즉, 폭풍의 발생 빈도가 아니라 폭풍이 발생할 때 내리는 비의 양이 더 많아진 것이 강수량 증가의 핵심 원인이다.
매쿼리섬의 코끼리물범들. 출처: 키타 윌리엄스.
왜 작은 섬 하나의 변화가 문제인가?
매쿼리섬에서 관측된 강수량 증가가 남극해 폭풍대 전반의 조건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 여러 근거가 이를 뒷받침한다 — 그 영향은 매우 크다.
폭풍대가 더 많은 비를 동반한다는 것은 상층 해양에 더 많은 담수가 유입된다는 뜻이다. 이는 바다의 층화를 더 강하게 만들고, 혼합 작용을 약화시키며, 결국 해류의 강도 변화로 이어진다.
우리는 2023년 기준 높은 위도의 남극해 전체에서 증가한 강수를 환산해보면 연간 약 2,300기가톤(Gt) 규모의 추가 담수 유입에 해당한다고 추정한다. 이는 최근 남극 빙붕에서 녹아 나온 담수량보다 규모가 한 자릿수 이상 더 큰 값이다. 그리고 이 격차는 계속 커지고 있다.
강수량 증가는 해수 표층의 염분에도 영향을 준다. 염분은 영양염과 탄소가 이동하는 방식을 좌우하므로, 이는 남극해의 생산성 및 화학적 구성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남극해은 지구에서 가장 중요한 탄소 흡수원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그 영향이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심대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강수 증가에는 그에 맞먹는 증발량 증가가 필요하다. 이는 우리가 땀이 증발할 때 체온이 식는 것처럼 바다도 냉각된다는 의미다. 구름이 자주 끼는 남극해에서는 증발이 바다를 식히는 가장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우리 분석에 따르면 남극해는 단순히 강수 증가를 유지하기 위한 증발의 에너지 비용 때문에 1979년에 비해 10~15% 더 많이 스스로를 냉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증발은 넓은 남극해 전역에 걸쳐 일어난다.
결국 남극해는 기후 변화에 대응해 더 많이 “땀을 흘리고” 있는 셈이다.
다음 과제
매쿼리섬은 지구에서 가장 폭풍이 많은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땅 조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곳의 장기 강수 기록은 전 세계의 열과 탄소 흡수의 엔진 역할을 하는 남극해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고 더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 과제는 이 신호가 폭풍대 전체에 얼마나 넓게 퍼져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의존하는 기후 시스템에 어떤 함의를 갖는지를 규명하는 일이다.
[출처] Storms in the Southern Ocean are producing more rain – and the consequences could be global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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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심스(Steven Siems)는 몬래시 대학교 구름 미세물리학 교수이고, 자오양 콩(Zhaoyang Kong)은 몬래시 대학교 지구·대기·환경과 박사과정 연구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