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일, 드래그퀸들이 지킨 자유

나는 미국에 아직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제정신인 사람들과 함께 74일 독립기념일을 보냈다. 바로 드래그퀸들이었다.

디바 돈(Diva Don). 출처: Mr. Fish

뉴욕주 파이어아일랜드 ― 나는 파이어아일랜드의 성소수자 공동체인 체리그로브에서 인근 지역인 더 파인스로 향하는 배에 타고 있었다. 배에는 드래그퀸 100명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은 1976년 한 드래그퀸이 식당에서 서비스를 거부당한 사건 이후 매년 이른바 '침공(Invasion)' 행사를 열어 왔다. 차별에 분노한 체리그로브의 드래그퀸 17명은 당시 수상택시에 올라 더 파인스로 건너간 뒤 문제의 식당으로 몰려갔다.

이 침공은 정치적 선언이자 축제다. 그러나 트럼프 시대에 들어 드래그퀸과 트랜스젠더, 이민자, 페미니스트, 유색인종, 이른바 급진좌파가 악마화되고 표적이 되는 상황에서 이 행사는 도발적이면서도 애틋한 의미를 지닌다. 이 행사는 미국이 지닌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 애국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연민과 개인의 자유, 시민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담아낸다.

내가 미국 건국 250주년을 기념해야 한다면, 그곳은 오직 이곳뿐이었다.

트럼프는 지난해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불과 지난해에도 케네디센터는 우리 청소년을 겨냥한 드래그쇼를 열었다. 이런 일은 끝날 것"이라며 "더 이상 드래그쇼도, 다른 어떤 반미 선전도 허용하지 않겠다"고 썼다.

2022년 미스 파이어아일랜드 출신 젤리나 듀발은 황옥빛 스팽글 드레스에 큐빅이 박힌 스틸레토 구두를 신고, 커다란 꽃 모양 귀걸이와 같은 디자인의 반지와 팔찌를 착용하고 있었다. 적갈색 가발과 길고 검은 인조 속눈썹도 눈에 띄었다. 다른 드래그퀸들처럼 그 역시 트럼프를 단번에 꿰뚫어 봤다.

"트럼프도 퀸이다." 젤리나가 말했다. "다들 알잖아요. 화장도 하고 브론저와 하이라이터도 바르고. 매일 새로운 의상을 입으니까."

샴페인색 스팽글 드레스에 꿀빛 금발 가발, 큐빅 귀걸이를 하고 캡 카마라 향수를 뿌린 페이지 먼로는 이렇게 말했다. "건국의 아버지들도 가발을 쓰고 하이힐을 신고 화장을 했다. 드래그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태초부터 존재해 왔다. 고대 그리스와 일본에서는 남성들이 여성 역할을 맡았다."

트럼프의 화려한 무도회장, 집무실을 금박과 금 장식으로 뒤덮은 취향, 커튼 색깔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 성향, 옛 쇼튠에 대한 애정, 빌리지 피플의 동성애자 공동체 국가로 불리는 'Y.M.C.A.'를 좋아하는 취향, 짙은 정장과 검은 플로샤임 구두를 신은 1950년대식 남성상을 이상화하는 미학, 그리고 거대한 가슴과 도톰하게 부풀린 입술, 팽팽하게 당긴 얼굴을 한 마러라고의 여성들은 내가 묵고 있는 호텔 옆 아이스 팰리스에서 밤마다 열리는 드래그쇼 무대로 그대로 옮겨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였다.

공연은 몹시 시끄러웠다. 새벽 4시가 넘어서야 끝나는 경우도 많았다. 호텔 직원들은 침대 옆 탁자에 귀마개를 올려놓았다. 조금은 도움이 됐다.

독립기념일 연휴 동안에는 '속옷 댄스파티'도 열렸다. 다음 날 아침 눈이 풀린 남성들은 속옷도 곧 벗어 던지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알래스카 선더퍽의 74일 외계인 침공 파티'도 열렸다. 알래스카는 자신의 음반 <에이너스>(Anus)와 <파운드케이크>(Poundcake)에 수록된 노래들을 불렀다. 공연곡에는 '네 화장은 엉망이야(Your Makeup Is Terrible)', '이게 내 진짜 머리야(This Is My Hair)', 그리고 "겁나 사랑해.(I fucking love you)"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노래도 포함돼 있었다.

잦은 성적 만남은 ― 아이스 팰리스에는 즉각적이고, 대개는 익명의 성적 만남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커튼으로 가린 공간까지 마련돼 있다 ― 엡스타인 계층의 난잡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엡스타인의 소녀들과 여성들은 인신매매의 피해자였고 성적으로 착취당했다. 이곳의 관계는 모두 당사자의 자발적인 동의에 기반한다.

파시즘은 캠프 문화(과장, 인공성, 연극성, 유머, 패러디를 즐기는 감수성)의 뒤집힌 형태다. 캠프의 어두운 얼굴이다. 거기에는 아이러니도 유머도 없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과장되고 연극적인 예술을 이용해 지도자를, 마치 드래그퀸처럼, 현실을 초월한 존재로 만들어낸다.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본질은 정반대다. 파시즘적 캠프는 복종을 강요한다. 드래그퀸의 캠프는 반항적이다. 드래그퀸의 캠프는 인간의 가능성과 정체성을 확장하려 한다. 반면 파시즘적 캠프는 정체성을 국가가 승인한 선과 악, 남성과 여성, 애국자와 반역자라는 협소한 틀 안으로 짓눌러 버린다.

"트럼프는 캠프가 무엇인지 모른다." 1955년 체리그로브에 처음 온 뒤 '로즈 레빈'이라는 예명으로 70년 동안 무대에 서 온 밥 레빈이 말했다. 그는 더 파인스를 '침공'했던 최초의 드래그퀸 17명 가운데 한 명이다. 올해 93세인 그는 여전히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 공연은 711일 체리그로브 커뮤니티하우스 앤드 시어터에서 열린다.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 운영되고 있는 성소수자 여름극장이다.

그는 경찰이 함정 수사를 위해 잠복 경찰을 투입했던 1960년대도 직접 겪었다. 경찰은 동성애 남성들을 유인해 체포했고, 체포된 이들의 이름은 신문에 실렸다. 대부분은 직장을 잃었다.

"너무 많은 인생이 파괴됐다." 레빈이 말했다.

권리가 하나씩 후퇴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규정한 경직된 남성과 여성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공격받으면서 과거의 어둠은 다시 현재의 어둠이 되고 있다.

드래그 이름 '팬지'로 활동하는 톰 핸슨은 자유의 여신상 차림을 하고 있었다. 긴 초록색 드레스에 왕관을 쓴 커다란 흰색 가발, 그리고 작은 횃불까지 들고 있었다. 팬지는 1976년 더 파인스를 '침공'했던 드래그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배가 더 파인스 항구에 들어서자 수백 명이 부두에 늘어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정박한 배들은 요란하게 뱃고동을 울렸고 사이렌 소리도 이어졌다.

부두에서는 빨강·하양·파랑 양말을 신은 반바지 차림의 가수가 공화국의 전투 찬가를 불렀다. 그는 가사를 "나의 눈은 퀸들이 오는 영광을 보았네"로 바꿔 불렀고, 마지막을 "퀸들은 앞으로 행진한다"로 끝내자 군중은 오래도록 환호했다.

팬지가 배에서 내렸다. 그는 부두에 깔린 분홍색 카펫 위에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군중 속에는 "우리는 지워지지 않는다", "국민은 모두를 의미한다", "드래그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한다", "파시스트 엿 먹어라", "ICE 엿 먹어라"라고 적힌 팻말들이 보였다.

"이 침공은 더 파인스의 한 식당이 트랜스 여성의 식사를 거부한 사건에서 시작됐다." 팬지가 군중을 향해 말했다. "그건 이제 모두 과거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한다. , 여러분 대부분은 그렇다. 지금 휴대전화로 이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면 이 영상을 텍사스, 위스콘신, 일리노이, 미네소타, 워싱턴주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우리의 어린 트랜스 형제자매들에게 보내 달라. 그들은 외롭다.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그들과 나 자신의 자유를 위해 죽는 날까지 싸울 것이다."

군중은 뜨겁게 환호했다.

"팬지, 사랑해요!" 한 남성이 외쳤다.

"나도 사랑해!" 팬지가 답했다."잘생겼어? 거기 큰 거 달고 있어?"

배에서 내리는 드래그퀸들은 한 명씩 소개됐다. '전통적 아내' 차림을 한 남성들도 있었다. 갈색과 금발 가발에 똑같은 베이지색 원피스를 입고 목에는 십자가를 걸었다. 손에는 고리버들 바구니를 들고 밀짚모자를 썼다. '아메리카의 스위트하트'라는 이름의 드래그퀸들은 파란 응원술을 흔들며 파랑과 흰색 치어리더 복장을 하고 있었다. 짧은 초록색 치마를 입고 '최고의 엉덩이'라고 적힌 띠를 두른 드래그퀸도 있었다. 반바지 차림의 남성들은 '전통 복구반(Trad Repair)'라고 적힌 흰색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2025년 미스 파이어아일랜드 소피아 메디나는 왕관과 띠를 두른 채 큰 박수를 받으며 배에서 내렸다.

팬지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행정부와 정책이 바뀌기를 계속 기도하고 있다. 모두가 그렇게 기도하면서도 아무도 행동하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다. 왜 이민자 공동체는 일어나지 않는가. 왜 흑인과 히스패닉 공동체는 들고일어나지 않는가. 왜 여러 소수민족 공동체는 일어나지 않는가. 모두 침묵하고 있다. 성소수자 공동체도 조용하다. 우리가 모두 함께 일어선다면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 두려워한다. 내 시대에는 우리는 반항아였다. 우리는 싸웠다. 맙소사, 자동차를 불태우고 창문도 깨뜨렸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그들은 우리를 다시 1950년대로 되돌리고 있다."

이곳에는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에게 체리그로브 같은 성소수자 공동체는 산소와도 같은 존재였다.

파키스탄에서 반복적인 살해 위협을 받은 뒤 뉴욕으로 이주한 구강외과 의사 바시트 누르는 이렇게 말했다. "왜 우리는 그저 자기 자신으로 살아도 괜찮은 나라를 가질 수 없는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데 왜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험을 느껴야 하는가. 우리는 권리를 위해 싸웠고, 자유를 위해 싸웠고, 지금의 자리를 위해 싸웠다. 이 운동이 멈춘다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으로 살아갈 곳을 잃게 된다. 우리도 지친다. '도대체 변화는 언제 오는 걸까' 하고 말이다."

짙은 우울감은 이곳을 관통하는 정서였다.

올해 체리그로브 홈커밍 퀸으로 뽑힌 플래거리나 아이배나 다이아몬드는 이렇게 회상했다. "1984년 나는 열다섯 살이었다. 중학교 3학년 현장학습으로 세일러스헤이븐의 선큰포리스트에 갔다. 한 남학생이 체리그로브를 가리켰다. 나는 체리그로브가 뭔지도, 그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때 나는 벽장 속에 숨어 지내던 게이 청소년이었다. 학교에는 동성애 혐오가 심했다. 그 아이는 '조심해. 저 사람들에게 붙잡힌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나를 붙잡아 주세요. 제발 나를 붙잡아 주세요.'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체리그로브는 정말 나를 붙잡았다. 내 마음을 붙잡았다."

파시즘은 단지 독성 강한 정치운동이 아니다. 독성 강한 문화운동이자 사회운동이다. 파시즘은 시민, 남성, 여성, 애국자가 무엇인지를 협소하게 규정하고, 그 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의 설 자리를 없앤다. 독립적인 삶과 정체성을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그 뒤에는 외로움과 트라우마만 남는다. 파시즘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악마화된 사람들부터 공격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결국 공동체를 하나씩 파괴해 우리 모두를 자기 나라에서조차 고아로 만든다.

나는 내 나라가 사라지기 전에, 74일을 그 나라에서 보내고 싶었다.

[출처Independence Day Drag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로, 15년 동안 뉴욕타임스의 해외 특파원으로 근무하며 중동 지국장과 발칸 지국장을 역임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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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성소수자 침공 정치운동 연휴 독립기념일 미국 드레그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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