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위원회의 탄생 배경에는 심각한 건강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아기는 34살까지 살 운명을 타고 나지만, 일본에서 태어난 아기는 81.9년을 살 수 있다. 이런 불평등은 한 나라 안에도 찾아볼 수 있는데 경제 발전 수준이 낮은 나라뿐 아니라 소위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예로 호주 원주민은 전체 호주인 평균보다 기대여명이 20살이나 짧다. 그리고 기대와 달리 이러한 불평등의 간극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지고 있다. 다른 한편, 알마 알타 선언 이후 세계보건기구의 건강문제 해결을 위한 실천에 대한 반성이란 측면에서 이 위원회의 발족을 살펴볼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아동기금은 1978년 소련의 알마 알타에서 “2000년까지 모든 사람에게 건강을”이란 구호를 선언하였다. 질병의 예방을 강조하는 일차보건의료를 중심으로 모든 개인의 건강을 향상시키는 전략을 채택하고 건강을 인간의 정당한 권리로 선언하였다. 사회개발/경제발전으로 빈곤에서 해방되고 동시에 건강을 추구하려는 이념과 실천의지는 80년대 초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고 세계보건기구와 각종 국제구호기구는 지난 이십여 년 간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된’ 보건의료를 강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노동과 사회의 변화를 수동적으로 좇아갈 뿐, 지역적인 건강 수준의 절대적 하락과 낮은 사회계급의 상대적 건강 하락을 막아내지 못했다. 예를 들어 1990년 대 이후 시장경제가 도입된 동구 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는 노동조건은 물론 공적인 교육과 보건의료가 쇠락하고 가족과 공동체가 붕괴하였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스트레스와 사회적 분쟁이 자리 잡았다. 폭음, 흡연, 마약 등 건강을 위협하는 행태가 널리 퍼져 질병부담이 급격히 늘었다. 보건의료 분야에 시장경쟁을 도입하고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건강 수준이 향상할 것이란 기대는 오히려 각 나라의 보건의료비 지출이 늘고 불건강이 노동력과 경제성장을 갉아먹는다는 우려로 바뀌었다. 바로 이 시점에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에 대한 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위원장인 마이클 마르못은 지금까지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으로 밝혀진 것만으로도 건강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실업과 노동조건 악화는 분명히 건강의 위해요인이고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건강하다는 데는 다른 견해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일자리 만들기, 노동 조건 개선, 교육지원 확대 등을 통해 건강을 향상시키고 건강의 계급 간 격차를 줄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세계보건기구는 이런 사회 정책을 지지하고 확산시킬 수 있을가?
지난 주 란셋에 발표된 세계보건기구의 연구에 따르면 5세 미만 어린이 사망의 주요 원인은 감염성 질환과 빈곤이었다. 이 연구 결과가 우리의 상식(!)과 판이하지 않아서 퍽 안타깝다. 지금까지 건강을 향상시키는 사회 정책을 결정하고 실시하지 못했던 게 연구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마르못은 그 논문의 결론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나 지구화 같은 언어가 비난이나 연대의 도구가 되었다”거나 “지구화도 시장도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에 따라 나쁘기도 하고 좋을 수도 있다”라고 맺고 있다. 이것이 국제 사회의 일부가 건강불평등의 진짜 원인을 비로소 인정하기 시작하였다는 증거인 새로운 위원회가 썩 좋은 성과를 얻지는 못할 것이라 예측하는 이유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자리와 집과 희망을 빼앗고 여성과 어린이를 팔아치우고 폭력과 전쟁을 일삼는 게 신자유주의와 지구화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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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민중복지 제 97 호 이윤덕희 (민중의료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