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위기를 맞이하여 각지의 고수들이 나름의 절세 무공들을 펼쳐 보였지만, 독창성과 깜찍함에서라면 1․2․3 운동이 단연 군계일학. 자, 결혼 1년 안에 임신해서 두 명의 건강한 자녀를 서른이 되기 전에 낳아보자. 쉼 없이 노력(?)한다면, 30세 둘째 출산 ← 29세 둘째 임신 ← 28세 첫째 아이 수유 ← 27세 첫째 아이 임신과 출산 ← 26세 결혼이라는 일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여고생들의 대학 진학률이 78% (통계청 2004)에 이른다고 하니 대학을 졸업하면 대략 23-25세. 하지만 ‘공식적’인 청년 실업률이 8% (통계청 2004)에 이르고, 첫 일자리 진입 기간이 15.5개월(한국노동연구원 2002)이라는 통계 수치를 고려한다면 운 좋게 취업한다고 해도 25-26세는 기본. 일단 취직이 되면 하루 빨리 청첩장을 돌리고, 부리나케 첫 번째 출산휴가, 첫째 아이 돌잔치, 그리고 두 번째 출산 휴가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직장 동료들과 상사들, 국가 경제를 떠받들 이 ‘여’사원의 애국적 행위를 진심으로 경하할 것이다. 의대 학장으로 재직 중인 여의사께서 하셨다는 다음의 이야길랑은 염두에도 두지 말자. “간혹 여의사들이 수련기간 중 두세 명의 아이를 출산하면서 전공의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본인과 가족 입장에서는 대단히 자랑스럽고 축하 받아야 할 일... 그러나 ... 이 여의사가 아이 두셋을 낳는 동안 얼마나 많은 주위의 여자, 남자 동료의사들이 이 여의사 때문에 고생하였을까...” (청년의사 2005.4).
하긴, 여성 노동자의 70%가 비정규직이니까 출산 휴가 운운하며 옆 동료에게 민폐 끼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그저 조용히 계약 해지하면 그만 아닌가. 든든한 비정규 예비군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람.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던 ‘고참’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은 다를까?)
행여 “우리 정규직 되면 결혼하자”던 포스터에 공감하여 스스로 정규직이 될 때까지 결혼을 미루는 여성이 있다면 이건 말리고 싶다. 자칫하다가는 ‘독신세(獨身稅)’를 물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 전 LG 경제연구원이 독창적인 고견을 내놓지 않았던가. “...결혼을 유인하는 정책과 함께 독신 상태에 대한 불이익을 확대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고대 로마도 저 출산으로 고전하다가 독신세를 신설하여 일정한 효과를 거둔 바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배우자나 자녀가 없는 일정한 연령이상의 독신 근로자에게 독신세를 부과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기 참으로 어렵다. 나라 경제가 어려우면 장롱 속의 금반지도 내다 팔아야 하고,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면 비정규직의 설움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감내해야 하고, 이제 최선을 다해 ‘건강’한 자녀를 출산하여 국가의 미래를 대비해줘야 한다. 모자보건학회는 1․2․3 운동의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30~35세 이전에 정상적이고 건강한 난모세포에서 태어난 건강한 신생아를 잘 키워서 차세대의 건강한 인구의 질적인 향상을 도모하여 미래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튼튼한 기본이 될 수 있도록 하고자 함에 있다...”
애국주의와 경제 개발,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화려한 깃발이 저만치 혼자 달려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적 소수자들은 (심지어) 쫓아가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단어들 - 국가 경쟁력, 건강, 결혼, 전통적인 가족의 중요성, 윤리의식, 여성 - 이 모처럼 함께 등장하여 서로의 본질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시장 자본주의의 동력과 가정생활 사이에는 근본적인 대립이 존재한다며, “극단적인 시장 사회야말로 아이 없는 사회”라던 율리히 벡 (1992)의 이야기, 이제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국민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 나, 깊이 반성 중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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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민중복지 제100호 김명희(블로거,http://blog.jinbo.net/hongsi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