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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눈치 보느라 건강권 외면한 특허법 개정

작년 11월 발의되었던 ‘의약품접근권 향상과 강제실시제도 개선을 위한 특허법 개정안’은 미국의 통상압력과 초국적제약사에 대한 특허청의 눈치보기로 애초의 취지가 훼손된 채 5월 3일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이번 특허법 개정안은 제조능력이 없거나 불충분한 수입국에서 공중보건상 필요하다고 요청한 경우 한국제약회사가 특허의약품의 카피의약품을 생산하여 그 국가에 수출할 수 있도록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를 허용하기 위한 것이다. 의약품 강제실시는 국가 비상사태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 정부의 승인을 얻은 특허권자외의 제3자가 특허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최근 몇 년간 WTO(세계무역기구)협상과정에서 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국들은 건강권과 특허권에 관한 근본적인 논쟁을 제기하여왔고, 2001년 WTO각료회의로 하여금 ‘TRIPS협정(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과 공중보건에 관한 도하 선언문’을 채택하게 함으로써 공공의 건강보호가 제약회사의 특허권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이번 특허법 개정안은 ‘TRIPS협정과 공중보건에 관한 도하 선언문’의 연장선상에서 제출된 것이다.

의약품 특허권에 의해 보장되는 20년간의 독점권은 어마어마한 독점가격을 유지하도록 한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약을 개발, 생산하여 누구에게 판매할지를 결정하는데 제약회사의 압도적인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돈이 되지 않는 질병을 치료하는 약은 개발, 판매되지않고, 생산된 약은 너무 비싸서 극히 일부의 환자만이 사먹을 수 있다. 국가 비상사태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경우, 즉 공중보건상의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 필요한 약을 생산하게 하여 싸게 공급하도록 일시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강제실시제도이다. TRIPS협정에서 강제실시를 허용하고 있지만, 미국과 초국적제약자본은 각국에서의 강제실시를 무력화시키기위해 정치, 경제적 압력을 행사해왔다. 도하선언은 강제실시를 실질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TRIPS협정 중 그 어떠한 것도 WTO회원국들이 각국의 공중보건과 관련된 조치들을 채택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각 회원국은 강제실시를 허여할 권리가 있고, 강제실시가 허여되는 조건을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한다. 그리고 제조능력이 없는 국가에서 강제실시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숙제로 남겨두었는데 그 해결책으로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가 허용된 것이다.

현재 투쟁접점은 도하선언의 실행여부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FTA(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개별국가별로 의약품 특허권의 대상과 기간을 확대시키고 강제실시를 축소함으로써 도하선언을 무력화시키고 있고, FTA저지투쟁과 도하선언의 이행을 촉구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에이즈치료제에 대한 강제실시를 촉구하는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브라질정부가 도하선언을 실현시키느냐 여부를 두고 활동가들과 미국보수단체, 제약산업간의 선명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브라질은 초국적제약회사에 의해 생산되는 비싼 에이즈치료제를 국영연구소와 국영제약사를 통해 브라질내에서 값싸게 생산함으로써 1997년부터 무상공급을 시작했고, 현재 브라질에 공급되고 있는 16개의 에이즈치료제중 7개를 자체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전체 에이즈프로그램 예산 중 수입의약품에 지출하는 비용이 1999년에 50%, 2004년에 80%로 급속히 증가했다. 2004년 11월 브라질 에이즈프로그램 책임자 Pedro Chequer는 “에이즈프로그램의 지속이 문제가 되는 상황”이라며 약가인하협상을 넘어서 특허파괴나 강제실시를 통한 국내생산만이 에이즈프로그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발표했다. 2005년 3월 브라질 보건장관은 3개 초국적제약사에 브라질 공공연구소에 자발적으로 에이즈치료제 lopinavir/ritonavir, tenofovir, efavirenz에 대한 기술이전을 하겠다는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실시를 발동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약사들은 협상에 나서지 않고 있다. 전 세계 200여개의 운동단체들은 브라질 정부에게 약속을 이행하라며 강제실시를 발동하여 에이즈환자의 의약품접근권을 확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미국보수단체와 미국제약회사들은 미국정부에게 브라질 정부가 미국의 3개 제약사의 특허권을 ‘도둑질’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강제실시의 문제는 한국가내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접근권이 봉쇄되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특허청은 강제실시를 남용하여 기술에 대한 연구개발 노력 없이 남의 결과물에만 편승하려는 심리를 조장할 가능성만을 언급했고 지적재산권과 관련한 조치사항은 선진국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국제조약의 취지에 비추어 말썽의 소지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특허청은 국제조약의 취지에 맞추자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구미에 맞추려한 것이다. 이번 특허법 개정안이 애초의 취지를 훼손한 채로 통과된 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하선언을 무력화시키는데 일조한 것이다. 도하선언을 실질화시키느냐는 벼랑길로 몰리고 있는 의약품접근권 확보투쟁에 있어 관건이다.
덧붙이는 말

주간민중복지 제 102 호 권미란(평등사회를 위한 민중의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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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민중복지 , 특허법 개정안 , 의약품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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