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없는 성장의 허구
고용없는 성장을 실증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가장 기본이 되는 데이터는 고용탄성치(성장률 대비 추가 고용인구 비율)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성장할 수록, 다른 말로 표현하면, 특히 제조업의 경우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가변자본에 대한 불변자본의 비율)가 높아질 수록 고용탄성치는 줄어든다. 그러나 이것이 흔히 오해되듯이 고용의 절대 숫자가 감소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고용인구수는 경제만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임금수준, 빈곤수준, 내수와 수출 부문의 격차, 가족 구성의 변화, 의식의 변화 등 경제 외적인 요소들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이 같은 점은 지난 10여년간의 고용탄성치에서도 드러난다. ‘고용없는 성장’이 최초로 제기된 2003년의 고용탄성치는 0.16으로 3.1%의 성장률에 단지 3만6천여명의 고용이 창출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를 제조업의 기술혁신 효과 또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 고도화에 따른 고용없는 성장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1993년의 경우, 우리 경제의 고용탄성치는 0.21이었으며, 1997년 외환위기 직전까지 0.35로 높아졌다가, 1999년에는 0.16으로 낮아진다. 그러나 1999년의 고경제성장율은 최근 10년 사이 가장 높은 9.5%에 이르렀다. 물론 1998년의 경제위기시의 -6.9% 성장에 따른상대적 효과 때문이기는 했지만, 이 때의 고용없는 성장은 자본이 고도화해서라기 보다는 신규노동력 고용없이 초과착취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반면에 불과 3.0%의 경제성장률에 불과했던2001년의 경우에는 고용탄성치는 지난 10년내에 최대치인 0.63에 이르렀다 (2000년은 0.46). 이는 7.0%의 성장을 기록한 2002년 0.44로 낮아지다가 2003년에서다시 0.16이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를 기록하게 되는 것이다. 2001년의 고용탄성치의 급격한 상승은 외환위기 이후 신규고용을 억제하던 기업들이 그동안의 부족인력분을 일시에 해결하기 위해 고용을 늘인 것과 당시의 성장이 고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수부문이었다는 점에서 대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2004년도의 고용탄성치 역시 높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는 또한 정부의 인위적인 일자리 창출정책에 의한 고용지원금 등의 ‘정책 효과’가 작용하기 때문에 반드시 경제성장과 비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고용없는 성장에 대한 실증적 답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5년 이상의 평균 수치를 구해 그 이전의 평균치와 비교하는 것이 필수적이지만 아직은 한국경제는 IMF 이후의 급격한 구조변동의 와중에 있으며, 그같은 관찰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시간은 지나가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고용없는 성장을 말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며, 기껏해야 선진국의 경험이나 일부 산업부문에서의 전망으로 제한시켜서 볼 필요가 있다. 이 가운데 산업별 변화는 주목할만하다. 제조업의 인력 고용이 전체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에 비해 2002년말 현재 약간이나마 증가했으며, 오히려 가장 많이 감소한 산업분야는 농림어업, 광업 분야이다. 그러나 수출부문 및 500인 이상의 대기업에 있어서는 고용탄성치와 고용비중 모두가 감소하는 경향을관찰할 수 있다. 이에 반해 10~29인의 소기업의 고용비중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고용의 절대 숫자라기 보다는 고용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많은 신규인력이 고용되었던 2001년의 경우,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의 비중이 가장 높았던 년도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김유선의 연구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55%). 즉, 고용의 절대 숫자와는 별개로 고용형태에 있어서는 가장 불안정한 모습을 취하게 되며, 바로 이 때를 기점으로 이른바 ‘비정규문제’와 노동시장의 양극화 문제, 그리고 소득의 관점에서는 빈곤층과 차상위층의 문제가 제기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심각하게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먼저,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해서 우리 사회는 구조적인 일자리 과부족 상태에 빠졌는가? 즉, 노동시장이 양적인 측면에서 수요와 공급에 불일치가 발생했는가?
둘째,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과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가? 이 문제를 보다 엄밀하게 제기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과연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반적인 의미에서 노동유연화는 기업의 입장에서의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고용과 해고를 일컫는다. 즉, 전적으로 기업의 판단에 있어서의 고용의 양적 증감이 자유로운 상태이다. 이 때의 기업의 판단이란, 고용비용의 측면에서 경기에 대한 반응이다. 일차적으로 자본주의하에서는 노동시장은 상품시장(경제 상황)의 파생시장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경제 상태에 종속적이며, 경기 의존적이다. 동시에 노동시장 내부의 구조적 요인, 즉 제도적 요인들에 의해서 이 같은 경제적 측면은 제약된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노동유연화란 경기 상황에 대응한 요소비용의 최적화 모델에 의존한다. 이를 노동시장에서 내부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이른바 고용안정법제들이다(예컨대 지난 98년 제정된 정리해고 관련 법제들). 이 같은 고용안정법제는 기존의 고용관계를 유지하는 측면을 가진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기업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고용안정법제들이 강력할수록 이를 회피하기 위해 신규고용을 회피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 같은 조건이 강력하다면 일자리의 신규 창출 숫자는 최소한, 억제되는 효과를 갖는다. 그러나 이는 경기가 호황에 있을 때의 조건에만 해당된다. 불황시에는 노동유연화는 일자리 감소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따라서 노동유지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노동유연화는 신규고용 창출에 있어서 양면적인 성격을 갖는다. 단지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이 처럼 노동유연화가 기업의 경영에 우호적인 것으로 성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느냐 하는 것이다. 개별 기업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 같은 cost-effectiveness은 기업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는 고용/실업의 연쇄 속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비용과 인적 자본의 일정 수준 유지라는 측면에서 부정적일 수밖에 없고, 동시에 노동자이자 소비자인 노동자들에게 가처분 소득을 감소시켜 사회 전체의 총소비를 감소시키고 이는 다시 경기 후퇴로 이어지게 된다. 이 같은 경기 후퇴의 조건하에서는 기업은 다시 고용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게된다. 즉,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불황하에서는 일련의 악순환을 불러일으키며, 바로 이와 같은 측면이 경제적으로 고용안정법제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동시에 이런 조건들이 기업의 주요시장이 내수이냐, 수출이냐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 성격에 따라 기업들은 각기 다르게 반응한다. 국가는 전체적인 경제의 조절자로서 고용안정과 관련된 ‘수준’들을 규제한다. 문제는 한국 사회는 어느 정도의 고용안정 수준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정규직·상용직에 관한 한, 한국의 규제정도는 OECD내에서 비교적 높은 정도의 고용안정도를 나타내는 것으로 평가된다(28개국 가운데 상위 10번째, 유경준, 2004). 그러나 고용안정도에 대해서는 뚜렷하게 정해진 법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국의 사정에 따라 다르며, 최종적으로는 사회 내부의 사회세력들 간의 힘의 균형의 산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서 또 다른 질문은 이른바 노동유연화가 고용유지 뿐만이 아니라, 신규 고용을 창출하는데 있어서도 우호적인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와 관련된 실증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위의 고용안정법제가 이미 노동시장에 들어와 있는 인구들(취업자, insider)들에 대한 보장책일뿐, 잠재적 노동인구(취업대기자, outsider)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신규고용에 대한 영향을 실증적으로 평가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가장 최근의 국책 기관의 연구를 본다면(김대일, 2004), 고용안정법제는 15~24세에 해당하는 인구집단의 신규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제외하고는 실증적으로 다른 인구집단에게 미치는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15~24세의 인구집단은 노동시장에서 신규진입 대기자들이기는 하지만, 이른바 ‘청년실업자층’으로 말해지는 15~30세의 인구층과는 변별되며(고등학교 졸업자의 80%이상이 초급대 이상으로 진학하는 현실로 보았을 때, 이들은 청소년등 이른바 취업취약계층과 고졸 이하의 저학력 청년 노동자의 일부를 포괄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청년실업의 원인으로 평가하기에는 미흡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단지 일자리의 창출이 아니라 어떠한 일자리의 창출이냐는 점이다. 여기에서 정부와 기업이 상정하고 있는 일자리의 창출은 인구 집단에 따라 각기 다른 효과를 가진다는 점을 주목해서 보아야 한다.
이론적으로 말해서, 경기 확장기에는 기업은 신규 노동력을 구매하려고 하지만, 경기 수축기를 대비해 이를 임시적 고용으로 충당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따라서 일자리 숫자 자체는 증가하지만, 전체 노동시장에서의 고용형태는 오히려 악화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효과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2001~2002년의 일시적 호황기가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기업의 수요로 인해 노동력 가치가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고용되려 한다. 그것이 임금조건이 될 수도 있고, 안정적인 고용형태(정규직)가 될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그것은 사회적 조건에 의존한다. 따라서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를 둘러싸고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 일정한 교환 조건이 형성되는데 이는 온전하게 경제적(수요-공급 곡선에 종속적)이라기 보다는 제도, 법, 사회적 조건, 빈곤 상황, 개인의 욕구등을 포함하는 일련의 사회적 과정들이다.
이같은 측면에서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의 근본 방향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의 기본 방향은 “일자리 창출의 주체는 기업이므로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하는데 주력하며, 협력적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노동시장을 안정시키고 기업의 투자·경영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것으로되어 있다. 일자리의 가장 많은 숫자가 민간부문(기업)에서 창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자리 창출의 주체가 기업이기 때문에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한다 라는 것은 노동시장을 둘러싼 경제적·사회적 과정을 도외시하는 도약이다. 즉, 이는 경제가 지속적인 호황시에만 가능한 주장이며, 이마저도 기업이 상대로 하는 시장이 내수시장인가, 수출시장인가에 따라 다르며, 동시에 사회 전체에 있어서 신규 일자리 창출이 사회를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절대적인 과제일 경우에나 해당된다. 이 같은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현재의 실업 상황, 그리고 실업이 어떤 인구계층에게 주로 작동하는지, 또한 전체적으로 한국에서의 일자리의 전체 개수는 노동인구에 비해, 또는 전체 인구수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시장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현상을 판단할 때 반드시 전제해야 할 부분이 취업/실업자의 숫자에 앞서서 전체적인 인구 구성의 문제이다. 80년대 이후의 급격한 출산율 감소에 따라 현재 추세대로(현재의 성장률과 경제활동참가비율이 유지되는 조건)라면, 2010년도에는 노동력 가능 인구는 노동시장의 수요를 간신히 맞추게 되며, 그 이후에는 인구 부족으로 노동력 공급 현상에 빠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노동시장의 탄력성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수요-공급의 변동에 있어서도 전체 노동력 교환조건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다는 점을 고려해 볼때, 이른바 인구부족에 따른 인력난이 구조화되는 2010년 이후의 기업이 처한 조건은 비용의 측면에서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의 핵심이 있다. 즉, 4-5년이라는 멀지 않은 시간내에 구조적 인력난이 도래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현재의 실업난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신규 노동력을 노동시장으로 계속 유입시키는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실업정책은 고용을 유지하거나 실업률을 일정 수준이하로 떨어뜨리는 것과 같은 지표 관리 이외에 일자리 창출을 통해 새로운 노동시장 유인책을 형성하는데 또다른 목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상반된 이 같은 이중의 과제는 노동시장의 형태 변화, 즉, 비정규 노동의 확대를 통해 달성될 수 있다. 이와 같은 고용형태 변화를 통해 거시적인 노동시장 인구 조절 수단을 재편하려는 것이 비정규법안의 진정한 목적이다.
2004년말 현재 한국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2%에 조금 못미치며(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62.5%) , 고용률은 58%대에 머무르고 있다. 이를 인구 집단에 따라 살펴보면 남성 인구의 경우 경제활동 참가율이나 고용률에 있어서 75%대로 OECD 평균 수준을 상회하며, 사실상 이들에게서 추가 인구가 노동시장으로 투입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9%로 50%에도 못미치며, OECD 상위국 수준인 60%대에는 한참 모자란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인구 구성의 측면에서 노동인구 정체 현상에 직면해서 인력난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여성 인구를 노동시장으로 유인해내는 것이다.
노동연구원의 중장기 노동인구 추계 보고서에는 2010년부터 다가올 인력난에 대비하여,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고 이를 위해 ① 가사를 병행하는 여성과 고연령자를 흡수할 있는 파트타임 근로(일주일에 25시간 내외 또는 일주일에 3일 정도) 활성화 방안, ② 혼인 및 출산 등으로 인한 여성 인력의 경력 단절을 막기 위하여 보육 사회화를 위한 국가 인프라 및 사회 체제의 정비라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의 비정규 법안을 포함한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안정화' 정책은 단지 지금 당장의 노동시장 문제를 해결하기 제안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력난이 발생하면,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한층 강화된다. 인력난이 피할 수 없는 조건인데 반해,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고용형태의 변화(유연성 강화)를 통해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
정부의 비정규 법안은 양날의 칼로 평가할 수 있다. 첫째는 기업에게 노동시장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잠재 노동인구들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인을 마련하는 것이다. 노동인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특히 여성집단의 노동시장 유인을 위해서는 보육과 같은 사회적 환경 조성 이외에 이들이 ‘일하기에 적합한’ 고용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며, 그것이 ‘(단시간 노동을 포함한) 파견근로’와 ‘차별금지’ 조항으로 표현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은 일자리 창출 정책이라기 보다는 노동시장으로의 유인책이며, 동시에 기업에게 고용형태의 결정권을 보장해 주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양산할 가능성을 포함한다. 즉,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인구들은, 또는 정부가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인구집단들에게 제시되는 일자리는 비정규직이라는 것을 사실상 전제로 하고 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지점이 주목되어야 한다. 하나는 현재의 비정규직, 그 중에서도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을 안고 있는, 빈곤의 문제를 동시에 겪고 있는 근로빈곤층의 문제와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인력들이 과연 이 같은 함정을 벗어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이다.
근로빈곤층의 문제
일자리 창출이 어떠한 효과를 갖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현재 창출된 일자리가 사회 구성원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일자리가 대중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거나 최소한 노동력 재생산을 가능케하는지 여부가 먼저 확인되어야 한다. 이같은 점을 살펴보기에 가장 유효한 지표가 이른바 '근로빈곤층'의 문제이다.
표를 참조할 때, 전체 빈곤가구의 절반 이상이 근로빈곤가구이며, 취업자가 있는 일하는 가구의 상당수는 빈곤상태에 놓여있다. OECD 기준의 빈곤기준을 적용하였을 때 빈곤가구의 58~65.5%가 근로빈곤가구이며, 최저생계비를 적용한 경우에는 58.7~65.2%가 근로빈곤가구이다. 이는 취업이 빈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며, 취업 그 자체보다는 일자리의 질이 중요하다는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한다.
또한 빈곤의 진입과 이탈이 매우 활발하다. 2001년에서 2003년의 3년 동안 취업자가 있던 가구중에서 22.2%는 최소한 1회 이상 근로빈곤을 경험하였다. 취업자가 있는 가구는 무취업자 가구에 비해 빈곤에 빠질 위험성이 낮고 빈곤에 빠지더라도 곧장 벗어날 확률은 높지만, 근로빈곤상태를 벗어난 가구들의 60% 이상은 소득 1, 2분위에 속해 상대적 박탈감, 또는 생계 위협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근로빈곤가구의 특성을 분석한 결과, 가구주의 연령이 높고 저학력일때 빈곤의 위험성은 높으나 가구주의 성별은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또한 가구원수가 많을수록 근로빈곤의 위험성도 높아진다.
임금근로가구에 비해 자영업에 종사하는 가구와 임금/자영업 혼합가구의 근로빈곤 위험성이 높다. 특히 자영업주는 임시·일용직에 비해서도 빈곤의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근로빈곤가구에 속한 취업자의 특성을 분석하면 성과 연령, 가구주 관계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나 혼인상태별로는 이혼, 사별, 별거하였을 경우와 교육수준이 낮고 현 직장의 취업기간이 짧을 때 빈곤가구에 속할 위험성이 높다.
산업별로는 제조업을 기준으로 부동산·임대 및 사업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 보건 및 사회복지사업, 기타 공공, 사회 및 개인서비스업 등에 종사할 때 빈곤가구에 속할 위험성이 높다. 직종별로는 판매직이나 기능원 및 조직원, 단순노무직 종사자들의 빈곤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근로빈곤의 실태와 정책과제, 금재호, 2005).
근로빈곤층은 문자 그대로 일자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저생계비 이하선, 또는 차상위 이하선의 생활 수준을 넘지 못하는 인구 집단이다. 통계상으로 이들은 전체 가구의 10%를 넘으며, 이들에게 새로운 일자리 기회의 제공이라는 것은 그것이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지금보다 높아지는 것이 아닌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특히, 2003년에 빈곤가구 규모가 2002년에 비해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근로빈곤가구의 비중이 감소한 것은, 취업이 빈곤탈출에 큰 영향을 못미치기 때문에 취업유인 효과가 감소한것과 빈곤가구원들이 취업하기 용이한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감소한 두 가지 요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에게 취업과 실업의 경계선이 사실상 의미없는 조건으로 변화해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같은 점은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윤희숙(2004)에 따르면, 여성, 고령자등 이른바 취업취약계층(한계노동자층)은 취업 상태에서 벗어나면, 실업상태로 남기보다는 곧장 비경제활동인구로 전화하는 비율이 다른 인구집단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최하위 계층을 구성하고 있으며, 열악한 저임금 비정규직의 표본 집단들이다.
비정규직 취업은 정규직으로의 가교인가, 악순환으로 빠져드는 함정인가?
외환위기 이후의 노동이동 현황을 살펴보면, 일용직에서 실업이나 비경제활동으로의 유출률은 경제위기 이후 뚜렷하게 높아졌다. 경제위기 이전에는 일용직으로부터 실업으로 유출되는 비율이 1%대 미만, 비경제활동으로 유출하는 비율은 7.0%대에 머물렀으나, 경제위기 이후 실업으로의 유출률은 6%대까지 치솟았다가 2002년 이후 2% 수준에서 안정되고 있으며, 비경활로의 유출률은 경제위기 직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9%대를 보여주고 있다. 남재량과 김태기의 연구(2001) 도 이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곧 “비정규직→실업·비경제활동→비정규직”이라는 일종이 폐쇄회로를 순환하는 거대한 근로자 집단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연령대와 인적 자본의 특성에 따라 정규직, 비정규직의 노동시장 이행 가능성은 각기 다른 차이를 가진다. 숙련의 수준이나 내용이 상용직으로 입직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저학력층 남성의 경우 경제위기 이후에는 직접적이로든 아니든 임시·일용직을 경유해서 상용직으로의 입직 경로가 전반적으로 축소되었고, 반대로 고학력층의 경우에는 상용직으로 직접 입직의 기회는 줄어든 대신 임시.일용직을 경유한 상용직 취업이 다소 증가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40세 미만 고졸 이하 저학력 남성의 경우에는 임시·일용직에 종사하다가 경제활동상태의 변화를 경험하고 3년후 다시 임시.일용직으로 회귀하는 비율이 경제위기 이후 뚜렷이 상승했다는 점이다. 임시직으로부터 3년 뒤 다시 임시·일용직에 정착하는 비율은 40.5%로 경제 위기 이전의 30.0%에 비해 10% 포인트 이상 증가했고, 일용직으로부터3년뒤 다시 임시.일용직에 정착하는 비율은 34.3%로 경제 위기 이전의 29.2%에 비해 5% 포인트 가량 증가했다. 이 경우 이들에게 비정규직은 벗어나기 어려운 최종 종착역의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함정’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유경준, ‘비정규직 문제와 고용창출’, 2004.12. <한국경제 구조변화와 고용창출>, KDI)
즉, 형식적으로나마 비정규직을 제한하고 있는 현재의 조건하에서도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가교는 발견하기 어렵다. 정부의 비정규 법안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유인하여 보호하는 법안이라기 보다는 현재의 노동시장 구조를 인정한 채, 그 안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일정 정도의 보호를 통해 오히려 이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고, 그나마도 기존의 근로빈곤층에 대한 보호망으로라기 보다는 잠재 노동력의 신규 진입을 겨냥하고 있다. 따라서 경기가 악화될 경우에는 비정규직을 둘러싼 빈곤노동계층 및 신규진입층의 내부 경쟁이 오히려 격화되어 노동조건이 더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한계노동력의 경우, 기타 서비스업의 확대 등 일부의 움직임에서는 배제되는 반면, 제조업으로 유입되거나 유출되고 단순노무직이나 임시일용근로자, 비경제활동인구로의 이동에서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즉, “동태적인 경제의 조정과정에서 한계노동력 그룹이 배제되는 부분이 존재하며, 동시에 이들 그룹은 완충부분으로서의 역할을 중요하게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윤희숙, 2004)된다. 사실상 근로빈곤층을 포함하는 한계노동력층은 우리 사회에서 광범한 예비실업자군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들은 경기 변동에서 기업과 노동시장에의 충격을 완충시키는 광범위한 인력풀로서 이 같은 변동의 최대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 마련되지 않고서는 노동시장 문제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미봉책이거나 가장 좋은 경우에도, 현상유지책에 불과하다.
이 같은 조건들을 고려했을 때, 비정규 법안이 겨냥하고 있는 일자리의 창출이 어떤 부분을 향해 있느냐가 판단의 주요 조건이지 일자리의 창출 그 자체로서는 판단의 필요충분 조건이 되기 어렵다.
** 청년실업 문제는 현재까지는 산업 구조와 공급되는 인력 사이에 광범위한 불일치의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청년실업이 일차적으로는 과잉 고학력자 양산에 그 근본 요인을 두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이 기존의 노동시장 insider의 경직성 때문인지, 아니면 노동시장에서의 이른바 (외환위기 이후의) ‘일다운 일자리’ (decent job)의 감소 때문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참고로 말하자면 기타 서비스업으로 분류되는 공공부문의 노동시장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으며(예컨대 공무원의 비중은 전체 임노동자의 4% 초반대로 미국, 유럽의 10~20%에 비해 크게 낮다, 단 공기업은 통계에 포함되지 않아 이 분야를 합산할 경우 다소 늘어날 수 있으나 여전히 상대적으로 낮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공무원의 정원을 늘리는 것만으로도 노동시장에서는 커다란 변동을 가져온다. 청년실업 문제는 차후 기회가 되면 다시 검토할 예정이다.
- 참고문헌 -
· 유경준, ‘비정규직 문제와 고용창출’, 2004.12. <한국경제 구조변화와 고용창출>, KDI
· 유경준, 일자리창출정책의 투자우선 순위 및 개선과제, 2004.12. <재정위험 관리와 중장기 재정지출 구조 개선>
· 윤희숙, 한계노동력 경제활동 참가 형태에 대한 연구, 2004.12. <한국경제 구조변화와 고용창출>, KDI
· 금재호, 조준모, ‘고용불안정성의 동태적 변화에 관한 연구’, 2005.2. 한국경제학회 공동학술대회 응용경제학회 세션 발표 논문
· 신석하, 외환위기 이후 고용상황 변화에 대한 연구, 2004.12. <한국경제 구조 변화와 고용창출>, KDI
· 금재호, 근로빈곤의 실태와 정책 과제, 2004.
필자| 실업극복국민재단 정책실장 이공순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알고싶어요. (3)
Q.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어떤 사람이 가입해야 하나요?
A. 불안정노동을 철폐시키는 정치적 기획 속에서 함께 투쟁할 동지면 다 가입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에 복무하려는 모든 사람이면 됩니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일차적 주체인 비정규직 노동조합 뿐 아니라, 정규직 노조의 주체들, 각 연맹과 지역본부의 활동가들, 다양한 노동, 사회, 정치단체의 활동가들 모두가 가능합니다. 이러한 모두가 오며 전국적 수준에서 상호 교류하고, 지속적인 연대활동을 조직하는 것이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입니다.